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은 뼈해장국으로.
계획이 틀어졌다. 퇴사를 못했다. 퇴사 길(?)이 막힌 건 아니다. 조금 연기됐다. 퇴사엔 절차가 따르는데 지난주엔 절차 밟기가 힘들었다. 결재권자가 휴가 간 탓이다.
큰 영향은 없다. 오늘 퇴사를 결정지었다. 사직서를 내고 인사권자와 면담했다. 실은 면담을 마치고 사직서를 냈으니 순서는 반대다. 조금 설득당할 뻔했으나 결과는 같다.
잠시 고민했다. '변화를 주겠다'는 말을 들었다. 나 하나에 조직이 변한다니 놀라운 말이다. 하나 세상일 그렇게 만만한가. 숱한 '퇴사'를 통해 변화란 조직에 얼마나 요원한 일인지 경험으로 배웠다.
쓰다. 뒷맛이 원래 이렇다. 아름다운 이별이란 얼마나 낭만적인가. 하지만 떨어져 나가는 조직원이 달가울 리 없다. 피해를 줄이려는 조직과 피해 사실을 털고 나가려는 개인은 같은 곳을 바라보기 힘들다. 감내해야 할 짐이다.
기대는 없다. 연못에 던진 돌은 무게 없이 낙하한다. 책임자 면담을 통해 경과를 알렸지만 피·가해자 진술이 엇갈렸나 보다. 일방적으로 당한 입장에서 어이없는 일이다. 그보다 '인간성'에 담긴 함의에 소름이 끼친다. '원래 그런 거 아니냐'는 레토릭을 나는 싫어한다.
유튜브를 봤다. 어느 자기개발러의 채널이다. 알고리즘이 이끈 채널은 퍽이나 흥미로웠다. 그는 습관의 힘을 강조했다. '미라클 모닝'도 처음 알게 됐다. 유튜버의 경험을 통해서다. 열 받으면(?) 몰입하는 내게 적절한 영상 소개 같았다. 알고리즘이 가져다준 운과 때를 이렇게 살린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새벽 4시에 일어났다. 글을 쓰고 운동을 했다(고 한다). 나는 하루키가 아니지만 각오를 다졌다. 쓰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서다. 불현듯 다짐하는 이유도 직업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존심이 남아서다. 작고 위태하지만 선명한 욕망이 마음에 불을 지핀다.
반복될 거다. 한 달에 200~300만 원 받으면 후회가 솟구친다. 글보다 밥이고 낭만보단 여유다. 그런 가치관이 대중적인 나이 때를 관통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그럼에도, 일의 경중이 연차에 휘둘리는 경험은 하고 싶지 않다.
어느 제빵사가 말했다. "연공서열 문화가 싫었다. 실력으로 평가를 해야 할 텐데, 근속 연수로 사람을 판단했다. 무슨 일을 할 수 있느냐 보다, 몇 년을 일했는지가 더 중요했다." 빚내서 자기 가게를 차린 이유다.
내 생각도 비슷하다. 생각의 근거들이 사회생활을 통해 쌓여간다. 문장을 못 만들고 발전이 없어도 직장인에게 연차는 시작이자 마지막이다. 직장이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는 곳이라도 예외는 없다. "몇 년 차예요?"로 지위와 시비가 나뉘는 세상이 이제는 좀 지겨울 따름이다.
잘 먹자. 잘 자자. 잘 쓰자. 간단하고 선명하게 나아가는 수밖에. 적어도 당분간은 그렇게 살기로 했다. 사는 거 별 거 없어도 자신을 잃지 말아야 한다며 오늘도 하루를 이렇게 넘긴다. 고생 많았다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