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 없이 다가오는 공격처럼
누군가 다녀갔다. 글쓰기로 소일거리 하는 이곳에 말이다. 누구인지, 왜인지 알 수 없다. 갑자기 방문자가 늘었다. 조회수를 보니 썼던 글을 하나씩 읽었다. 특정 글에 편향되지 않은 것을 보면 한두 사람이다. 네이버에서 이곳으로 옮긴 이유는 익명성의 파괴였다. 그곳에 쓰던 일기를 오프라인에서 아는 이들에게 들켰다. 그래서 이 사실을 발견했을 때 '설마' 했다. 아는 사람인가. 아는 사람에게 일기를 보이는 건 아무래도 민낯을 까는 기분과 유사하다. 머리를 뒤로 묶고 헤어밴드를 한 뒤 뿔테를 끼고 슬리퍼를 입은 채 편의점으로 향하는 길 불특정 한 지인을 마주친다든가 하는 일처럼. 살짝 불안하지만 호기심에 누군가 읽고 간 걸로 한다. 티를 내지 않는 한 괜찮다. 아는 사람이라도 내가 모르면 된다. 그럼 된다.
1. 갑작스러운 일은 조회수에 그치지 않는다. 샤이니 종현이 죽었다. 실검에 뜨기도 전 소식을 들었다. 기자 하는 친구들을 통해서다. 친구 중 언론인이 아닌 사람을 찾는 게 빠를 정도니 정보가 빨리 돈다. 이게 뭔가 싶었다. 카톡방에 뜬 속보 아닌 속보. 현실감이 없어서 "뭐가?"라고 되물을 뻔했다. 맥락과 화법에 맞지 않게 대꾸부터 나갈 정도로 뜬구름이었다. 이윽고 포털에서 사실을 확인한다. 갑작스럽다. 누군가의 죽음이란 거.
2. 일면식도 없다. 기자 하면서 드물게 연예인을 볼 일이 있었지만 종현은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기분이 가라앉았다. 단순히 타자의 죽음을 내면화하는 과정에서 영향을 받은 건 아니다. 미디어를 통해 꾸준히 접해오던 이미지가 그의 소식을 무겁게 했다. 웃고 웃고 웃던 모습들이 머리에 남았다. 예능이나 음악 프로에서의 밝은 모습들 뒤로 죽음이 오버랩된다.
3. 배우 김주혁이 죽었을 때도 그랬다. 관계없는 이의 죽음에 마음이 동했다. 엄밀히 보면 살면서 우연히 마주칠 확률마저 희박한 배우의 죽음에 왜 나는 중해지는가. 알 수 없다. 그게 뭐가 중한가. 파고 없는 일상에 주름을 만든 사건 뒤로 점잖았던 감정에 생채기가 났다. 연예인의 죽음이란 게 어쩌면 대면하지 않는 사회에서 유일한 이웃이었던 걸까 싶기도 하다.
4. 나는 내 이웃의 죽음을 마주하는 중일까.
5. 이런 기분은 처음이 아니다. 그러니까 타인의 죽음에 상처받는 일 말이다. 몇 년 전 고독사 기사를 쓸 때도 이랬다. 혼자서 세상을 떠난 사람이 살던 곳에 다녀왔다. 기사와 맞지 않는 사례라서 쓰지 못했던 걸 이제야 밝힌다. 서른다섯에 생을 마감한 그녀의 이야기다.
6. 그녀는 동생과 살았다. 서울의 한 빌라촌에서 함께 살다가 죽기 얼마 전 다퉜다고 한다. 동생은 그 길로 집을 떠나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죽은 지 한 달이 지나 자신의 방에서 발견됐다. 방은 온통 구더기 투성이었다. 한 여름의 일이다. 기르던 강아지는 케이지 안에서 죽어있었다. 방 안은 사람의 피와 기름으로 범벅이었다. 여름의 열기와 발 디딜 곳 없을 정도로 늘어난 구더기에 죽은 이의 잔유물이 바닥을 덮었다. 신발이 쩌억쩌억 소리를 내며 바닥에 들러붙었다. 죽음을 알리는 냄새는 2~3개 층을 메웠다.
