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사회
머리가 많이 자랐다. 너저분한 뒷머리는 목선을 탄다. 납작한 뒤통수를 따라 모발이 눕는다. 넓게 헤쳐 모인 그것들은 질서가 없다. 덥수룩하다는 말은 이럴 때 쓰인다. '오늘에야 말로...' 퇴근 전 그런 생각을 했다. 머리를 깎아야지. 이번 주 내내 품었던 의지다. 오늘도 속절없이 계획으로 돌아간다. 마음은 이미 미용실 이건만. 아니 마음만 사실 미용실이다. 왜냐면.
머리를 깎는 대신 커피숍에 왔다. 스타벅스다. 늘 가던 집 근처 연희 DT점이다. 가봐야 어디 멀리 가겠나. 회사를 마치고 들어온 길이다. 랩탑을 펴고 글을 쓴다. 뭐라도 적어야 하는 날이다. 그런 기분으로 하루를 기록한다. 어째서 비극은 글밥의 찬이 되는지. 그저 이런 날은 적는 맛이 있다. 지친 날의 위안을 활자에서 찾는지도 모른다. 무언가로 등을 토닥이고 싶던 고단한 하루다.
그만두겠습니다. 이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메시지를 전하기까지 한동안 망설였다. 단호한 이유를 안고도 주춤거린 이유를 나는 모른다. 타인에게 하는 말은 그렇게도 쉽건만 앞가림은 늘 난제다. 면접 볼 때 이야기 나눴던 담당자를 불러냈고 나는 의사를 밝혔다. 메가톤바 같은 매끈한 얼굴에 빵빠레처럼 주름이 잡힌다. 감정의 골. 나는 저 표정을 안다.
사유를 밝혔다. 1. 면접 때 밝힌 급여 마지노선을 지키지 못하면서 왜 나를 불렀나? 2. 나(전문가)를 뽑아놓고 왜 아마추어 같은 결과물을 바라는가. 3. 지시는 내리면서 지원을 하나도 못하면 업무를 어떻게 보나. 적은 급여와 부적절한 업무 프로세스, 무리한 지시 등을 지적했다. 무엇보다 1번에서 판은 이미 엎질러졌다. 심지어 마지노선은 사측에서 물어봐놓고.
담당자는 아무 말도 못 했다. 간간이 해명을 시도했지만 별다른 내용 없이 지적한 내용의 원인이 어디인가를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그도 그렇다. 이곳보다 높은 급여를 제시하는 기업의 면접을 이곳에 합격함으로써 취소하고 온 터다. 고로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한 내 지적에 담당자는 할 말이 없다. 그런 말을 들으려 한 건 아니었지만 결국 "죄송하다"는 말을 듣고 만다. 이게 뭘까.
이어 나온 대화는 부탁이다. 퇴사에 앞서 일을 해달란다. 내가, 그러니까 글 쓰고 고치는 능력을 필요로 하는 업무를 며칠 내로 마감해 달라고. 별 거 아닌 일이지만 마음이 싸하다.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들이 퇴사할 때 이들은 붙잡지 않았다. 상황은 나빠졌지만 위기감은 실무를 파악하고 있는 나의 몫이었다. '어쩌려고 저러나' 싶던 게 쓰나미가 되어 나를 덮친다. 당황스럽다.
원래 내 일도 아니다. 내가 하기로 한 업무는 사실상 손도 못 댄 채 다른 일만 떠맡다가 이까지 왔다. 업무협조란 명목 아래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는 일'처럼 내게 넘겼다. 그마저 할 수 없는 형태로 내게 떠넘긴 탓에 나는 '해야 하는 일은 아니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이란 이유로, 할 수 없는 형태로 넘어온 할 수 있는 일'을 언제부턴가 완성시켜 나갔다. 그런데 또.
갈증 난다. 탄산을 끊으려던 생각이 설탕물에 녹는다. 이 관념적 망상은 나를 콜라로 이끈다. 집 앞 골목 모퉁이에 있는 조그만 구멍가게. 가판대 하나를 중앙에 두고 공산품과 생활용품, 간식 등을 구분해 놓은 그곳에서 작은 만족을 찾는다. 이렇게라도 찌뜬 하루의 피로를 탄산에 실어 공기 중으로 보낸다. 술도, 담배도 안 하는 탓에 기껏 짜내는 일탈은 이렇게 달콤하다.
마시고 집에 가서 과식해야지. 과식하면 늦게 자겠지. 늦게 자면 늦잠 잘 테고. 먹고 잔 몸을 일으키기는 새벽이나 아침이나 매한가지로 힘들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내일을 거부하는 상상이 되어 계획으로 구현된다. 10살. 그 정도 어렸더라면 전기장판에 머리를 파묻고 열두 시까지 늘어지게 잠이나 잘 텐데. 가만. 10살이 많으면 어디다 머리를 파묻게 될까.
엉뚱한 비관 끝에 낙관이 온다. 삶을 멀리서 보기 위해 나는 하루의 끝자락에 섰고 오늘을 돌아보며 억지웃음을 짓는다. 카페는 마감 준비로 분주한 소리를 내고, 창 밖 날씨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내일은 영하 7도로 공기가 얼어붙겠고 사람들은 저마다 입김으로 걸음을 피울 테다. 오전 일곱 시, 그때가 오면 나는 마지막 출근을 한다. 평범(平凡)이 이토록 먼 것을 이 겨울에 어떻게 하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