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보면서 쓴다고 2부 연재를 하게 됐네:(
혹평이다. 데스크가 “재미없다”라고. 기사의 중반까지 무슨 말인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단다. 통계청과 관계기관 보고서를 바탕으로 수치를 제시한 파트다. 당연히 수치만 제시하진 않았다. 하지만 수치가 너무 많다며 왜 이렇게 썼냐 물어왔다.
“잘 쓴 기사는 디테일에서 차이가 난다.” 예전에 선배에게 들었던 말이다.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서 레토릭처럼 쓰이는 말이기도 하다. “네가 백 번 떠들어봐야 수치로 보여주면 그걸 더 신뢰한다고,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알아?” 일전에 어느 데스크는 이렇게 날 가르쳤다.
경제기사다. 경제기사는 수치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전망? 네가 뭔데 업계를 전망해. 전문가들도 한 치 앞을 모르는데 틀리면 책임질 거야?” 경제부에만 10년 넘게 있었던 예전 데스크는 기자가 아는(취재한) 범위에서 기사로 말하라 했다. 보여줄 수 있는 근거를 기사에 쓰랬다.
숫자. 숫자는 경제지표를 말하는데 세계가 신뢰하는 만국 공용어다. 코로나 이전과 코로나 상황, 그리고 포스트(위드) 코로나를 전망하기 위해 통계청의 자료를 활용했다. 이에 대한 신뢰도를 더하기 위해 업계 전문가들 이야기도 들었다. 그게 재미 ‘없어졌’다. 재미가 뭔데.
재미있는 기사를 쓰려면 피처를 쓰면 된다. 아니면 르포를 써도 된다. 내러티브 기사도 있다. 주제의식을 가지고 보도하되 작법에 변주를 줘서 흥미를 더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특정 산업계의 현황과 미래를 보여주는 기사에서 재미를 찾으면. 찾으면, 응?
싸했다. 목덜미를 타고 등 뒤로 내려 꽂히는 알싸한 느낌 있잖나. 밤도 새웠고 피드백도 이해가 안 돼 “네, 네.” 추임새만 넣는데 기사 중반 이후 예상은 현실로 드러난다. “나는 이 부분이 흥미로운데. 재밌잖아. 어떻게 할지.” 데스크가 손가락으로 기사를 가리킨다.
기업. 기업 관계자가 자사의 전략을 언급한 부분이다. 각 기업은 연초에 수장들이 신년사를 발표한다. 통상적으로 그곳에 올해의 중점 전략이 담기는 편이다. 그것을 적은 부분을 데스크는 재미있다고 말했다. 궁금하단다.
한숨을 쉴 뻔했다. 말했듯 기업 전략은 연초에 발표한다. 세부 전략이나 성과는 분기나 그때그때 보도자료로 기사화한다. 정리하면 1월에 계획이 발표된 뒤 11월 현재까지 관련 내용을 상당수 매체가 보도해온 내용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데스크의 재미는 그곳에 존재했다.
“이것도 재밌잖아. 이런 걸 알아보는 건 어때?” 두 번째 포인트는 기업 관계자가 말한 미래 전략이다. 대략적인 방향에 대한 관계자 워딩을 두고 관심을 보인다. 실행계획이나 세부 전략은 나온 게 없고, 개괄적인 방향은 보도가 나오다 못해 이제 언급도 안 되는 아이템이다.
출입기자들은 매번 기업의 전략이나 방향성에 대해 기사를 쓴다. 기업에서 자료를 내거나 우연히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험들이 쌓여서 기획기사 아이템에 대한 실마리가 된다. 근데 역순을 주문하면 실무자 입장에선 벙찌다 못해 주저앉게 된다.
30분 정도 설명을 들었다. 혹평의 골자는 ‘기사에 재미가 없고 기업의 속사정이 궁금하다’ 정도다. “코로나 영향이나 이후 전망도 다 아는 내용 아니냐”라고 한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라고. 미간이 꿈틀꿈틀 인상과 웃음은 한 끗 차이라는 걸 이때 깨닫는다.
“모두가 아는 오래된 내용”이 경향성을 넘어 대세가 된 건 지난해부터다. 코로나 사태 속에도 성장을 거듭했지만 등락이 있었고, 올해 4분기 이후 ‘회복’할지 ‘성장’할지는 아직 모른다는 내용을 수치와 실무자들 의견으로 기사를 썼다. 이게 잘못됐나.
결론적으로 기사는 엎어졌다. 다 아는 말로 옮기면 킬 당했다. 피드백을 준 것처럼 기업의 전략에 대해서 써보란다. 현타는 불현듯 오기도 하지만 타인이 선물할 수도 있다는 걸 오랜만에 알게 됐다. 내 설명 같은 건 먹히지도 않았다. 밤은 왜 새운 건지.
업계에서 장기간 관련 업무나 연구를 해온 사람도 괜찮다는 생각을 데스크가 부정해버리니까 의욕이 확 꺾였다. 정말 아무것도 할 생각이 안 들었다. 데스크가 말한 기사는 올해 기업 보도자료를 짜깁기하면 2~3시간 내 쓸 수 있다. 그게 기획 기사는 아니잖나. 아니 기사는 맞나.
어제부터 멍하다. 어뷰징을 해도 한두 개 정도 이름 걸고 쓸만한 기사는 낼 수 있겠지. 그런 생각에 취재했다. 근데 “이런 걸 떠 오다니!” 라며 이틀간 우물에서 길어온 냉수 사발을 걷어 차인 기분이다. “집 뒤에 연못이 있단 말이야~” 아니, 그거랑 그거랑 같나.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기사 쓴다고 몇 번이나 연락해서 의견 물었던 인터뷰이들한테 미안할 따름이다. “기자는 날카로운 기사를 써서 출입처에 존재를 알려야 한단 말이야.” 피드백대로 기사 쓰면 날은커녕 절구공이로도 쓸 수 있겠다. 애초에 ‘날카로운’의 의미를 알긴 하나.
하기 싫다. 그래서 이거 쓴다. 네티즌 의견이나 가득 따다 분량 늘리기나 할까 보다. 바이라인에 내 이름이 들어가는 게 너무 수치플에 가깝다. 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