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이직러의 삶(a.k.a.근황)

배운 게 도둑질…직업인으로서의 고민

by OIM

직업 선택에 고민을 많이 했다. 기자가 되려고 마음먹은 게 22살 때였으니 일관성은 있었다. 그러면 어떤 고민을 했느냐 하면 이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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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이너와 메이저

대학을 졸업한 뒤 한 마이너 매체에 입사할 기회가 생겼다. 부산에서 대학을 나온 나는 서울에서 기자 생활을 한다는 것만으로 설렜다. 하지만 이 정도로 괜찮을까 고민했다. '시작이 중요하다'는 취업 관례가 마음 한 구석을 긁었다. 그러다 입사를 포기하고 대학원을 갔다.


이런 류의 고민은 소위 말하는 '언론고시'를 보면서도 계속된다. 언론고시란 이름은 워낙 취업문이 좁아서 붙은 애칭으로 안다. 별도의 공통된 시험이 있는 게 아니라 각 매체의 입사전형을 치른다. 알만한 매체들은 대체로 3~5가지 전형을 치른다. 전형은 서류-필기-실기-(토론) 면접-임원면접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회사에 따라 합숙 전형이 있거나 실기를 두 번 보는 곳도 있다. 여타 대기업 입사 전형과 별반 다를 것 없어 보이는 언론사의 이런 전형은 티오가 터무니없이 적다는 게 난점이다. 특히 2010년대 들어 공채를 한 해 거르는 회사들도 생겼다. 한 해 공채 인원으로 한 자릿수를 뽑는 언론사가 더욱 문을 굳게 닫은 셈이다. 말 그대로 어려워졌다.


그렇다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언론사들이 한 해 기자를 얼마나 뽑냐. 적으면 2~3명에서 많으면 10명 이상도 뽑는다. 10명 이상 뽑는 일은 이례적이라고 말할 정도로 흔치 않다. 4~6명 정도가 보편적이지만 사실 대중없다. 이런 입사 과정에 수백 명에서 많게는 천 명 단위가 몰린다. 그중 명문대 출신은 '널렸다'라고 할 정도로 흔하다. 단적인 예로 서울에서 언론사 입사 시험을 위해 스터디를 할 때 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이 고등학생 때 반에서 1등 했을 정도로 학벌이 좋았다. 학벌이 안 좋으면 안 된다는 말이 아니라 그만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모인 바닥에서 0명 안에 들기 위해 경쟁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 열심히 해온 애들 사이에서 더 열심히 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그렇게 해서 서류나 필기를 통과하더라도 실기나 면접은 변수로 작용한다. 특히 면접은 마땅한 처방전도 없다. 면접에서 떨어지면 좌절할 수밖에 없는 게 이쪽 분야다. '왜?'라는 질문이 앙금으로 남는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가슴에 응어리가 진다. 한 달 가까이 또는 그 이상 계속되는 전형을 뚫고 뚫어 면접까지 가지만 또 떨어지지 않을까 가슴 졸이게 된다. 이걸 거듭하면 사람은 지친다. 계속해도 될까 고민하는 것이다.


최악을 상정하긴 누구나 싫겠지만 이 정도로 문이 좁으면 낙방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다. 시간은 가고 애초에 목표로 삼던 언론사의 범위를 조금씩 넓혀간다. 3대 방송사, 10대 일간지, 준 메이저/종편, 기자협회 가입사, 네이버/다음 제휴사 식으로 현실과 타협한다. 우리나라에 등록된 매체만 수만 개에 달하다 보니 대중이 '인지하는' 언론사에 들어가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다. '작은 매체에서라도 일을 시작할까' 하는 마음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작은 매체의 입사 전형은 '서류-면접'인 경우가 많다.



2. 시작은 마이너

나는 마이너에서 시작했다. 일단 시작한 뒤 이직을 목표로 한 게 아니다. 대학원을 졸업하니 나이가 적지 않았고 일자리 구하기가 아르바이트 자리 구하기보다 수월했다. 사보나 협회보 따위를 만들거나 소규모 매체에서 일한 이유다. 고용 형태는 정규직일 때도 있었고 계약직일 때도 있었다. 계약직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변경되는 채용 형태였다. 한 때 이런 생활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한 이유다. 평온한 생활의 연속.


