지난주였나, 그 전 주였나 정확히 기억은 안 난다. 모처럼 차를 타고 나가는 길이었다. 코로나 시국이라 몇 주만에 외출했다.
차에 시동을 거는데 뭔가 꺼림칙했다. 내려서 차를 한 번 닦았다. 주차장이 나무 아래 있는 까닭이다. 그때 차 밑에서 뭔가가 움직였다. 정확히 말하면 측면 바퀴 앞에서 뭔가가 아래로 들어갔다.
고개를 숙여봤다. 고양이였다. 온몸이 회색인데 눈만 노란색인 고양이가 차 밑에서 몸을 웅크렸다. 그 옆으로 1회용 포장용기 같은 것이 보였다. 밥통 같았다.
차 앞에서 고양이를 불러봤지만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오히려 차 밑에서 잔뜩 경계하는 눈빛을 보냈다. 밥통을 꺼내보려고 했는데 워낙 안쪽에 있어 몸을 잔뜩 숙여야 했다. 꺼내면 나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있었다.
고양이는 밥통을 꺼낸 뒤에도 한참 밑에서 나를 지켜봤다. 내가 왼쪽으로 가면 고양이는 오른쪽으로 갔고, 그 반대로 움직이면 고양이도 반대로 움직였다. 그렇게 몇 분간 시름하다가 나는 약속시간에 늦었다.
나는 귀가 후 동네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고양이 밥을 차 아래 두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경계심이 많은 동물이라 드러난 곳에 두면 밥을 안 먹기 때문에 차 밑에 둔다는 글이 달렸다. 또 하나는 힘든 동물들이니 예뻐해 달라는 답이 달렸다. 그걸 왜 모르겠나.
나는 반박 대신 우려하는 지점을 읊었다. 통을 눈에 띄지도 않도록 차 안에 밀어 넣어두는 바람에 고양이를 칠지도 몰랐고, 이런 일은 겪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고양이들에게 밥을 챙겨주는 분들도 이해한다고 말했지만 실은 이해하지 않는 듯했다.
캣맘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차에 시동을 걸면 나온다거나 출발 전 본넷을 두들기라고. 또는 탑승 전 차 아래 한 번 살피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냐고. 보통은 그렇게 하면 서로에게 해가 될 일은 없다는 내용이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일전에 나는 골목길에서 비둘기를 친 적이 있다. 뒤뚱거리는 비둘기를 길에서 봤고, 브레이크를 밟아가며 날아가길 기다렸다. 보통은 이럴 경우 차가 근접하면 비둘기가 날거나 옆으로 피한다. '보통'은 그렇다.
그날 비둘기는 내 차에 치였다. 차가 일순 방지턱을 밟는 것처럼 덜컹거렸고 나는 한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했다. 그 기억이 몇 주간 지속되는 통에 길 위에서 항상 불안에 떨었다. 살아있는 생명체를 불필요하게 죽였다는 죄책감이 든 데다 그때의 충격이 생생했던 탓이다. 두려웠다.
나는 개나 고양이류의 반려동물을 무척 애정 한다. 때문에 가정을 이루고 온전히 한 평생을 함께 할 수 있을 때까지 입양을 연기하고 있다. 어렸을 적 기르던 강아지를 다른 집에 보내고서 이틀간 울다 지쳐 쓰러진 기억도 이런 행위에 일조한다. 그런 내가 고양이를 치게 된다면 정신상태가 온전할 리 없다.
원인을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간접적인 내 입장은, '알지만 (고양이가 차 밑에서 밥을 먹으니) 할 수 없다'거나 '공존해야 한다'는 명분 속에 묻혀 가라앉았다. 불현듯 전에 본 글이 떠올랐다.
일전에 같은 커뮤니티에서 누리꾼들끼리 설전을 벌였다. 길고양이들을 보듬어달라는 글에 어떤 분이 반박했다가 다수의 뭇매를 맞았다. 반박하는 분은 차주로서 고양이들에게 입는 피해가 상당하다는 입장을 피력했지만 다른 분들은 전혀 설득될 기미가 없었다. 오히려 생명을 경시하는 사람 취급당한 채 설전은 막을 내렸다.
나는 이 지점에서 정말로 의아했던 게 있다. 서로의 주장이 상반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감정싸움으로 변질됐다는 점이다. 차주는 거주지 인근에 밥을 놓고 다니는 캣맘들 때문에 물질적인 피해를 보고 있다는 입장이었고, 캣맘들은 고양이들을 챙겨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렇다면 거주지에서 비교적 떨어진 곳, 그것도 차가 없는 곳을 찾아 밥을 두면 되지 않나.
이 문제에 왜 양 집단(1대 다수)이 상대를 비방해가며 열을 올릴 필요가 있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혹자는 고양이가 영역 동물이라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소싯적에 길고양이 3~4마리에게 둘러싸여 함께 "야옹"거려 본 기억에 따르면 애들에겐 활동 반경이란 게 있고, 그 안에서 어느 정도 사람을 따라오기도 했다.
앞선 차주가 길고양이들에게 별도의 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캣맘들이 조금만 신경을 쓰면 될 일이다. 고양이들이 마음 편히 밥 먹게 해 주는 대신 불필요하게 고양이에 대한 반감을 불러일으킬 필요는 없지 않을까.
지금도 커뮤니티 등을 살펴보면 과잉진료 없는 동물병원에 대한 문의글이 수시로 올라온다. 내 새끼를 치료하지만 금전적인 부분에서 손해보고 싶지 않다는 질문이다. 자신의 반려동물 치료에도 한 푼 두 푼 아끼려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피해에도 좀 더 민감했으면 좋겠다. 피해를 입는 사람이 나라서 그런 게 아니라 그게 공동체 생활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일전에 내 차는 이미 고양이들의 놀이터로 전락해 본넷에 고양이 발자국이 수시로 찍혀있었고, 차 위에도 수시로 올라갔다. 트렁크 위에선 식빵을 구운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기도 했다. 고양이에 대한 스크래치가 수시로 발생했다는 이야기다.
그 정도를 고양이에 대한 애정으로 내가 감안할 수 있다고 해서 남들도 그러리라 생각하는 건 명백한 잘못이다. 특히 고양이를 싫어하는 이들에게는 적잖은 스트레스가 될 것이다.
나는 우리 사회가 동물에 대해 조금 더 성숙한 자세를 갖췄으면 좋겠다. 동물에 대한 일관된 기준을 마련하고 그에 따라 사람과 동물 모두가 존중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으면 한다는 말이다. 애정도에 따라 선의나 명분만으로 상대에게 존중을 강요하는 지금과 달리, 동물을 애정 하지 않는 사람들이 수긍할 수 있는 공통된 규정이나 인식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동물 애호가들(반려동물 가족 포함)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지만 갈 길은 이만리가 넘는 듯하다. 최근 동물권에 대한 책을 몇 권 구입한 것도 내가 반려동물을 입양할 시기에는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기인했다. 나부터 뭐라도 알고 가자 싶어, 책상 앞에서 조약돌을 주으며 글 한 편 끄적여본다.
*차 밑에 밥통을 두던 캣맘은 여전히 그 자리를 고수하고 있고, 고양이는 이제 차를 주차하면 차 밑으로 복귀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나는 언젠가 이 반짝이는 아이를 내가 다치게 하진 않을까 드문드문 걱정한다. 부디 이사 갈 때까지 서로가 안전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