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대도시, 그곳은 버섯의 나라
사람들이 좋았다. 밝은 표정과 호의적인 태도는 찍는 사람도 웃게 했다. 몇 마디 대화 없이 우리는 즐거웠다. 사진을 보여주면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그 모습들이 순례길에 힘이 됐다. 덕분에 800km 여로를 아무런 부상 없이 걷게 된다. 길에서 마주치는 모든 것들이 행복이었다. '동키(짐 운반 서비스)'도, '점프(버스 등으로 구간을 건너뛰는 것)'도 내겐 불필요했다. 즐거웠다.
행선지인 로그로뇨로 향하던 길이다. 허허벌판에 차도 드문 도로 위 어딘가에서 사람 한 명이 걸어오고 있었다. 강하게 내리쬐는 해보다 그의 존재는 훨씬 더 인상적이었다. 작은 여인은 자신만의 보폭으로 꾸준히 걸었다. 점처럼 작았던 그가 마침내 앞을 지날 때 카메라를 들었다. 그가 곧 맥락이자 전부인 사진은 그렇게 탄생했다. 묘한 순간이었다.
로그로뇨. 에스파냐 중북부 라리오하 주 주도다. 팜플로나에 이어 두 번째로 거쳐가는 대도시다. 도시에 진입해 건물을 찍어봤다. 사람이 없는 풍경은 잘 찍지 않지만 도시가 주는 느낌이 예뻐서 그냥 찍었다. 옛것은 이렇게 남아서 도시를 빛내는구나 싶었다.
스쳐가는 도시 속에 누군가의 일상이 있었다.
로그로뇨의 한 알베르게다. 아마 평이 좋았던 곳으로 기억한다. 그래서인지 문을 열기 전부터 대기자가 많았다. 먼저 온 이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곳에 들렀다가 두 번째 점찍어둔 숙소로 발길을 옮긴다. 저렴하지만 인원 제한이 있어 늦으면 입장 전에 '컷' 당하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도시 외곽에 있어 사람이 적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저 멀리 사람들이 건물 벽에 앉거나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곳으로 가기 위한 길에 멋진 벽화를 마주했다. 건물 사이로 그늘이 져 길은 보이는 것보다 훨씬 어두웠다. 거기다 온몸에 도장을 찍은 아저씨라니 이건 마치 갱단이 아닌가. 가뜩이나 조심해야 할 일이 있어 몸을 사리는 와중에 앞서 가던 아저씨가 나를 보고 웃었다. 그 웃음에 긴장이 풀려서 카메라를 들었다. 그러고 보니 조금 닮았나?
마르코다. 또 같은 숙소에서 묵게 됐다. 나중에 마르코가 얘기해주는데, 이들은 '칩피스트 원'을 찾아다닌단다. 우리는 같이 알베르게 벽면에 가방을 세워두고 개장을 기다렸다. 다른 순례자들과 이야기를 하거나 주변을 둘러보며 잠시나마 쉬었다. 그 찰나가 순례길에선 굉장히 의미 있게 다가온다. 충실한 하루하루 사이의 여유란 걸 체감하는 느낌이랄까.
팜플로나 알베르게에서 침대 1, 2층에 각각 누워 이야기를 나눴던 그 친구다. 외형은 전형적인 한국인이라서 어딜 가도 오해를 많이 받는다고 한다. 당시 순례길에 알게 모르게 퍼져있던 한국인에 대한 악소문을, 한국사람처럼(?) 생긴 바람에 외국 친구들로부터 종종 들었다고. 우리 둘은 한국 사람보다 외국인들과 종종 어울리는 편이었다. 그래서 '어글리 코리안'으로 묶이는 불상사를 피할 수 있었다.
순례길 초반 한국인들은 숙소에 모여 술을 마시고 떠드는 일이 잦았다. 그러다 보니 숙취나 부상, 컨디션 저하 등을 빌미로 '동키'를 이용하거나 '점프' 하는 이들도 생겼다. 일부는 휴가 일정과 부상 때문에 순례길 초중반에 한국으로 돌아갔다.
하루는 어느 알베르게에서 한국인들이 삼겹살 파티를 벌인다. 이들은 다른 숙소에 묵는 한국인들까지 초대(?)해 판을 키웠다. 알베르게는 기본적으로 호스트의 허가 없이 외부인을 들이는 일을 금하고 있다. 이 과정에 외부에서 들어온 한국인이 들켜 쫓겨나는 일이 생긴다. 하지만 그들은 또다시 몰래 들어와 술판을 즐겼다고 한다. 이들이 벌인 판은 온 숙소에 삼겹살과 김치 냄새 등을 남긴 채 막을 내렸다. 한국인에 대한 악명은 덤이다. 외국인들은 당연히 컴플레인을 제기했고, 나는 순례길을 걷는 도중 이런 부류의 이야기를 몇 차례 접하게 된다.
당시 한국에선 순례길에서 민폐를 끼치는 한국인에 대한 이야기가 기사화되는 등 관련 이슈가 있었던 걸로 안다. 그 현장에 내가 있었다:( 흥미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