하지만 기자를 꿈꾸던 사람이 다른 산업군에 속하면 거부감을 느끼기 쉽다. 기자의 역량이 부가적인 기술 취급을 받는 탓이다. 속된 말로 '기사화하는 스킬'만 필요로 하거나 '신문 제작 능력'만을 선보이라는 요구를 받는다. 그러니 조직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쓰라는 식의 명령을 받기 쉽고, 바이라인은 자기 이름으로 나가게 되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자신도 이해 못할 기사를 자기 이름으로 쓰게 되는 거다. 이게 반복되면 그야말로 '현타'가 오는데, 이때 선택지가 나뉘게 된다. 순응하고 받아들이든가, 반발해서 언론사 공채를 노리든가.


사실 이런 곳에서 일을 하면 경력 인정이 어렵다. 경력기자 이직 때 포트폴리오로 기존에 작성한 기사를 많이 보는데 수상 경력이 있으면 더욱 좋다. 기자상을 받았다거나 하는 식이다. 하지만 내가 속한 곳은 기협 가입사도 아니었을뿐더러 제대로 된 기사 쓰기도 힘든 곳이었다. 조직이 원하는 대로 기사 구색만 갖추면 안정적으로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었으니 말이다. 이러니 현타가 안 올 수 없었고 나는 공채를 준비하게 된다.


아침 6시 20분에 집에서 나왔다. 스타벅스가 7시에 문을 열기 때문이다. 회사 근처까지 7시에 도착하는 걸 목표로 했다. 스벅 개장과 함께 공부했고, 9시까지 회사에 출근했다. 오후 6시에 퇴근하면 다시 스벅으로 향했다. 당시 폐장 시간이 11시였는데 10시 30분까지 매장에서 공부했다. 집에 가면 씻고 잔 뒤 다시 출근하는 패턴이었다. 피곤했지만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현타와 함께 스스로에게 상당히 화가 났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한 실망이 공채를 위한 동력으로 작용했다.


일하면서 계속 언론사에 지원했다. 보통 필기 전형은 주말에 잡혀서 괜찮은데 실기나 합숙 전형은 직장인에게 짤 없다. 연차를 쓰거나 퇴사를 해야 한다. 나는 실기를 두 번 봤는데, 1차 실기 때 연차를 썼고 2차 실기 때는 빠질 구실이 없어 사직서를 쓰게 된다. 배수진이라 생각하고 던져버린 것이다. 회사를 빠질 수 없다며 거기서 멈췄다면 나는 아마 계속 그곳을 다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 되면 새로 시작하자는 다짐 아래 2차 실기를 치르고, 이후 면접 전형을 거쳐 최종합격자에 이름을 올린다. 그 전형이 약 한 달 반 동안 이뤄졌다.



3. 외부에서 보는 기자, 내부에서 보는 기자

다르다. 지망생 때 보던 직업인으로서의 기자와 산업군에 속해 직장인으로 기자를 살아내는 것은 정말 다르다. 대부분 기자 지망생이 사회적 공기로써 기자의 역할에 의미를 두겠지만 일하면서 이에 대한 기대감이 퇴색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기자 생활을 꿋꿋이 해나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뛰쳐나오는 사람도 있다. '어렵게 들어와서 왜 그러냐'거나 '지금 나가서 뭘 할 거냐' 또는 '그 자리 들어오려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나가냐'는 등 많은 조언과 만류의 말을 듣게 되지만 실상 도움은 안 된다. 한 번 깨진 신뢰는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특히 나처럼 신문방송이나 저널리즘을 전공한 사람은 학문과 현실의 괴리를 더욱 크게 느낄 가능성이 높다.


군대식 문화나 타 산업군에 비해 박봉, 불안정한 개인생활 확보 등 찾아보면 단점이 많지만 그만한 장점도 있다. 기자가 아니었다면 평생 겪기 힘든 경험들을 간접적으로 할 수 있다. 특정 분야의 석학을 만난다거나 장관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식이다. 이들과 친분을 쌓기보다는 사회가 공인하는 전문성을 갖춘 사람의 이야기를 기자 자격으로 경청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다. 그렇기에 누구에게나 질문할 수 있다. 사회가 이를 용인해준다. 다른 사람이 하면 이상할지 몰라도 '기자라서' 어색하지 않게 할 수 있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그게 사는데 어떤 도움이 되느냐며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런 일에 흥미를 느끼는 이들에겐 간과할 수 없는 직업적 강점이다.


