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긋난 계획, 드러난 구획

어디서들 오시나

by OIM

일자리를 확정 짓고 결혼식에 가겠다는 계획이 틀어졌다. 일정은 다가왔고, 급한 대로 차편을 잡아 부산으로 내려갔다. 사회를 본 뒤 곧바로 식장을 나섰다. 뒤늦게 끊은 차표 탓인지 시간 제약이 많았다. 오전 6시 30분에 집에서 나와 부산으로 향한 뒤 사회를 보고 다시 서울로 돌아와 동네에 도착하니 어느덧 밤 11시. 올라오는 허기에 휴게소에서 사 먹은 핫바가 전부였다. 주린 배를 거머쥐고 동네 국밥집에서 뼈해장국 한 사발. 시장이 반찬이라더니 그릇까지 긁어먹을 뻔. 그렇게 하루가 끝났다. 어쩐지 피곤. 오가는 길 모두 버스를 타는 건 다음날을 고려할 때 좋은 선택이 아닌 듯. 적어도 한 번은 KTX를 타자. 표가 남아 있다면.



KakaoTalk_2017-12-27-14-07-00_Photo_38.jpeg 집으로 가는 길 누군가 팬더 가족을 버려놨다. 생물인 줄 알고 간 떨어질 뻔.


1. 기묘한 이야기. 오전 7시 23분 맥북이 켜졌다. 집에서 나온 지 30분도 지난 시점이다. 폰 카톡에 알람이 떴다. 맥에서 카톡 로그인됐다는 내용이다. 맥북을 누가 켰거나 자동으로 켜졌거나 둘 중 하나다. 맥북이 켜지면 카톡은 자동 로그인되는 탓이다. 이상한 일.


맥북을 덮어놓고 왔다. 심지어 콘센트도 뽑아놨다. 사과에 불 꺼진 것도 확인했다. 어젯밤 이후 열어본 적도 없다. 그래서 추측컨데, 자동으로 켜졌으면 계속 켜져 있을 가능성이 있다. 집에 가서 방전됐는지 확인하면 될 일이다. 또 하나는 켜졌다가 수면모드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 역시 배터리 잔량을 확인하면 될 일이다. 허나 로그인 알람이 뜨고 나서 원격 로그아웃 하러 갔더니 이미 로그아웃돼 있었다. 누군가 껐을 가능성을 의심하게 한다.


누군가 켰다면 도둑이다. 이 빌라 특성상 대부분 열쇠를 사용하고 있어 보안에 취약하다. 하지만 맥북을 열면 비번부터 뜰 터다. 누가 켰다고 가정할 때 로그아웃 방법이 의심스럽다. 그냥 컴퓨터를 껐을 지도. 이러나저러나 아침부터 찝찝하다. 사실 도둑이래 봤자 집에 훔쳐갈 만한 게 필카나 맥북 정도라 큰 문제는 없다만.


*배터리 89%로 떨어져 있는 걸 봐선 켜졌다가 수면모드로 들어간 듯하다. 도둑일지도 모르나 맥북을 두고 간 이상 도둑으로서의 재능이 뛰어나지 않은 듯. 어쨌든 무탈.



2. 시외버스에서 안내방송을 들었다. 출발 전 나온 내용이다. 내용은 이렇다. “비상 시 노인, 어린이, 약자가 (먼저) 대피할 수 있도록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 문구에 '여성'이 끼어있었는지는 확실히 기억나지 않는다. 중요하지 않다. 다만 비상 상황에 대피 순서가 생기는 이유가 문득 궁금해졌다. 윤리적 측면이 아니라 원론적인 차원에서 '뜻밖의 긴급한 사태'가 벌어졌을 때 배려를 권장하는 건 어떤 이유일까. 일반적으로 시외버스에서 일어날 수 있는 '비상'은 생명과 연관된 경우가 많을 터인데.


그래서 생각난 게 일전에 들었던 '윤리' 관련 특강이다. 그때 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윤리적 또는 인간적이라는 판단을 내리는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요" 그는 물음과 함께 몇 가지 사례를 들었다. 가령 이런 거다.


