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일까, 문화일까, 뭐랄까
길을 걷다 작은 스낵카 규모의 상점을 발견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역 옆에 있는 노상 매점 부스보다 조금 큰 정도다. 늘 그렇듯 콜라 한 캔을 구입한 뒤 주변을 살폈다. 희한한 통이 보였다. 통 위에는 '이곳에 속옷을 두고 가는 이에게 마법 같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소울메이트를 만나게 된다는 설명도 있었다. 통 안엔 브래지어가 한가득 담겨있었다. 첫째로 두고 간 속옷 양이 많아서 놀랐다. 둘째로 이런 일을 흥미 본위로 소화할 수 있는 문화/여유가 신기했다. 셋째로 이 통의 목적이 궁금해졌다. 추측하자면 아마 기부용이 아닐까. 당시 콜라 맛에 취해 별다른 이야기를 물어보지 않았다. 그게 문득 아쉬워지는 사진이다.
'슈트라이'라는 이름의 꼬마다. 소울메이트를 만날 수 있다는 마법의 통이 높인 상점 주인이다. 꼬마가 직접 순례자 여권에 도장을 찍어줬다. 이름을 묻자 쑥스러워했다. 옆에 있던 어머니가 대신 답을 했다. "슈트라이". 어머니들은 세상 모든 자녀들의 대변인인 모양이다. 거스름돈을 줄 때까지 어머니가 코칭했다. 작은 손으로 야무지게 돈을 세었다.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콜라에 정신이 팔렸다. 그래서 사진으로나마 순간을 담았다. 물론 허락을 받았다.
조금 더 지난 후의 일이지만 큰 도시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찍으려다가 할머니로 보이는 분이 달려와 산티아고에서 찍은 모든 사진(?)을 지우라고 요구한 적이 있다. 아이들에게 의사를 물어봤는데, 아직 찍지도 않았는데, 심지어 스페인어로 삭제를 강요했다. 그 이후로 늘 물어보거나 내가 찍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게 습관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