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다

2018 무술년 첫 글

by OIM

새해를 산뜻하게 시작하려던 계획이 무너졌다. 허리가 아픈 탓이다. 신년 계획을 세우려고 의자에 앉아있다가 허리에 욱신 거리는 통증을 느꼈다. 별안간 '뚜둑' 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욱" 하는 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못 움직일 것 같았다. 잠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이후 몸을 일으키는데 욱신 거리는 기운이 허리에 남았다. 척추가 어그러졌나 했다. 하지만 척추 문제라면 거동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하니 근육이 놀란 듯하다. 더불어 나도 놀라버렸으니 계획보다 건강을 우선하게 됐다. ... 무언가 선명해져 좋다고 해야 할까.



KakaoTalk_Photo_2018-01-02-22-47-27-1.jpeg 코스트코에서 사온 과자. 대용량인데 양념이 굉장히 애매하게 묻은 나쵸 맛이다. 한 마디로 맛없다.


1. 스타벅스 플래너를 개봉했다. 1월이 오면 쓰려고 모셔뒀던 물건이다. 펜으로 일정을 적는데 어쩐지 종이가 눅눅했다. 습기 탓인가 했지만 종이 재질이 그런 것 같았다. 기억나는 일을 날짜별로 적고 주간 계획도 기록했다. 적으면서 속지를 살펴보니 구성이 좋았다. 달력형 속지와 일정을 풀어쓸 수 있는 직사각형 속지, 줄만 그어진 메모지 등 다양했다.


원래 플래너를 받을 목적으로 커피를 마신 건 아니었다. 커피를 마실 때 왠지 스타벅스를 자주 갔고, 가다 보니 프리퀀시가 모였다. 그렇게 모인 걸로 플래너 한 권을 받았지만 내가 쓸 건 아니었다. 이후 프리퀀시 적립량이 바닥에 가까웠다가 다시금 차오르기 시작했는데 연말엔 자칫하면 또 받을 만한 양까지 모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받아서 쓰자는 마음이 들었고 그 결과 올해의 플래너는 이걸로 정했다.


원하던 속지 구성에 기분이 좋아졌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점 한 가지는, 조금 더 '사각사각'한 필기감이 드는 종이였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런 재질에 글씨를 쓸 때의 맛이 또 남다른데 말이다. 그 외엔 전반적으로 만족.




2.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그래서 안 하던 짓을 했다. 부모님께 카톡으로 메시지를 보냈는데 어쩐지 오글거리는 맛이 강했다. 사람 사는 사회에 주고받는 안부 인사가 예의나 사회성으로 포장되곤 하지만 좀처럼 하지 않던 일이다. 뜬금없이 인사하는 일은 있어도 명절이나 연초 등을 기념해 안부를 묻진 않았다. 어쩐지 진정성 없는 일이라 여긴 탓이다. 올해는 그럼에도 부모님께 안부를 여쭸는데, 내 생각과 무관하게 받는 사람에게 의미 있다면 이 행위는 유효한 일 아닌가 싶었다. 예상대로 아빠는 무척이나 기쁜 듯 답장을 보내셨다. 엄마는 읽씹 하시길래 '어?' 했다. 평소에도 카톡을 하면 엄마는 "ㅇㅇ"라거나 "ㅇ"만 보내오는 일이 있어 이번에도 그런 성향의 연장선인 줄 알았다. 그러나 새해는 새해인지 엄마도 한참이 지나서 간단한 답을 보내오셨다. 엄마가 읽씹 했다는 생각이 들 땐 약간 섭섭했는데 답이 오자 또 멋쩍었다. 사람 마음이 참. 이런 생각을 할 무렵 누나에게 카톡이 왔다. 자기에겐 왜 보내지 않았냐는 내용이다. 내가 아무리 생각이 바뀌어 부모님께 안부를 여쭸다지만 누나에게 장문을 보낼 만큼 비현실적인 동생은 아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새해 복 많이 받아라" 정도로 인사를 갈음했다. 문득 누나가 육아하면서 조금 살가워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기분 탓이겠지. 아마.




3. 짧은 영화평.