10대 남매가 있다. 남매는 아무도 모르게 둘이 성관계를 갖기로 한다. 근친상간이다. 하지만 이 비밀이 끝까지 지켜진다면 그 누구도 피해 보는 이는 없다. 그렇다면 이 행위는 비윤리적인가?


한 청년이 생닭을 샀다. 청년은 닭을 요리하기 전에 생닭을 이용해 자위행위를 한다. 그리고 이를 씻어 자신이 먹을 요리를 한다. 물론 이 행위는 아무도 모르고 닭은 청년이 먹는 데만 사용된다. 이 행위는 비인간적인가?


사례가 한 가지 더 있었는데 기억나지 않는다. 비슷한 종류의 사례였다. 상식 선에서 비판받을 행위지만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엇에 근거해 시비를 가려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사례를 들을 때 상당한 거부감이 일었으나 설명을 듣고 나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상호 간 합의에 따른 사회에 무해한 행동을 법과 도덕적 잣대로 재단할 수 있는가. 근거는 어디에 있나.


강사는 물었다. 우선적으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끼치지 않지만 비윤리적인가? 비인간적인가? 답하는 학생들은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강사가 답을 채근하자 비윤리적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강사는 말했다. 윤리나 인간적 행위를 규정하는 것은 이성적 사고보다 직감적 판단에 따르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해보면 알쏭달쏭한 부분도 순간적으로 판단을 내릴 때 거부감이 일면 비윤리적인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그렇게 학습돼 왔다고 하는데 수업을 들을지 오래돼 디테일이 기억나지 않는다.


이후 나는 윤리나 도덕적인 일에 대해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다. 많은 부분에서 사안을 조금 비틀어 바라볼 수 있게 됐달까. 물론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는다. 대체로 이런 생각은 많은 반발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KakaoTalk_2017-12-27-14-06-58_Photo_49.jpeg 택배 오배송 사건으로 집에서 보낸 반찬이 3~4일만에 집에 도착. 다행히 별 탈은 없다.


3. 부산행 버스 안에 좌석마다 usb 포트가 하나씩 달려있었다. 신박했지만 배터리가 충분해 쓰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 배터리가 빠른 속도로 떨어졌다. 아슬아슬하다 싶었다. 부산 종합터미널에 도착하자 30% 언저리. 콘센트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어영부영하는 사이 버스가 도착했다. 배터리는 21%까지 떨어졌다. 좌석을 확인했지만 포트는 없었다. 원래 알던 버스 좌석 그대로였다. 그럼 그렇지. 필요한 일은 요긴할 때 일어나지 않는다.


*타고 있던 서울행 버스가 고장 났다 그래서 자리에 앉았다가 차를 바꿔 탔다.


**바꿔 탄 차가 터미널을 빠져나가는 도중 아저씨 한 분이 폰을 다른 버스에 두고 왔다고 했다. 터미널 입구 근처에서 버스는 다시 순회했다. 터미널을 두 바퀴 돌아 나오는 진풍경.


***바꿔 탄 버스의 내 자리에 빨간 점퍼가 있었다. 전 고객이 놓고 내린 거라고 생각해 기사에게 돌려주려 했다. 사람들이 다 탔을 무렵 기사에게 옷을 들고 가려는데 입구에서 천천히 다가오던 한 여성이 "어? 제 자린데요." 라며 내가 서 있던 자리로 왔다. "21번 맞으세요?"라고 나는 물었다. "17번이요." 내 앞자리였다. 여자는 "누가 옷을 옮겼지?"라며 내 자리에 있던 옷을 들고 갔다. 자기가 제일 먼저 탔으면서... 괜히 뻘쭘.



4. 결혼식 사회를 보는데 살짝 버벅거렸다. 생각하던 상황과 적어온 멘트가 달라 인지부조화가 일었다. 말하면서도 살짝 당황했다. 그 정도 신고식을 치르고 사회를 봐나갔다. 주례 없는 사회지만 나름 순서가 짜여 있어 애드리브는 필요 없을 줄 알았다. 허나 식장에 따라 준비한 순서에 허점이 다분할 수 있다는 점을 이번에 알았다. 예상보다 많은 애드리브로 결혼식에 기름칠을 해야 했다. 예상만큼 매끄러운 진행은 아니었지만 사회를 부탁한 형의 아버님과 형이 연신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형이 식 도중 준비한 이벤트로 편지를 읽는데 신부의 이모들(로 추측된다)과 형의 누나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옷고름으로 눈물을 훔치는데 괜히 내 마음이 시큰거렸다. 어렵게 키웠을 딸(조카)과 막냇동생이 각각 결혼하는 데 따른 가족들의 감정일 테다. 나는 신랑이 낭독할 동안 주변을 둘러보다가 그 광경을 마주하게 됐는데 왠지 모를 울컥함이 있었다. 결혼은 참 좋은 일이구나 싶었다.



