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돼요" 현실은 언제나 영화보다 극적이다. 문제를 삼은 부분이 문제가 됐나 보다. 퇴사를 선언하며 지적한 부분을 갑자기 고쳐가고 있다. 추후 책임추궁에 대한 해명 거리를 만드는 모양이다.
장문의 지적에 "배울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라고 일갈한 상사가 모순된 행동을 일삼는다. 후임들을 가르치며 좋은 선배가 되려는 모양새다. 상관없다. 나는 떠날 것이고, 너의 가면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 알 바 아니다.
전날만 해도 시비를 걸어오면 어쩌나 고민했다. 퇴사는 책임질 수 있지만 드잡이로 인한 법정 다툼은 피하고 싶었다. 수습 범위를 벗어난 일이다. 설마 싶으면서도 사람 일 모른다는 불안이 있었다. 긴장한 채 아침을 맞이했다.
조용하다. 아무 말이 없다. 갑자기 후배를 챙기는 모습을 보인다. 며칠간 방치하던 후배를 불러 오늘은 몸소 가르치고 있다. 한 달만에 처음 보는 광경이다. 연차 20여 년은 이렇게 만들어졌나 보다. 쌍욕을 하고 고함을 치는 걸 기대한 건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속물이면 내가 좀 민망하다.
궁금하다. 말 한마디에 이렇게 돌변할 거라면 사람을 왜 괴롭히고 다녔을까. 자신이 하던 행동에 일말의 떳떳함도 없는 양반이었다니 코웃음이 다 나온다. 연차로 쌓은 권위에 눈이 멀었던 걸까. 이런 사람에게 긴장했던 내가 궁색할 지경이다.
하루 남았다. 내일이면 퇴사 의사를 전달한다. 사유도 밝혀야 한다. 저 사람을 감쌀 필요가 있을까. 굳이 이유를 지어내면서까지 보호해야 할까. 오늘 저 치의 행동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맴돈다.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란 생각보다 애처로운 형태로 비친다. 직장 잃은 백수의 거울만 하겠냐만 저런 미래는 도무지 상상이 안 간다. 부디 그리는대로 살 수 있기를 오늘 하루 바쳐서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