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마주할 때

아파.

by OIM

오랜만에 쓴다. 오랜만에 쓰면 꼭 '오랜만-'으로 시작한다. 오늘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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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글을 많이 쓴다. 대부분 써야 하는 글이다. 그 대가로 임금을 받고 끼니를 해결한다. 그런 생활을 영위한다.


브런치에는 안 쓰려고 했다. 사적인 글을 쓸 여력이 없다. 쓰는 일에 지쳤다. 평소에 날을 세워 글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쓰고 나면 날이 선다. 욕을 많이 먹고 있다.


글쓰기로 욕을 먹는 일은 '브런치에 쓰는 일'보다 훨씬 오랜만이다. 이유는 대체로 '못 써서'다. 커리어가 발목을 잡는다. 다양한 일을 했던 게 전문적이지 않은 이유가 됐다.


문투가 문제다. 요즘 쓰고 있는 문투는 기사체다. 이걸 못 해내고 있다. 글쓰기에 스타일이 있다는 걸 새삼 느낀다. 비단 스타일의 문제는 아니다.


요점도 없다. 속된 말로 글에 '야마'가 없다. 예컨대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인공지능 반도체를 제2의 D램으로 육성하겠다"고 했을 때 이 말의 함의를 나는 모른다.


구체적으로 '인공지능 반도체'가 반도체의 종류인지, 인공지능에 활용되는 반도체를 뜻하는지, D램이 무엇인지, '제2의 D램'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등이다. 이걸 알아야 쓰는데 나는 모른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걸린다. 한 번 욕을 먹으면 두 번째는 조심스러워진다. 다시 시간이 걸린다. 악순환이 반복된다. 글쓰기로 욕먹은 경험이 적어서 적잖이 당황했다.


오늘은 상사가 격앙됐다. 부하 직원에게 할 수 있는 말의 범위를 가정했을 때 이 경계를 넘나들었다. 아슬아슬했다. 화가 났지만 이유를 생각했다. 그리고 조금 서글퍼졌다.


쓰는 이유도 서글픔에 있다. 이 감정을 따라가면 조갯속에 감춰놨던 살이 나온다. 본심이다. 그래도 글쓰기는 무난하게 해낼 수 있다는 속살에 생채기가 생겼다. 조금 다쳤다.


다음 수를 생각한 것은 아니다. 그냥 멍하다. 1. 이렇게까지 못 하나 2. 이렇게 일 하고 돈 받는 건 옳은가라는 두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교차한다.


사람 일이란 게 그렇다. 칭찬을 받으면 무의식 중 고양된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다만 양 극단을 경험하는 일은 드물다. 그 경험을 내가 하는 중이다.


처음엔 자책했다. 사람이 돈을 주고 일을 시킬 때 기대치를 못 채우면 벌어질 수 있는 당연한 일로 여겼다. 근데 아니었다. 욕을 먹고 취할 자세는 웅크리는 일이 아니었다. 웅크리면 주변 모든 것이 거대해졌다.


그다음엔 귤을 먹었다. 어제 12,000원 주고 사온 싱싱한 귤이다. 깠다. 3개나 먹었다. 기분이 좀 풀렸다. 우리생협에서 구입한 현미빵도 먹었다. 그다음엔 라테를 내렸다. 이 밤에.


내리면서 생각했다. 지금 먹어도 괜찮을까. 괜찮지 않으면? 커피 좀 마신다고 죽지 않는다. 잠은 좀 못 잔다. 근데, 그게 어떻단 말일까. 맞다. 그게 어때서.


글도, 일도 못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의 실타래를 엮었다. 커피가 떨어지는 40초 동안. 그게 나를 위로하는데 필요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터졌다.


물론 '못한다'는 건 상처를 동반한다. 하지만 그마저 이해하기로 했다. 누구나 못하는 일은 있다. 그게 자신 있던 분야라서 상처가 조금 클 뿐, 별일 아니다.


다만 인정하는 일은 어렵다. 아니 낯설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모르겠다. 마주한 실패가 손을 내밀 때 그것을 잡을지 선택하는 일은 늘 그렇게 낯설고 어렵다. 진짜.














푸. 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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