<카페 6>, 대만영화가 청소년기의 사랑이나 추억을 잘 그려낸다고 <말할 수 없는 비밀>이나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를 보며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 시절 기억을 교실에서 맞는 5교시 봄바람 마냥 살살 간질이는 기분도 들었다. 그러나 같은 패턴이 반복되니 봤던 영화를 또 보는 느낌이다. <카페 6>는 그런 의미에서 흥미도가 앞선 두 작품에 비해 상당히 떨어졌다. 감정이입도 잘 안됐다. 볼만했으나 딱 그 정도에 그쳐 아쉬웠던 영화.


<물숨>, 제주 우도 해녀들의 삶을 그린 다큐 영화다. 해녀들도 체질에 따라 상군, 중군, 하군으로 계급이 나뉜다는 점과 체질은 노력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영화는 전체적인 해녀들의 물질부터 개인의 삶으로 들어가서의 단면까지 덤덤히 담아냈다. 해녀 왕이나 최고령 해녀, 하군이면서 수입왕 등 캐릭터를 잡은 점도 좋았다. 낯선 주제가 살갑게 다가왔다. 다만 줄곧 인상 좋은 할머니의 모습을 보여줬던 해녀가 영화 말미에 바다에서 죽음을 맞는다. 그녀를 바다에서 건진 것이 또 그녀의 딸(해녀)이었다고. 이 무슨 얄궂은 운명인가 싶다가 눈물이 터졌다. 감독은 할머니의 죽음을 알리며 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선한 인상과 웃음이 죽음과 교차되며 감정을 건드렸다. 연초부터 이 무슨.


<1987>, 중량감 있는 주제를 경박하지 않게 풀어낸 감독에게 박수를. 캐릭터 간 개연성을 보완하고 인물 묘사에 조금 더 공을 들였으면 어땠을까 했지만 별개의 캐릭터가 만들어내는 하나의 큰 사건 구성이 오히려 더 어울렸다는 생각도 든다. 김태리와 강동원 사이의 기류는 어딘가 모르게 영화 전체를 감도는 분위기와 이질적이었다. 그런 면에서 완급 조절에 아쉬움이 남지만 짜인 각본을 연출하거나 보고 나서 평하는 것만큼 감독의 연출은 쉽지 않았을 것이기에 전체적으로 재미있는 영화였다. 주제가 가진 무게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재미를 더하는 작업은 연출자의 고민과도 같았을 터. 이런 주제를 상업 영화로 끌고 오는 일이 왠지 반갑다.


*사족

- 강동원 첫 등장 씬에서 마스크 벗을 때 여성 관객들이 터뜨린 감탄으로 감정선이 흐트러졌다.

- 박종철 군의 어머니로 분했던 연기자의 오열이 빛났다.

- 박종철 군 뼛가루를 뿌리는 씬의 연출은 조금 과했다.

- 박종철 군의 부검 장면을 지켜보는 조우진의 감정 연기가 실감 났다.

- <범죄도시>의 장첸 역을 김윤석이 맡았으면 마석도의 해피엔딩으로 안 끝났겠구나 싶다.

- 문득 김윤석과 곽도원이 한 팀으로 분하면 굉장한 권력형 빌런이 탄생할 것 같은 느낌이...

- 배우를 섭외하는 연출자의 입장에서 김태리의 마스크는 꽤 큰 메리트가 아닐까.

- 문화의 힘이란.




4. SBS 김성준 앵커가 사과했다. 배우 정려원의 수상 소감에 의견을 달았다가 사람들의 질타를 받은 탓이다. 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가장한 평가를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배우 유아인이 김성준 앵커의 SNS 글을 받아치며 파급력이 커졌다.


애초에 김 앵커가 썼던 의견은 성글었다. 정려원의 수상소감 자체도 선의 가득한데 그것을 지적하는 그의 감상 포인트가 대중의 공감 포인트를 비껴갔다. 가도 한참 가다 보니 공감은커녕 반감을 불러왔다. 언론인이라는 포지션상 공개된 곳에 의견을 밝힐 때 오독의 여지를 줄일 필요가 있는데, 김 앵커의 사과글에 따르면 그는 이 부분에서 신중하지 못했다. 사과글을 읽은 뒤에도 원래 글이 그의 의도대로 읽히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사과글 내지 원 글의 진정성마저 의심 간다.