다른 일도 마찬가지겠지만 기자는 늘 가치판단을 해야 한다. 언론에 있어 '객관성'은 지켜야 할 상징적인 개념이지만 실상 보도할 사실의 취사선택부터 기자의 주관이 개입된다는 점에서 큰 의미는 없다. 데스크의 전반적인 기사 요구 방향이 A라는 쪽인데, 현장 인터뷰 내용이나 전문가 멘트가 B 쪽으로 흐를 때 혼란스러울 수 있다. (물론 기사 방향이 A면 A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전문가에게 멘트를 딴다) 또는 자신은 B라고 생각하는데 A로 써야 할 때 등 갈등 지점이 있다. 이런 일이 타 직군에 비해 잦다 보니 적성에 맞으면 하고 아니면 마는 거다. 단적인 예로 기업 홍보팀과 식사를 하게 되면 밥값을 홍보팀에서 낸다. 이게 관례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예외 없이 이렇다. 법카가 나오니 상관없다고 그들은 말했지만 나는 좀 어색했다. 타사 선배는 "그게 이상하면 기자 어떻게 함?"이라고 했다. 대수롭지 않다는 이야기다. 사람마다 적성이 있나 싶던 일화다.



4. 퇴사 이후의 소용돌이

기자를 그만두고 더 이상 언론계에 안 있으려고 했다. 근데 잘 안 됐다. 가려면 갈 수 있는 갈래는 여럿 있었지만 태권도하던 사람이 택견 도장에 가면 조금 다른 대우를 받게 된다. 이 무슨 당연한 이야긴가 싶겠지만 자기 분야에서 존중받던 기술이나 역할을 조금 홀대받는 경우가 많다. 탈 언론계는 물론이고 범 언론계 내부의 작은 언론사도 마찬가지다.


작은 언론사를 몇 거쳤다. 그러니까 공채를 뚫은 이후 이제 아무렴 상관없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그래서 적당히 돈 받고 적당히 일할 수 있는 곳들을 찾았다. 명예니 보람이니 아무것도 원하지 않을 때 말이다. 그 결과에 대한 이야기다. 작디작은 언론사들.


이런 곳들은 수식어가 많이 붙는다. 채용 공고에 '기자 정신을 갖춘'이라거나 '진짜 기자가 되고 싶은', '필력 좋은 기자', '전문성을 키울 기자' 등이다. 이런 데 가면 데스크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곳이 많다. 주요 매체 경험이 없는 사람들 말이다. 매체가 무슨 상관이냐 비판할 수 있겠지만 분명히 상관있다. 지망생들이 생각하는 '지켜야 할 선'이 이곳엔 없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기자로서 이건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진다. 국장이나 데스크부터가 기성 언론사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기성 '언론'사에선 통용되지 않는 관례가 존재하기 마련이고, 그걸 한 차례씩 수용하다 보면 자신의 지켜야 할 선도 조금씩 뒷걸음질 친다. 어느새 동화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몇 개를 소개한다.


한 전문지에선 기자로 채용하더니 영업을 시켰다. 물론 기성 매체 기자도 협찬이나 광고 등 간접적인 영업을 한다. 여기선 관련 업계를 취재한답시고 기사 두세 명이 기업 임원실을 돌아다니며 그런 일을 암시(부탁)하고 다녔다. 이게 뭔가 싶었다.


협회지를 제작하는 곳에선 뒤통수를 쳤다. 채용 전형에 없던 시험을 치르게 하는가 하면 면접 때 희망(최저) 연봉을 물어봐놓고 정작 입사 후엔 희망 연봉보다 적은 금액을 계약서에 명기했다. 이 일을 얘기했더니 실무자의 반응이 어땠냐면 '우리 선에선 어쩔 수 없다'는 식이었다. 나는 이 직장으로 이직한다고 전 직장을 퇴사했었다.


또 한 전문지는 입사했더니 입사 전 아무런 설명이 없던 서류 뭉치를 내밀었다. 입사 후 2년간 의도와 무관하게 회사에 손해를 끼치면 배상하겠다는 계약서였다. 어떤 식으로든 기사로 인해 회사에 (막대한) 피해가 오면 그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겠다는 의도였다. 여기엔 연대 책임을 지는 이의 도장도 받아 오라고 했다. 또 인감증명서도 요구했는데, 이 모든 걸 "다 그렇게 한다"는 말로 눙치려 했다.