7. 사람이 고스란히 살던 흔적 위로 대책 없이 많은 수의 구더기가 기어 다니는 현장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마주하는 일은 상당히 묘하다. 우리 또래의 자취방 모습인데 주인이 없다. 그 어색한 평범함 뒤로 슬픔인지 뭔지 모를 감정이 흘러내린다. 알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는 사람의 죽음을 취재하러 가서 관찰하고 기록하는, 기자라는 양반이 그러고 있다. 내가 그랬다.
8. 사람의 사후 흔적을 정리해주는 업체가 있다. 일본에서는 이런 업체의 등장이 이미 낯선 환경은 아니라고 들었다. 무연고 사망자 또는 가족이 있지만 연락이 닿지 않거나 유가족이 수습을 거부하면 관할지에서 업체 등을 통해 죽은 현장을 정리한다. 이 업체가 방을 청소하고 유품을 자루에 담아 옮긴다. 특수약품을 써서 냄새를 지우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방 안을 정리한다. 그날도 그랬다.
9. 죽은 이의 삶이 몇 자루 포대에 담겨 나온다. 그날은 세 자루 남짓이었다. 여름 햇살이 강한 오후 3시 무렵에도 복도는 어두웠다. 복도 끝에 달린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이 포대를 비췄다. 포대 끄트머리에 걸친 햇살이 어쩐지 허망했다. 활짝 열린 방문 앞에 옷걸이가 있었다. 고인의 핸드백 등이 주렁주렁 걸려 있는데 그게 왠지 슬펐다. 이마저 포대에 담겨 태워야 할 것으로 분류되겠지. 그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10. 해가 지기 전 현장을 나왔다. 해가 지기는커녕 쨍할 때였다. 여전히 날은 밝았고 건물에는 냄새가 진동했다. 방 안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업체도 마무리 준비를 서두를 때 건물 밖으로 나와 전봇대 앞에 섰다. 여전히 신발은 찐득 거렸고 인중에 밴 냄새처럼 방 안 공기가 맴돌았다. 기분이 좋지 않은데 침착했다. 어떤 생각을 해야 할지 판단이 안 섰다. 이게 뭐지?
11. 왜. 서른다섯. 방치. 죽음. 햇살. 사람 기름. 피. 구더기. 혼자. 포대자루. 핸드백. 여름. 온갖 생각이 뒤섞였던 그날 나는 오랜 친구들에게 "잘 사냐 이 새끼들아" 정도의 문자를 보냈던 것 같다.
a. 이 와중에 종현에 관한 기사가 22시 현재 <네이버>에서만 108페이지를 넘겼다. 페이지당 기사 여럿에 중복된 카테고리는 하나로 묶이니까 대체 얼마나 많은 매체가 비슷한 내용으로 죽음을 소비한 걸까. '어떤 청년', '김주혁', 'sm엔터테인먼트', '싱어송라이터', '네티즌 의견', '마지막 메시지', '왜?' 등 '알 권리'란 게 때로 지나치게 폭력적인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b. 기자들의 절대 권력 '알 권리'와 '언론 자유'는 이런 명목으로 희생되는 개인의 권리를 구제하지 않는다. 보도에 대한 1차적인 가치(뉴스) 판단은 기자 개인이 (주로) 하면서 보도로 생기는 문제는 회사(매체) 뒤에 숨는다. 권력층을 상대할 때 이 방법은 유효하지만 그 외 취재원에게 이는 얼마나 권위적인가. 이런 기준을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언론 자유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언론계도 고민 좀 해야 할 듯.
c. 누구 말마따나 언론인들의 펜은 그들 스스로를 향하는데 매우 보수적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펜촉을 밖으로 향해야 비로소 날이 서는 펜이라면 '스피커 채널'이 범람하는 이 시대에 그것의 가치는 어디에 있나.
d. 뉴스의 가치. 매체의 존립. 수익모델. 애초에 이것들을 제외하고 이야기하는 게 난센스다만. 이런 걸로 고민하는 걸 보면 하필 저널리즘을 전공한 내 죄가 아닐까 싶기도.
ㄱ. 원래 적으려던 글은 가벼운 일상이었는데 서두를 잘못 풀었네. 내 잘못인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