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년] ✈︎산티아고 기념 일기
☀︎순례길은 퇴사와 함께 찾아왔다. 떠나는 많은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그랬다. 한 달만에 산티아고행을 결정했다. 수년 전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를 구실 삼았다. 친구는 산티아고 경험담을 종종 들려줬다. 오랜 시간이 지난 그의 기억 속에서 '산티아고'는 조금씩 빛이 바래는 듯했지만 묻어나는 그리움은 감출 수 없었다. 친구의 이야기는 내 마음속에 남아 불씨를 키웠고, 비용이나 나이로 미뤘던 내 먼 여행길의 서막을 마침내 열고야 말았다.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아닌 것'이라며 티켓팅을 한 게 2019년 9월 어느 날. 항공료는 왜 그리 저렴했던 건지. 퇴사 직전 하늘을 올려다보며 운때가 맞다는 말을 실감한다.
☀︎떠나기 전날 밤 짐을 모아뒀다. 리코 GR3와 롤라이 35s도 보인다. 한쪽 어깨에 디카, 반대쪽에 필카를 메려고 하다가 결국 롤라이는 두고 갔다. 공항 검색대 통과 때 필름 문제도 있고 현지 필름 수급과 운반 등으로 짐이 될까 고민한 결과다. 이 사진은 여러모로 당시를 떠올리게 한다.
☀︎연희동에서 버스를 탄 뒤 홍대입구역에서 내려 공항철도를 기다렸다. 이른 새벽 공항철도 승강장에는 캐리어를 든 사람들이 많았다.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긴장과 설렘을 느꼈다. 떠난다는 실감이 나기 시작한 것도 이맘쯤이다.
☀︎마을이나 공항에서 쓸 벙거지를 가방 위에 올려뒀다. 등산스틱을 새 것 그대로 조심스레 감싸 놓은 모습에서 초심자 티가 난다. 신발도 이틀 전에 받았다. 나름 준비한다고 했지만 엉망진창이다. 돌이켜보면 이마저 아련한 추억이다.
☀︎공항 한쪽에 있는 수하물 저울. 적재 허용치를 훌쩍 넘기는 게 아닐까 걱정하다가 예상보다 작은 수치에 실망(?)했다. 차후 가방 무게는 순례길을 걸으며 15kg을 넘게 되는데, 돌아올 때 잰 무게는 17kg을 상회했다.
☀︎인천공항에서 탑승장으로 이동 중이다. 여행을 앞둔 이들의 에너지가 사람을 들뜨게 만든다.
☀︎구청에서 발급받은 따끈따끈한 여권과, 티켓을 들고 비행기 타러 가는 중. 에스컬레이터가 마치 '바이킹' 같았다. 마음이 그렇게 붕 뜰 수 없었다.
☀︎중국동방항공을 타고 우선 청도 국제공항으로 날아갔다. 비행 중 날개를 찍었다. 구름이 발 밑에 깔리는 모습에서 이번 여행의 비범성을 감지했다. 자발적으로 배낭을 메고 한 달 이상 떠나는 해외 여행이라니.
☀︎한때 뉴스에 나왔던 중국 입국자 지문 등록 절차다. 경유할 뿐인데도 지문을 등록한다. 열 손가락 다 해야 하는데 모두들 거리낌이 없다. 나만 찜찜한가 싶었다. 해외를 안 다녀봐서 그런가.
☀︎중국동방항공 기내식. 청도 국제공항(중국)-파리 샤를 드 골 공항(프랑스) 편 비행기 안이다. 돼지고기, 닭고기를 선택할 수 있고 사진처럼 나온다. 도착 몇 시간 전에는 우측 사진처럼 빵과 커피를 준다. 기내식을 비롯해 서비스 불만이나 캐리어 분실 등 인터넷으로 동방항공의 악명을 보고 간 터라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다. 당시 내가 이용했던 한국-프랑스, 스페인-한국 왕복 항공권이 60만 원 초반대였으니 가성비론 훌륭한 편이다. 중국 공항을 경유했으나 대기시간이 짧았고, 길 때는 동방항공에서 제공하는 무료 숙소 서비스(픽업 포함)까지 제공받았다.
☀︎한국을 떠난 지 20여 시간만에 샤를 드 골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가 지겨울 때다. 하지만 순례길 출발지인 생쟝(Saint Jean Pied de Port)으로 가려면 아직도 육로로 14시간 넘게 달려야 한다. 그렇게 프랑스에서의 여로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