또 한 곳은 '할 수 있는 건 다 해'라는 식이다. 나는 기사를 쓰고 사진을 찍는다. 둘 다 어느 정도 퀄리티를 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기사 쓰는 일로 입사했지만 조직의 사진 찍는 일이 내 업무가 되는 식이다. 여기에 '영상을 찍으라'는 요구를 받기도 했는데 "해본 적 없다"라고 말했을 때 돌아오는 대답이 "그래도 그냥 해"였다. 물론 나는 영상도 찍을 수 있다. 하지만 두세 명이 할 일을 한 명이 할 수 있을 때 돌아오는 결과는 일 폭탄이다. 이마저 '네가 하는 게 당연하다'는 식의 취급을 받게 된다. 근데 이런 곳의 문제가 뭐냐면, 일을 잘하든 못하든 적게 하든 많이 하든 윗사람에게 잘 보여야 승진한다.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일정 기간을 채운 뒤 상급자의 평가를 거쳐 승진 대상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런 구조는 일반 기업도 같지 않냐 생각할 수 있지만 업무 분장을 보면 그게 아니다. 기사 쓰는 일은 편집팀 일이다. 사진 찍는 일은 홍보팀 일이다. 영상 찍는 일은 주로 외주를 주거나 영상팀을 따로 둔다. 아니면 홍보팀에 인력을 둔다. 이걸 한 사람에게 시키는 거다. 심지어 이런 일을 하면서 어쩔 땐 의전도 신경 쓰게 된다. 사진을 잘 찍으면 임원이나 회장 행사에 동원되는 탓이다. 그러니 입 닫고 일을 하면 그게 모두 자신의 업이 되고, 이의를 제기하면 '왜 네 일을 안 하려 하냐'거나 '다른 사람도 힘들다'는 반응이 돌아온다. 보통 이런 곳에서 '젊은 사람들이 왜 자꾸 퇴사하는지 돌아보라'는 식의 후기를 발견할 수 있다.


이밖에도 술자리에서 성추행 비슷한 일(피해자? 가 아무런 항의를 하지 않았으니 가/피해 구도가 성립하지 않을지도 모른다)을 보는가 하면, 오후 1시부터 술자리를 시작해 저녁까지 장소와 사람을 바꿔가며 내달리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곳에선 광고 따오는 일로 직원이 평가를 받는 듯했다. 그러니 기사의 비문이나 논리적 비약은 일상이었다.


'빨아주는' 기사 일색인 곳도 있었다. S사 수장의 법정 공방이 한창 이슈일 때 그의 개인사를 풀어내는 기사를 장문으로 쓰게 했다. 심지어 내가 퇴근한 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이름으로 데스크가 빨아주는 기사를 또 써서 올렸다. 사실 기업 빨아주는 기사를 쓰는 일은 우리나라처럼 열악한 언론산업환경에서 수익을 위한 불가피한 면이 있다고 치더라도 타인의 바이라인으로 기사를 올리는 일은 금기사항이다. 이런 곳에서 일을 시작한 한 친구는 "아, 그거 우리도 그래. 지금도 우리 데스크 내 이름으로 기사 올리고 있을 걸?"이라고 말했지만 앞서 말한 '알만한 언론사'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기자 개인이나 노조의 반발에 부딪히게 된다. 일을 시작하는 곳이 중요하다는 말이 그래서 있는 것 같았다. 여담이지만 이곳에서 내가 국장에게 항의하자 국장이 한 말은 "왜? 그러면 안돼?"였다. 당연히 그러면 안되지. 언론 밥 20년 먹었다는 양반이 그걸 몰라서 물을까. 뻔뻔했다.


이 모든 것이 각기 다른 매체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러다 보니 기자를 지망하는 이라면 적어도 필기와 실시 등의 전형을 보고 입사하는 매체에 가야 이런 일을 안 겪을 가능성이 높다. 어디든 크게 다르겠냐만 입사하기 어려운 곳에 가면 적어도 이런 일을 겪을 때 같이 분노하거나 공감해줄 동료나 선후배가 있을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다. 자신이 생각하는 '상식'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곳으로 가라는 말.



5.2020년 봄여름가을

사실 올해 꽤 적은 급여를 줄 수밖에 없지만 쓰고 싶은 기사를 쓸 수 있도록 장려해주겠다는 곳도 가봤으나 이해하지 못할 기사를 푸시하는 경향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취재한 내용이 데스크가 요구하는 기사 방향과 다를 때 이를 수용해주는 데스크가 있는가 하면 자신이 지시한 방향대로 기사를 만들라고 요구하는 데스크도 있다. 이곳은 아니겠지 하면서도 몇 차례 후자에 가까운 일을 겪었다. 이상한 주장들을 수용해야만 했고, 이곳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는 동시에 임금을 올려 이직하게 된다.


