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좀...
지겹다. 일 안 하고 노는 일도 말이다. 엄밀히 말하면 놀기도 제대로 못 논다. 놀이도 돈이 있어야 하는 법. 그런 이유로 다소 추운 겨울을 웅크리고 버틴다. 이렇게 쓰고도 직장이야 잡으려면 널리고 널린 것을. 고르고 고른다고 쉬는 텀을 만드는 걸 누굴 탓하랴. 그래도 고르지 않고 가거나 어설프게 알아보면 이런 일이 생긴다. 어떤 일이냐면.
고용노동부에서 연락 왔다. 일전에 넣은 진정 건으로 출석 요구 문자가 온 거다. 입증할 자료 등을 지참한 채 출석 일시를 알려왔다. 고작 10만 원 남짓한 금액으로 사실관계까지 다퉈보자고 할 줄 몰랐다. 아니, 그러지 않기를 바랐다. 귀찮았다. 그런데 출석 요구라니. 다이어리에 스케줄을 적고 통장 내역과 녹취 파일 등을 확인했다. 나름의 준비. 그걸 해나갔다.
이 회사는 건축 회사다. 요 몇 년 사이 나름 수익을 잘 내고 있는 기업이다. 하지만 일전에 적었던 것처럼 퇴근 후 마음대로 사람을 끌고 가거나 업무량을 전임자의 두 배로 시키는 등 '일당독재'의 폐해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던 곳이다. '돈 주는 사람이 갑'이란 말을 여실히 증명하던 곳. 갑작스러운 회식을 앞두고 직원들이 했던 "여기는 '안 간다'는 선택지가 없어요"라는 말처럼 대표의 말이 원리원칙 위에 군림하던 그런 곳과의 문제다.
퇴사 후 임금을 덜 줬다. 전 달에 비해 일급을 적게 책정했다. 수당 등을 모두 떼고 기본급에 일수를 곱해 급여를 지급했다. 수당 그거 사실 얼마나 되겠나. 일도 어지간히 했으면 넘어가려 했으나 문득 전임자의 약 2배로 일한 게 생각났다. 게다가 그곳의 희박한 저작권 개념 탓에 애 먹었던 기억이 살아나 고용노동부에 진정서를 넣었는데 위와 같은 답이 왔다. 당황.
진정서를 처음으로 냈다. 괘씸했다. 진정서 '내용'란에 조목조목 적었다. 순번을 붙여가며 임금 미지급, 계약서 미작성, 부당 지시, 과잉 노동 등이 어떤 식으로 이뤄졌는지 서술했다. 계약 내용에 담겨 있던 부당한 조항에 대한 내용증명이나 말을 뒷받침할 자료의 존재 유무도 적었다. 그렇게 해서 출석 요구를 받았고, 조금 전 건축 회사에서 차액을 지급할 테니 진정을 취하해달라고 한다는 내용을 고용노동부로부터 전해 들었다.
내가 근무할 때 퇴사한 전임자의 수당 지급 항목을 월말 지출 항목에서 삭제하라는 지시도 받았다. 이를 전임자에게 전해 줬고 이후 일은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 불과 몇 만 원이었지만 그런 식의 일처리에 적잖이 실망했다. 내게 벌어진 일을 예상하진 못했지만 임금이 덜 지급됐을 때 그렇게까지 놀라지 않았던 이유는 앞선 상황을 겪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상황은 일단락되는 듯하다. 차액을 지급받고 진정을 취하한다. 과정과 내용을 고용노동부 담당자가 알려줬다. 남은 과정은 두 가지다. 1. 차액이 지급되는 것을 확인한다. 2. 지급 확인 후 진정 취하서를 작성해 고용노동부에 보낸다. 1번을 기다리고 있다. 마감 기한 등을 듣지 못해 언제 일이 끝날지 알 수 없으나 가능하면 조속하게 털어내고 싶다. 정말 불필요한 소모 아닌가.
여기서 한 가지 눈여겨볼 점이 있다. 고용노동부 담당자의 자세다. 사측의 입장을 전하며 "미지급액 때문에 왔다 갔다 할 수도 없어서"라며 "지급해줄 테니 진정을 취하해달라고 한다"는 말을 전했다. 중재하는 입장이란 점은 이해하지만 마치 잘못한 게 없지만 상황이 곤란하니 이쯤에서 그만하자는 사측의 뉘앙스를 그대로 옮기는 듯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진정서에 여러 가지 적으셨던데..."라고.
당연히 받아야 할 돈을 받지 못해 정부 기관의 힘을 빌려서야 받아내는 상황에 대해 담당자가 보인 태도는 조금 의아했다. 마치 쌍방 과실을 대하는 경찰의 태도 마냥. 물론 과실의 사실 여부는 따져보기 전까지 모르는 일이라고 하지만 굳이 저런 입장을 취해서 가뜩이나 품을 들여 자기 권리를 찾아가는 사람에게 억하심정을 불러일으킬 필요가 있을까.
이 와중에 건축회사에서 차액을 지급했다. '호랑이 제말'인가 '오비이락'인가. 아무튼 진정 취하서를 받았는데 같은 문제를 다시 제기할 수 없다는 조항과 함께 자발적으로 취하서를 제출한다는 내용 등 답해야 하는 문항 몇 개가 있다. 그거야 그렇다 치고, 부당한 일을 몇 가지 당했으나 받아야 할 금액만 정상적으로 받으면 문제 삼지 않는다는 그 간결한 관계를 회사는 이렇게 끌고 와야 했을까. 사람 참 어지간히 쉽게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