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 다른 스트레스: 모자람

부끄러움과 화가 낳은 의욕을 안고

by OIM
KakaoTalk_Photo_2020-11-16-22-46-34.jpeg


심경 변화가 주변 물건에 드러나는 편이다. 생각이 많을 때 윈도우 바탕화면이 지저분해지는 식이다. 집안에 옷가지를 널브러뜨리거나 설거지 거리를 쌓아둘 때는 의욕상실인 경우가 많다. 반면 생각이 정돈되면 집안 물건을 정돈한다. 대게 깔끔을 떤다. 이 행동 양상은 대게 극과 극을 달리기에 종종 중간 없는 삶을 산다.


오늘은 모처럼 신경을 긁었다. 그래서 행동 양식이 상당히 러프 해졌다. 평소엔 라면 국물이 튈까 키보드에 휴지를 깔고 먹는다면 오늘은 그냥 라면을 먹고 국물을 닦아버리는 식이다. 그렇게 하겠다는 의지가 간섭한 게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행동이 변한다.


원인은 직장 스트레스다. 일에 치여 하루를 보내고 나서 '너 왜 일을 질질 끄냐'는 질타를 들었다. 하루 종일 글쓰기에 골몰했지만 지켜본 상사 입장에선 할 수 있는 말이다. 다만 나도 입장이란 게 있다. 괜스레 입이 튀어나온 이유다.


구차하지만 변명하자면, 일이 좀 많다. 넘쳐흐를 정도는 아닌데 숙련도가 필요하다. 그러니 그 전까진 일에 치일 수밖에 없다. 오늘 나온 지적도 그런 맥락에 기반한다. '왜 빨리 익숙해지지 않냐'라거나 '노력을 더 하라'는 일종의 요구다.


내가 맡은 분야도 많다. 동일 업종을 넓게 가져간 게 아니라 여러 업종을 다양하게 부여받았다. 개별 업종에 대한 공부가 필요한 상황에서 연이어 큰 이슈가 터지며 따라가는 일조차 버겁다. 루틴 한 업무를 처리하며 여유롭게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주어진 업무를 시간 내 처리하기 위해 업종에 대한 지식과 동향이 담보돼야 한다. 그게 아니면 일이 늘어진다. 굳이 퇴근 후 일을 하지 않더라도 일과시간에 제 속도를 내기 위해선 여가 시간을 할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미덕처럼 굳어진 토지에 발을 디뎠다.


상황이 이러니 별달리 취할 옵션은 없다. 이대로 물러나기도 유쾌하지 않다. 살아오며 그랬듯 내가 뒷걸음질 칠 때는 능력이나 역량 부족이 아니라 인간이나 시스템에 의한 염증이 주된 원인이었다. 그러니 당장의 지식 부족이 불러오는 업무 딜레이는 일반적인 직장 스트레스와 결이 다르다.


이 결 다른 스트레스를 해소한다거나 어떻게 해보려고 글을 쓴 건 아니다. 가슴 언저리에 자리한 짜증 같은 것의 원인이 내 결점에서 비롯됐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 느끼는 기분을 오래 간직하려고 끄적인다. 부끄러움도 아니고 화도 아닌 이 미묘한 감정의 배합이 묘하게 사람을 의욕적으로 만들어서.


덧) 회사 사람이 블로그를 찾아본다고 하는 바람에 저쪽은 또 '아사리판'이 돼버릴 듯하다. 일기는 역시 수첩에나 써야 하나 싶고:(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0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