계획대로 착착 맞아떨어진 게 아니기 때문에 몇 개월 텀이 생겨버렸지만 일단은 그렇다. 내일 경력직으로 첫 출근을 앞두고 긴장돼서 이런 글을 쓴다. 보건복지나 노동, 사건 등의 사회 일반이나 사진부에서 일했던 내게 산업부 이직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물론 날 받아준 곳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터다. 이런 양쪽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1인분을 해내야 할 텐데 당장은 걱정이 크다. 사회부는 현장에서 워딩을 치거나 분위기를 기록하는 등의 얕은 기사라도 당장 작성이 가능하지만 내가 맡게 될 증권이나 건설부동산 쪽은 기본 지식이 없으면 취재 자체가 어렵다. 기자들도 그래서 부서 이동 때 애를 먹는다. 이걸 해내야 하니 속이 편할 리 없다.


작은 매체지만 다행히 데스크는 일간지 등에서 기사를 써오던 사람들이다. 취재 관행이나 이 바닥의 돌아가는 낌새를 쉽사리 캐치하는 이들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말도 안 되는 기사를 요구하거나 언론계와 전혀 무관한 지시를 내리진 않을 가능성이 높다. 언론산업은 결국 사람장사라는 말이 있듯 누구한테 어떻게 배우냐가 중요한 포인트다. 내가 배워서 어떻게 할 시기(연차)는 아닌 듯하지만 기사 잘 써서(=배워서) 나쁠 일은 없다. 언제부터 어디까지 해내냐가 관건이겠지만.



6. 내성의 범주

직장을 자주 옮긴 건 분명히 마이너스다. 이를 수용해줄 만한 새 직장을 만나는 건 운에 가깝다. 잦은 이직에도 이를 상쇄할 수 있는 기술이나 역량을 지니면 상황은 달라진다. 나는 다소 운에 기대는 편이 아닌가 싶다.


돌이켜 보면 내 나름 퇴사 이유들이 있었다. '이러려면 일반 기업 다녔지'라는 생각이 드는 일들을 작은 곳에서 특히 많이 겪게 된다. 그러니까 언론계가 아니라면 굳이 이 급여를 받으면서 할 필요가 없는 일들로 시간을 보내게 된단 거. 그러니 업계에 한 다리 걸쳐놓고 이런 일을 하는 게 맞나 하는 고민을 많이 하게 됐고, 다른 분야에 있는 친구들의 이야기도 듣게 된다. 이걸 참아? 싶은 일화들이다.


친구 A는 직장에서 상사에게 뺨을 맞았다. 이후 화가 나서 공론화하려고 내게 상담한 적이 있다. 이 일은 상사가 고개를 숙이며 친구에게 거듭 사과한 끝에 일단락됐는데, 친구가 결국 참고 같이 다니는 게 내게는 충격이었다.


친구 B는 직장 내 괴롭힘을 빈번히 당했다. 이 주제로 얘기하면 나도 모 상사를 고용노동부까지 불러낼 수 있지만 어쨌든 회식 자리에서 동기 밥을 안 챙겼다는 이유로 쌍욕을 듣거나 갖은 수모를 겪는다. 수년간 인사고과에서도 불이익을 당해 승진이 동기들보다 몇 년이나 늦어졌다.


친구 C는 업무차 나간 회식자리에서 거래처(?) 직원이 자신의 얼굴에 술을 부었다고 한다.


친구 D는 회사 사람들과 일하는 방식에 이견을 보이며 일주일 넘게 회사에서 그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는 경험을 한다. 이게 누구의 잘못인지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쉽지 않은 일은 분명하다.


친구 E는 자신보다 6~8살 가까이 어린 거래처 직원이 종 부리듯 했다고 말한다. 하청 관계도 아닌데 대뜸 반말에 오라 가라 빈정대거나 소리를 지르는 식이다. 때리고 그냥 그만둘까 몇 번이나 고민했다고.


이처럼 사람에 따라 별 거 아닐 수도, 별일일 수도 있는 일들이 각계에 널리고 널렸다. 나는 주변에서 이런 경험담을 들을 때마다 내가 스트레스를 소화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봤는데, 결국 언론계에 대한 어떤 기대가 남아있는 게 원인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걸 애정이라 불러야 할지 뭐라 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다른 분야와 다른 차이를 이곳에서 찾았던 것 같고, 그게 곧장 실망으로 이어져 탈선하고 말았다.


앞으론 직업 그 자체보다 인생 선에서 계획하는 것이 있기에 일을 그만두거나 이직하는 일이 쉽지 않을 듯하다. 알면서도 다니고 욕하면서도 다니고 울면서도 다니는 게 직장이란 말이 있던데 내가 이걸 감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 선배는 그랬다. "가족이 생기면 죽어도 죽지 못한다"라고. 이런 말을 듣고 보니 나야말로 가족을 이룰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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