사과글에도 군더더기가 많다. "배우 두 분에게 상처를 입힌 시청자가 사과의 글을 올린다"거나 "정려원의 팬"이라는 말은 불필요하다. "공개적으로, 불명확하게 언급한 점은 제 잘못"이라는 구절에서도 자신의 방어선을 지켰다. "마지막 표현에 불쾌하셨다면 역시 사과드린다"는 구절도 조건부 사과다. 김 앵커가 이런 글을 굳이 쓴 이유를 나는 잘 모르겠다.


그는 이 바닥 기준으로 따지면 대선배이다. 연차나 직급으로 보면 어지간한 데스크급이다. 언론사에 따라서는 독자적인 칼럼을 쓰거나 논설을 쓸 수도 있는 위치다. 그런 그가 글쓰기 역량이 부족해 이런 글을 쓰지는 않았을 거라고 추측해 본다. 그가 사과문에 밝힌 것처럼 " 역으로 비난을 받으니 당황"해서 그랬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그의 글에 달리는 수많은 비판 글을 고려하면 비록 SNS라고 하더라도 공개 전에 누군가에게 한 번만 의견을 물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언론인 지망생이나 주니어 기자들은 첨삭받고 퇴고하는 일을 일상으로 여기는데 연차가 쌓이면 그게 잘 안 되는 걸까.


*사족

- 이 사안에 대해 개연성이 떨어지는 일까지 끌어와 김 앵커를 비판/난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비판/난 수위가 내 생각을 훨씬 웃돌기도 했다. 의견 표출이 쉬워진 탓일까. 만파식적이라도 하나 있으면 좋겠다.




5. MBC 인터뷰이 건은 할 말이 없다. 노력 이전에 성의 문제다. 자사 인턴을 인터뷰이로 선정한 건 직업윤리를 떠나 꼭지 전체를 실패한 보도로 만든다. 물론 현직들은 나름 할 말이 있을 테다. 지인을 인터뷰이로 섭외하는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이던가. 다만 지인을 섭외할 때는 '부득이함'이 통용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변명의 여지가 없기에...) 지인이 특정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대표적 인물이거나 입장을 대변할 수밖에 없는 직함을 가졌을 때다. 분야의 전문가쯤 말이다. 그런데 '시민의 생각'을 듣는 꼭지에 시민의 한 사람으로 자사 인턴을 섭외하다니, 데스크는커녕 맞사수에게도 욕먹을 짓이다. 하다못해 사회부 사건팀 수습 돌 때 시민 반응 인터뷰이 구성을 연령대나 성별 등으로 다양화하라는 지시도 받는데... 이로써 방송 일선에 복귀한 엠사 직원들의 공정방송 되돌리기는 조금 더 험난 해지나 싶기도.



KakaoTalk_Photo_2018-01-02-22-47-27-2.jpeg 배고픈지 보자마자 울어대며 쫓아왔다. "필요한 게 없으면 너를 찾지도 않아"라는 고양이 애호가의 말이 사실일까.


6. 지난해 연말에 급격한 서탈을 경험한 뒤 위기감을 느끼던 찰나, 이번에는 회사 4곳에서 연락이 왔다. 서탈인가 싶던 곳에서도 연락이 온 걸 보면 기존에 뽑으려던 사람을 놓쳤거나 우선 후보군에서 만족스러운 인물을 찾지 못한 기업에서 내게까지 연락을 돌렸을 가능성이 있다. 작년 가을까지만 해도 넣으면 거의 다음날 연락이 왔던 직군에서도 이렇게 텀을 두고 연락을 해온 걸 보면 말이다.


어쨌거나 상황은 이렇다. 이틀 연속으로 각각 회사 1곳씩 면접이 잡혀있다. 다른 한 곳은 이력서를 검토 후 연락을 준다고 했고, 나머지 한 곳은 간단한 유선 면접 후 대면 면접 일정을 이번 주나 다음 주 내로 알려준다고 했다. 그 밖에도 지난주에 면접을 본 곳이 한 군데 있는데 언론계에 남는다면 아마 이 곳으로 갈 거다. 하지만 연락이 오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한 데다 면접이 썩 유쾌하지 않아서 의욕은 없는 편이다.


