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씨'

오랜만입니다.

by OIM

1. 일이 많은 것보다 일이 없는 쪽이 힘들다.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의 결은 다르더라도 밀도나 중량면에서 비할 바가 아니다. 특히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받는 고통은 시계만 바라보고 있을 때의 시간 흐름과 속도를 함께 해서, 스트레스 요인을 초나 분 단위로 길게 늘어뜨려 서서히 침투해오는 것 같은 느낌까지 받는다. 오죽했으면 몇 달만에 브런치를 다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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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얼마 전 고양이가 죽은 뒤 악몽에 시달렸다. '으으으...' 하면서 잠에서 깼다. 수면 중 소리를 내는 일은 인생에서 손꼽히는 일이다. 꿈에서도, 현실에서도 적잖이 놀랐다.


발단은 며칠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집 앞에 고양이 한 마리가 죽어있었다. 외상이 없어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무언가 잘못 먹은 건가 했다. 같은 날 30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또 한 마리가 죽어있는 것을 목격했다. 입에서 피를 토한 채였다. 고양이들의 죽음은 묘한 위화감을 안겼다.


얘들의 죽음을 마주한 뒤로 그렇게 많던 고양이들이 자취를 감췄다. 적어도 대여섯 마리는 보이던 녀석들 중 3마리 남짓이 가끔 모습을 보였다. '너희도 죽음을 아는 거냐'며 속으로 위로했다.


어제는 새벽에 조깅하러 나갔더니 집 앞에 주차된 차량 뒤에서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얼굴을 내밀었다. 문자 그대로 '빼꼼'거렸다. 반가웠다. 누군가는 갔지만 새 생명이 찾아왔다는 기쁨이 있었다.


며칠 사이 슬픔과 기쁨은 소나기처럼 마음을 적시고 지나갔다. 이후 그들의 눈을 응시하기가 어려워졌다. 마음에 남은 앙금이 어쩐지 슬픔 쪽에 가까운 듯하여 볼 때마다 측은함에 걸음도 망설인다. 츄르 하나 줄 것도 아니면서 감정은 쓸 데 없이 마음을 휘젓는다.



3. 살면서 '글쓰기'가 기술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생각해본 적은 드물다. 계기가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면서 좀 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근원적인 뭔가가 있다고 믿었다. 자기 업에 대한 종교적 접근 같은 거.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이 생각에 균열이 생겼다. '글쓰기는 기술이다'라고 단정하지 못하지만 '기술인 건 아닐까?' 정도의 타협이 있었다. 익숙해지면 누구나 쓸 수 있다고 생각한 형태의 글을 미완의 글처럼 써내리는 사람들을 본 탓이다. 아무런 자각 없이.


기술은 배우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배운 걸 계속 쓰지 않으면 늘지도 않는다. 그래서 10년이 지나도 성숙한 글을 쓰지 못하는 사람은 아마 배우지 않은 게 아닌지 추측하게 됐다. 내 글에 불필요한 접속사나 조사를 붙인 탓에 앙갚음의 글을 쓰는 건 아니고, 그냥 좀 섭섭해서 뭐.



4. 1번 때문에 글을 썼는데 갑자기 일정이 생길 분위기다. 역시 말은 뱉어야 씨앗이 된다. 글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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