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뇌가 복작복작
"그, 뭐죠? 탄산. 스파클링, 그거."
쿨라임 피지오를 떠올리지 못해 점원과 얘기했다. 순간적으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는데 메뉴판에서도 찾지 못했다. 뒷사람은 기다리고 나는 버벅거렸다. 해맑게. 정신이 없어서 그런가. 그런 상태로 쓴다.
1. 오늘도 정시퇴근. 기분 좋은 일이다. 다만 그렇게까지 좋지는 않은 상태. 이유는 회사에서 한 회의에 있다. 대표를 포함해 글쟁이 팀 회의였는데 거기서 업무가 얼추 정해졌다. 회사의 콘텐츠 창구가 될 웹사이트 하나를 전담하라는 지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에게 맡길 테니 마음대로 해보라고. 이거 어쩔.
웹사이트에 콘텐츠를 올리고, 올릴 내용을 취재하는 정도로 업무를 정했던 입사 인터뷰의 내용이 허망해졌다. 결과가 좋으면 매체 등록도 노린다는데 혼자서 매체를 만드는 수준에 이르러 머리를 굴리고 굴려도 각이 안 나온다. 진지하게 방향과 방법을 논의할 상대도 없다. 실무진은 나 혼자라고 봐도 무방한 환경에서 어디서부터 손댈 것인가. 농사를 짓던 이에게 황무지를 주며 농지를 경작해 곡물을 수확하란 말인데, 문제는 지시하는 이가 농사와 거리가 먼 인물이라는 데 있다. 위기다.
2. 긍정의 회로를 돌려보면, 내가 편집장이다. 다 할 수 있다. 다 해야 하지만 다 할 수 있다. 방향성과 속도를 잡을 수 있고 키워나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키워서 제대로 커 준다는 전제가 붙지만 전제를 충족한다면 만족감은 상당할 거다.
망하면 안 되겠지만 망해도 직접적인 타격이 덜한 매체 사업을 내 돈 들이지 않고 시도해볼 수 있다. 훗날,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웹진을 제작할 생각이었는데 예행연습이나 사전제작쯤 되려나.
3. 이 일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면 좋겠는데 편집장을 하면서 다른 매체 서포터나 다른 직원과의 협업 등을 요구하면 얘기가 또 다르다. 생각만으로 엄청난 부하가 온다. 실무에 돌입하면 어떨까.
기사나 콘텐츠 제작은 또 어떤가. 편집장이지만 1인 매체나 마찬가지다. 외부 필진 확보와 지속적인 발제 겸 자기 검수, 퇴고, 출고 등을 혼자 해내야 한다. 경우에 따라 기고글 검토도 내가 해야 한다. 섭외도 난관이다. 취재 스케줄과 주기적인 기사 송고, 최소 하루 한 개 이상의 글과 장기적으로 다양한 아이템 확보 및 글 게재. 어휴, 긍정 회로의 저항값은 상당하구나.
4. 춥다. 패딩을 입어도 열린 지퍼 사이로 냉기가 서린다. 한 차례 언덕을 오르고 나면 지친 폐가 힘찬 숨을 뱉어낸다. 계절의 색을 띤 날숨은 입김이 되어 사라진다. 바야흐로 겨울이다.
집 앞에서 오랜만에 점박이를 만났다. 턱시도라는 이름이 더 어울릴 정도로 말끔한 녀석이다. '오?!' 이런 표정이다. "쫏쫏" 소리를 냈더니 이내 다가온다. "왜?"하고 앉았더니 주변을 맴돌며 몸을 비빈다. 무릎에 머리를 들이민다. 야옹야옹 울어댄다. 반갑다.
줄 게 없어 일어섰다. 비비는 걸 멈추고 한 차례 올려다본다. 다시 야옹거리며 몸을 한껏 움츠린다. 추운가 싶어 쳐다보니 조금 떠는 듯하다. 보고 있자니 애잔해 발걸음을 옮겼다. 따라온다. 다시 다리 사이를 돌며 몸을 비빈다. 줄 건 없고 데려갈 수도 없다. 난감하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 한참 전 새끼들을 데리고 다니더니 애들은 어쩌고 혼자 나와서 아양을 떨고 있나. 꼬물이들을 위한 몸부림인가, 꼬물이들이 없어서 몸부림인가. "미안 형 간다" 하며 돌아서 '얘한테 형은 아니구나'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같은 건물 사는 사람이 "아이 예뻐"라는 말을 크게 내뱉으며 고양이를 불렀다. 고양이도 놀라고 나도 놀랐지만 이어폰을 꽂은 그 사람은 놀라지 않는 듯했다. 금세 그에게 간 턱시도는 아양을 떨어대는데 거참 애정 고픈 녀석이다 했다.
5. 고타츠를 만들 부품이 왔다. 작은 나사가 포함된 가격이 5천 원 남짓인데 택배비가 붙어 8천 원 정도 들었다. 미루면 이번 겨울도 지나칠 것 같아 급하게 주문한 것. 오늘은 머리가 복잡해 카페에 왔지만 얼른 들어가 만들 예정이다. 기대 중.
6. 옆자리 건너 옆자리에 낯선 사람이 앉았다. 앉을 때부터 앉아서까지 한참을 쿵탕 거린다. 랩탑 전원을 연결하고 맥북을 펼친 뒤 다시 자리에 앉는 동안도 '이렇게까지 충격을 줄 일인가' 싶을 정도로 테이블과 발판을 뒤흔든다. 따지고 보면 카페에서 어떻게 하든 무슨 상관 정도로 치부하고 말 일이다. 내가 예민한가 보다 싶기도 하다. 한데 이 사람, 폰 게임을 하기 위해 콘솔게임 조이스틱을 꺼낸다. 폰 게임을 조이스틱으로 한다. 콤보, 콤보, 콤보, 아마도. 폰을 테이블에 올리고 조이스틱은 테이블 밑에서 손으로 거머쥔 채 따닥, 따다닥, 따닥을 반복한다. 게임마저 역동적이다. 지저스. 주로 글을 쓰러 카페를 찾는 내게는 치명적인 위치 선정이다. 아쉽다.
추신. 그가 통화한다. 중국사람인가 보다. 이곳에 올 때마다 소음과 관련된 문제는 늘 중국사람에게서 비롯된다. 오늘이 최소 세 번째. 편견이 생기는 과정을 실험적으로 경험하는 피험자가 된 것 같다. 불필요하게 안 좋은 기억을 만들어가는 것만 같은.
7." 회식이니 이런 날 마셔 줘야죠."라며 거절을 어색하게 만드는 술자리 태도가 싫은 건 지 괜찮은 건 지 애매하다. 애매한 강요. 애매한 기분.
추신. 술을 마시기 싫다거나 못 마신다는 사람과 굳이 술자리를 가서 술을 권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궁금하다. 왜 그러는 걸까. 단순 호기심인데 정말 궁금하다. 이런 건 어디다 문의해야 알 수 있을까.
8. 집에서 '오예스'를 하나 먹고 왔더니 티라미수 케이크 맛이 떨어진다. 놀라운 효과.
9. 토요일을 앞둔 금요일에 닿기 직전이다. 이렇게 목요일을 긍정한다. 목요일 밤은 그 정도 값어치가 있다. 직장인이 긍정 회로를 작동시키는 유형에는 시간 개념을 희석시키는 방법이 유효하다. 나는 지금 유효타를 날리는 중이다. 주말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