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시간은 좀...'

by OIM

"스타트업 청년들을 만났더니, 주52시간제도 시행에 예외조항을 둬서 근로자가 조건을 합의하거나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고 토로하더라. 게임 하나 개발하려면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발언이다. 난 데 없이 뭇매를 맞고 있다. 발화의 맥락은 알겠다. 하지만 취지에 비해 거친 표현은 비판의 여지를 남겼다. 하필 이 시국에 그런 위치에서 저런 말을 했을까.


윤 전 총장에 대한 호불호는 뒤로 하고 '120시간'에 대해 말해보자. 저게 왜 위험한 발언으로 해석될까. 노동시장을 과거로 퇴행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대권주자로 (아직은) 손꼽히는 사람의 노동관은 법으로 죄여 놓은 노동량(시간)을 풀 수 있다는 시그널로 읽힌다.


규제를 풀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 수 있나. 주 52시간 제도 아래 음성적으로 이뤄지던 근무들이 버젓이 '정상 근무'로 둔갑하고 만다. 과로(에 대한 정의는 분분할 수 있지만)가 제도권 내에서 고개를 들고 개인의 생활을 침범하는데, 이런 풍토가 잘못됐다는 의식이 옅어진다. 합법이라는 보장이 있다면 말이다.


일례로 이쪽 분야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던 문화가 하나 있다. '(사스)마와리'라고 경찰서 기자 생활을 뜻하는 수습기자 교육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 문화는 거의 정확히 주 '120시간' 근무를 준수한다. 회사마다 다르지만 내가 겪은 바는 그렇다.


일단 주 7일 중 6일을 일한다. 일과 첫 보고가 오전 5시 30분이다. 하루 종일 돌아다닌다. 묻고 기사 쓰고 전화한다. 피곤하다. 일과 마지막 보고는 오전 1시 30분이다. 씻는다거나 자료 조사 등 다른 짓 좀 하면 2시를 넘긴다. 잠은 경찰서 기자실에서 쿨쿨. 공식적인 근무시간만 셈해도 주 120시간이다.


주말 중 하루 쉰다. 그것도 제대로 된 휴식이 아닌 게, 쉬는 날 새벽 1시 반 이후 퇴근해서 그날 밤 경찰서로 돌아온다. 다시 기자실에서 잠을 자는 거다. 첫 보고가 오전 5시 반이니까 그게 안전(?)하다. 나는 집이 화곡동이었는데, 강남라인을 돌다가 마지막 보고를 마치고 집에 가면 새벽 2시 30분경이었다. 그리고 밤 10시쯤 다시 택시를 탄다.


"기사님, 서초 경찰서로 가주세요"


이런 생활을 반복하다 보면 저절로 눈이 감긴다. 엉덩이 붙이면 존다. 물론 이동 중에도 일(관내 사건 확인)을 해야 하기 때문에 졸면 안된다. 쉽지 않다. 밥 시간을 주면 카페에 앉아 자(졸)다가 일어난다. 일어나선 다 식은 커피와 딱딱한 베이글을 욱여넣고 취재 현장으로. 이 정도로 피곤하면 소비 감각도 무뎌진다. '번아웃' 오기 딱 좋다.


이런 문화나 풍토가 근로환경에 대한 반성이나 고민이 없을 때는 당연하게 행해졌다. (아마)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보단 당연하게 보는 사람이 많았고, 이상해도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묵인 아래 대대로 수습기자 교육은 '마와리'가 선호돼 왔다. 나는 왜 이런 환경을 아무도 문제 삼지 않을까 궁금했었는데, 환경이 의식에 끼친 영향이 적지 않다고 생각했다.


윤 전 총장의 '120시간' 발언은 꽤나 허무맹랑한 이야기이다. 취지를 헤아리더라도 마냥 이해하긴 어렵다. 특히나 발화자가 야권의 대선 주자 중 한 사람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많은 사람들의 반응에 공감이 갈 수밖에 없다. ‘아, 이건 좀...’ 내 생각도 이와 다르지 않다.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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