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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IM May 09. 2022

연휴에 품은 생각

2022.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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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가는 연휴를 붙잡고 기록을 남기려 했지만 남은 시간을 어떻게 더 의미 없이 보낼까 고민하다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잠들었다. 침대는 가끔 불편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자취방에 잘 어울리는 게, 누우면 곯아떨어지는 일 정도는 일도 아니게 되었다. 적당한 자리에 적절한 것이 있다는 것은 삶을 이렇게 윤택하게 한다. 또 뭐 하나 사려고 밑장 까는 것은 아닌데 당근으로 제습기 구입 날짜를 잡아놓은 건 궁색한 사실이다. 제습기 하나로 여름이 달라진다는 말이 있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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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책을 샀는데 그런 내용이 있었다.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자아'란 건 환상에 불과하고, 인간이란 대게 관계 속에 존재한다는 이야기이다. 주장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한다는데 다 읽어보지 않아서 판단은 보류다. 단지 이 책이 인상적이었던 건 연휴기간에 겪었던 일과 무관하지 않다. 어린이날을 맞아 파주의 한 수목원에 갔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멀미가 났다. 주변의 녹림이 증세를 완화했지만 무턱대고 즐기기에 쉽지 않은 날이었다. 글 쓰고, 기획하며 혼자 일하다 보면 사람이 그리울 때도 있는데 막상 사람이 차고 넘치면 현장을 피하고 싶어진다. 근데 처한 환경에 따라 생각이 변하는 것은 나만 그런 게 아닌 것 같았다. 푸드코트에 들러 잠시 숨을 돌리는데 옆자리에 부부가 나란히 앉아 각자 폰을 보고 있었다. 유모차에 있는 아기는 곤히 잠들어 있었고, 둘은 말없이 시간을 보냈다. 부모의 소임을 다하느라 이럴 때 잠시 짬을 내어보는 것이겠지만 둘의 관계도 아이가 태어나기 전과 같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람들의 행위나 모습에서 제각각의 이유를 찾으려고 하지만 이런 습관조차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탈 주체적 행동인가 하여, 하고 많은 책을 놔두고 이 책을 골랐다. 제목은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톰 올리버 지음. 재미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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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거쳐갔던 매체가 바닥으로 추락했다. 숱한 매체를 거쳤지만 개중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했던 곳이라 마음이 좀 그렇다. 편집장이 이직한 뒤 경영진이 바뀌었으며 소속 기자들이 모두 퇴사하고 매체 색채가 완전히 바뀌었다. 나름 분야의 전문지로서 입지를 다졌던 곳인데 새 데스크가 들어서고 나서 속된 말로 '기업 빨아주는' 곳으로 탈바꿈했다. 그도 그럴 게 내가 있던 동안(그 전에도, 후에도 그랬겠지만) 재정이 열악했고, 무분별하게 광고를 받지 않는 점을 내부에선 나름의 장점으로 꼽았다. 그래서 계기가 있으면 흔들리기 쉬운 곳이라고 봤고, 예상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광고를 받지 않고 매체 색을 유지할 수 있으면 참 좋은 일이겠지만 그 대가로 기자(직원)들의 급여 수준이 바닥을 친다면 과연 무엇을 더 우선해야 할까. 이런 고민과 관련된 일화도 있다. 재직 당시 데스크는 내게 타사의 무분별한 광고 게재 행위를 비판하는 기사를 쓰라고 지시했다. 나는 언론산업의 열악한 수익구조를 고려할 때 홈페이지 광고 게재가 그들의 생존 수단이라는 점과 독자들에게 끼치는 악영향, 이를 테면 가독성 저해나 클릭 유도를 피해 정도에 따라 어느 정도 참작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전혀 먹히지 않았다. 그때 데스크가 내게 한 말은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인데?"였다. 그러던 곳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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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동 골목길. /2022.05.08

가끔 동네 밤거리를 걷는다. 요즘 같이 사람들이 많은 시기는 밤 시간이 요긴하다. 인파도, 거리의 불빛도 어느 정도 잦아들면 고즈넉한 연희동의 정취가 그때부터 살아난다. 동네에 수년째 살면서 이곳의 매력은 비로소 불이 꺼진 다음부터가 아닌가 하여 요즘도 해가 지면 한 번씩 신발을 신는다. 나는 연희동 곳곳의 유명한 맛집과 지역색 가득 묻힌 소규모 가게들을 좋아하지만, 이런 문화를 걷어낸 풍경을 조금 더 사랑하는 것 같다. 앞으로도 동네의 색채가 오래도록 유지됐으면 좋겠다. 그런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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