앞으로의 상황을 예측해보면 아마 나는 콘텐츠 제작을 하며 먹고 살 확률이 높다. 기사의 형태를 띠거나 사보 또는 웹진에 들어갈 글이 될 수도 있다. 내가 글로 밥벌이를 하기 위한 마지노선으로 잡은 노동형태가 콘텐츠 제작 분야였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 기준의 끝자락에 걸터앉아 펜을 놀릴 수 있게 될 듯하다. 물론 사진은 계속해 나간다.


기준으로 정한 조건에 부합하는 건 업종만이 아니다. 연희동에 사는 내가 강남으로 출퇴근해 본 결과 웬만하면 강북에서 일하기로 마음먹었다. 따라서 근거리에 있는 직장을 찾게 됐고, 마포구나 서대문구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곳으로 지원했다. 그 결과 면접을 앞둔 기업들도 홍대입구역(도보 가능), 합정역(도보 또는 자전거 가능), DMC역(도보 또는 자전거 가능), 공덕역(마포구), 강서구 등이다.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올해는 버리는 시간을 줄일 필요가 있다.


다행스럽게도 급여 또한 마지노선은 넘길 듯하다. 조바심에 지난해 다니던 회사(급여가 밀리는)를 계속 다녔으면 4대 보험은 보험대로, 급여는 급여대로 곤란스러워질 뻔했다. 또 태어나서 처음으로 임금(11만 원가량) 미지급으로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넣게 했던 회사에 있었으면 사축의 기분을 이해하게 됐을 지도. '까라면 까는' 대표 독재 시스템이나 일을 두 배로 하고 전임자보다 급여를 덜 받는 사태를 결과적으로 방지했다.


이번에는 어떤 양상으로 직장사 뇌관이 다가올지 모른다. 다만 내 관심사는 지금 직장생활에 있지 않은 탓에 어지간하면 문제없이 넘길 예정이다. 술을 강권하는 문화나 급여가 밀리는 사태 정도가 문제라면 문제일까. 여하튼 내 고단한 구직사는 또 한 차례 능선을 앞두고 있고 나는 등산 준비를 갖춘 채 각을 재고 있다. 연초 구직이 순탄하게 흘러간다면 지난 직장의 급여 문제만 해결되면 되는데...


*사족

- 퇴사한 회사의 퇴직자들 중 상당수가 급여를 받지 못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 몇 개월치부터 소액까지 금액이 다양하다고.

- 고용노동부에 신고해도 감감무소식이라는 이야기도.

- 월초에 있는 급여일에 지난달 급여 입금 여부가 관건.

- 당연히 받아야 하는 돈을 걱정해야 하는 입장이란.




7. 경제부 인턴 때 한은 기자실에서 30분에 하나씩 아이템을 찾은 적이 있다. 숙제로 냈던 발제 거리를 선배에게 까인(?) 후 선배가 발제 거리 찾으라고 준 시간 사이클이다. 이후 나는 7개가 넘는 아이템을 발제하는데 모두 대차게 까이고 만다. 선배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까이는 이유'가 너무나 타당해서 사시나무처럼 떨었던 기억이 있다. 사람을 상대할 때 감정적인 선배가 힘들지 몰라도 이성적인 선배는 무서울 지경이란 인식은 그때 생겼다. 이후 선배의 SNS 글을 한 번씩 보는데, 자기 분야도 아니면서 사안을 들여다보는 정도가 놀랍다. 말 그대로 '공부'를 한 건지 어디선가 자료를 가져와 조목조목 의견을 펴는데 예전의 경험 탓인지 가끔은 의견이 달라도 비판 포인트를 찾기 어렵다. 이슈를 바라보는 좋은 지침이 되는 셈. 최근엔 이런 지침을 모으는(=팔로우 하는) 일에 관심을 갖기도.




8. 바쁜 한 해를 보낼 생각이다. 한동안 일에 빠져 살며 하고 싶은 일을 할 거다. 금전 투자도 필요하고 시간도 들 것이며 일의 갈래는 세 갈래쯤 될지도 모른다. 다소 늦은 길을 떠나 아직도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는 처지에 고민과 행동은 병행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각오는 결심이 섰을 때 단숨에 세우라 했다고, 인상적인 한해를 위해 '자제할 일'부터 기록해야겠다. 자유는 내게 방종과 같다는 걸 너무나 잘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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