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화는 보티네스 저택
레온 대성당을 찍으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다. 한 앵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대성당의 부분 부분을 여러 장에 나눠 담았다. 이번엔 레온 대성당 특집이다.
순례길의 중간 거점 역할을 하는 레온에서 이틀간 머물렀다. 많은 순례자들이 이런 코스를 따랐다. 쉬지 않고 걷다가 이쯤에서 하루 쉰다. 나도 그랬다.
레온에는 한국 라면을 파는 가게가 있다. 중국 분들이 운영하는 곳이다. 이곳을 거쳐가는 한국인들의 필수 코스 같았다. 숙소에서 20분을 걸어가 라면 6개를 샀다. 돌아오는 길은 반쯤 깡충깡충 뛰었다. 기분이 좋았다.
숙소 앞엔 KFC가 있었다. 그 옆엔 '까르푸'라는 대형마트가 있었다. 떨어져 가는 샴푸와 바디샴푸를 샀다. 재정비에 더할 나위 없는 환경이었다. 만 하루 푹 쉬었다.
레온에는 볼거리도 많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레온 대성당'이 있다. 안토니오 가우디가 지었다는 '보티네스 저택'도 있다. 그 외 이것저것 많다. 나는 이 두 곳을 집중 탐방했다. 도시가 커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모처럼 여유를 즐기는데 사달이 벌어졌다. 첫 번째 행선지로 레온 대성당을 들렀는데 사진을 찍다가 배터리가 다 됐다. 짧은 사용 시간은 리코 GR3의 고질병으로 불린다. 배터리 2개 중 남은 하나를 최대한 아껴 썼다.
거기까지였으면 좋았을 뻔했다. 진짜 큰일이 터졌다. 공중 화장실이 없었다. 숙소까진 최소 20분 이상 걸렸다.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갔다. 눈 앞의 가게에 들어가 커피를 주문했다. 잔돈도 안 받고 화장실로 뛰었다.
레온 대성당은 입장료로 6유로를 받았다. 고민하다가 들어갔다. 옳은 선택이었다. 눈앞에 기회가 있다면 잡는 것이 대부분 바람직했다.
웅장했다. 종교적 색채보다 건축양식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런 건물이 탄생한 배경에 종교가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깊은 인상'은 결국 종교의 것이 된다. 오래도록 머물고 싶었(지만 화장실이 급해서 나왔)다.
유서 깊은 장소에 가면 보이는 것 이상이 있어서 좋다. 그걸 공유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어렸을 땐 미처 몰랐던 세상의 단면이다. 이제야 그것을 본다.
어두웠다. 그래서 빛났다. 스테인글라스가 하늘에서 반짝였다. 사람들이 연신 고개를 들고 사진을 찍던 이유가 있었다. 바닥에 누워 천장을 보고 싶었지만 성당이라는 장소가 마음에 걸렸다. 결국 못했다.
곡예를 부리면 이런 모습이다. 앞선 사진에서 허리를 한층 꺾으면 천장을 찍을 수 있다. 약간의 민망함을 감안하고 고개를 젖혔다. 시야에 들어온 모습은 만족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