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코너: 에피소드 '마르코'
새벽같이 나왔는데 다른 순례자가 있었다. 이 사람들, 자꾸만 길 위에서 보게 된다. 알고 보면 순례길 첫날 피레네 산맥 넘을 때도 내 카메라에 찍혔던 브라질 커플이다. 마르코네 부부. 가진 것 없이도 행복하다던 그들은 순례길 내내 자신들의 속도로 길을 걸었다.
하루는 같은 숙소에서 묵다가 저녁을 같이 하게 되면서 친해진다. 나도, 그도 사진을 업으로 한 적이 있어서 짧은 영어에도 불구하고 대화가 됐다. 심지어 그는 여전히 카메라를 들고 다녔다. 산티아고에도 DSLR과 렌즈를 카메라 가방에 담아왔다. 저 순간도 마르코가 찍고 와이프가 뒤에서 지켜보는 모습이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가 찍고 싶은 순간 시간을 지체하기 때문에 조금 일찍 나와서 자기 페이스대로 걷는 듯하다. 마르코는 장비가 무거웠는지 결국 중후반부에 부상을 당해서 페이스가 급격히 떨어지고 만다. 하지만 둘은 결국 순례길을 완주하고, 카메라로 찍은 사진과 경험을 바탕으로 전자책을 출판하기에 이른다. 우리는 인스타 아이디를 교환하고 완주 후에도 종종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들은 현재 브라질의 어느 산속에서 오두막(?)을 지어놓고 사는 듯하다.
여담이지만 카메라 바디와 렌즈, 메모리 카드 등을 모두 챙겨 왔길래 도난당하면 어쩌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보통 직업 포토그래퍼의 장비는 최소 수백만 원에서 최대 수천만 원을 호가한다. 그랬더니 와이프와 자신이 번갈아 씻는다며 가방을 품에 안고 "마이 프레셔스"라고. 마르코도 웃고 나도 웃었다.
리코 GR3 서비스 컷. 새벽 5~6시경 찍은 풍경이다. 헤드랜턴을 켜야 할 정도로 어두운 길에서 삼각대 없이 이 정도는 찍힌다. 첫 번째 사진은 감도를 6400~12800 정도로 올리고 찍은 사진이라 노이즈가 많다. 아래는 감도와 셔터스피드를 낮추고 숨을 멈춘 채 찍었다. 대략 1/10~1/15 정도는 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