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진다

연차와 함께

by OIM
KakaoTalk_Photo_2020-12-30-22-38-55-3.png
KakaoTalk_Photo_2020-12-30-22-38-55-4.jpeg
한동안 스벅 커피를 먹다 보니 이 상태로 연말까지 왔다. 어쩔까 하다가 다이어리를 받았다. 속지가 구겨졌거나 울어서 별로였다. 별 상관은 없지만 기분이 덜 났다.


그런 날이 있다. 오늘은 뭐라도 읽어야겠다는 기분이 드는 날 말이다. 광화문에 들러 일을 보고 교보문고로 향했다. 예상대로 사람이 많았다. 기억 속에 있는 날들만큼 많은 수는 아니었지만 단일 공간에 모인 사람치곤 상당히 많은 편이었다. 순간 코로나가 떠올랐다. 괜찮을까. 아니, 괜찮을 리 없다. 집에 있는 것보단 덜 괜찮을 거다. 알면서 간다. 서점 하나 들리기도 망설이는, 그런 시절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가 사회에 확산된 지 어느새 1년이 다 됐다. 해가 넘어간다.


책을 찾으러 이동 중이었다. 뒤에서 큰 소리가 났다. "마스크 벗으시면 안 됩니다!!!" 보안요원이었다. 목소리가 제법 강경해서 처음엔 거부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상황을 파악했다. 할머님 한 분이 얼굴을 드러내 놓고 계셨다. 마스크는 턱 아래에 걸친 채 웃고 계셨다. "먹고 있잖아요." 보안요원이 반쯤 소리를 내질렀다. "쓰세요!!!!" 할머니가 다시 말했다. "먹는데..." 더 이상 논쟁은 없었다. "쓰시라고요!!!!!" 나는 이 광경을 보며 사회가 너무 삭막해진 게 아닐까 하다가도 저 보안요원에게 이 분은 몇 번째 '턱스크'일까 생각하니 내심 이해도 갔다. 사업장은 확진자가 발생하는 즉시 폐장에 소독, 영업 중지니까 그 상황에서 너무한 건 오히려 할머님인 걸까 헷갈렸다.


못 보던 잡지가 나왔다. <지금, 만화>라고 한국만화영상위원회에서 발매하고 있었다. 가격은 3,000원이다. 시사지처럼 얇은 두께도 아닌데 이 가격이라니 공적 자금이 투입되는 게 아닐까 생각해봤다. 요즘 하는 일이 그래서 사고가 저쪽으로 튀었다. 착한 가격에 마음이 혹해서 과월호를 찾으러 갔다. 과월호 중 재난을 주제로 한 게 있어 그걸 찾았다. 하지만 교보문고엔 과월호를 두지 않는다는 답변을 들었다. 별 소득 없이 책장을 뒤지다가 궁금한 게 생겼다. 만화 잡지를 찾다가 발길이 멈춘 지점에 대한 이야기다. 잡지 분류에 '문학'과 '예술'이 따로 있었다. 만화는 이 둘 중 어디로 분류될까.


KakaoTalk_Photo_2020-12-30-22-38-55-2.jpeg 에세이 잘 안 사는데 오늘은 타인의 덤덤한 생각이 필요한 날이다.


머릿속에 떠도는 호기심을 구겨 넣고 에세이 코너로 갔다. 사회과학이나 인문학 책을 살폈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늘은 그런 날이 아닌 것이다. 좀처럼 사보지 않는 에세이 코너에 가서 장기하의 <상관없는 거 아닌가?>와 이석원의 <2인조>를 샀다. 뮤지션 특집처럼 보이지만 둘은 연관성이 없다. 언젠가 작가 이석원의 글을 보려고 했는데 그게 오늘이었다. 작가 장기하의 글은, 장기하가 조선일보와 인터뷰한 글을 보고 사려고 마음먹었다. 사고가 흥미로웠고, 기자가 잘 썼다. 그리하여 두 권은 내 손에 들려 집까지 도착했다.


책을 의자에 올려두고 이런 이야기를 쓴다. 시시콜콜한 하루에 대한 감상이다. 연차를 썼기 때문에 마음에 여유가 있다. 아니, 심적 여유는 덜하고 여유를 누려야 한다는 의지가 있다. 그래서 휴식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무용하고 의미 없는 이야기를 푼다. 늘어진 시간과 바닥에 눌어붙은 육체를 일으켜 어떻게든 쉬었다는 티를 낸다. 누군가 보라고, 내가 쉬었다고.


내일은 올해의 마지막 날이다. 사우나에서 깨끗이 씻고 머리도 자르는 '기분'이란 걸 내고 싶은데 아무래도 힘들 듯하다. 제주도도 가려다 말았다. 호텔방에 틀어박혀 일출을 보려 했지만 이성이란 게 남아있었나 보다. 가려는 욕망과 시국에 대한 인식이 맞붙어 후자가 이겼고, 그 결과 냉장고를 채운 채 집안에 틀어박혔다. 호텔비만큼 보일러를 쓰겠다고 생각했더니 엉덩이가 뜨겁다. 그 상태로 타자를 친다. 이 정도면 올해의 마무리로 부족함이 없다.


올해도 이렇게 간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실패를 마주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