2017-12-27_17-25-26.jpg 왜...

5. 갑자기 브런치 조회수가 폭증했다. 연희동으로 이사 온 뒤 썼던 글에 사람들이 몰렸다. 오랜만에 기사 썼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은 이유다. 기사를 쓴 뒤 조회수가 급증하면 누군가 오류를 찾거나 문의를 해올까 봐 괜히 마음 졸이곤 했다. 그때의 데자뷔. 어쨌든 토요일쯤 방문자가 늘어 무슨 일인가 했는데 원인을 찾지 못했다. 브런치에서 또 어딘가에 노출시킨 걸까.



6. 새해에 이룰 여러 가지 일을 계획하고 있는 만큼 자기분석 시간을 갖기로 했다. SWOT처럼 체계적으로 할 건 아니고 제삼자의 입장에서 자신을 컨설팅해보기로 했다. 자신이 자기 민낯을 마주하는 것처럼 다소 멋쩍은 시간이 될 것 같아 두려움 반 설렘 반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시행하고 결과를 적기로.


7. 서울행 버스 안에서 폰이 꺼졌다. 저전력 모드로 해뒀지만 한계가 있었다. 덕분에 배터리가 나간 뒤 약 3시간 동안 폰을 만지지 않았다. 배터리가 꺼진 일 자체는 대수롭지 않았지만 이런 시대에 폰 없이 시간을 보내는 건 익숙하지 않았다. 할 일이 없었다. 책이 있었지만 버스에서 읽기는 부적절했고, 스마트폰이 생긴 이래 아이팟 같은 건 취급하지 않았다. 버스에서는 멍하니 티브이를 봤고 이동 중에는 사람을 구경했다. 그렇게 집으로 도착하는 시간을 흘리다 보니 폰 없던 어린 시절 나는 무엇으로 순간을 즐겼나 궁금해졌다. 허나 이상하게도 폰을 처음 만졌던 고1 이전에 내가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심지어 스마트폰이 생기기 이전에도 말이다. SKY에서 나온 플립폰을 쓰던 시절에는 문자 한다고 정신없었던 것 같은데 폰 없이 나는 어떻게 살았었나. 토요일 오후에 느꼈던 허전함이 폰에 의한 것이라면 폰과 삶을 분리할 이유 좀 생각해 봐야 할 듯.



8. 차 본넷과 앞유리, 지붕과 뒷유리 그리고 트렁크를 따라 일렬로 늘어선 발자국은 흡사 고양이 발바닥과 닮았다. 이놈 자식들은 꼭 여기서 논다.



KakaoTalk_2017-12-27-17-14-05_Photo_19.jpeg 안타까운데 사연이 과하다. 보도의 여러 갈래 중 한 가지지만 신문을 받아보던 과거와 달리 웹을 통한 개인의 뉴스 마찰면이 광범위하게 넓어진 요즘 이런 양상은 필요 이상 감정적이다.


9. 제천 화재 참사 뉴스를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중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게 있다. 천편일률적으로 보도를 감성적으로 끌고 간 일이다. '누군가의 어머니'라거나 '아내 이름을 부르며'라든가 '손녀' 운운하며 포털 한 면을 장식했다. 이런 보도 양상은 한동안 계속됐고 조금 더 사안을 객관적으로 보고 싶은 독자에게 감정적 판단을 부추겼다. 나도 마찬가지다.


사건이 벌어졌을 때 이슈가 되는 부분은 아마 비슷하다. 같은 사안을 두고도 그때그때 보도 포인트가 달라질 수 있다. 사고 현장에서 보이는 유가족의 반응이나 그들이 들려주는 사정이 부각되는 것도 사고 이후 매일 같이 뉴스를 생산해야 하는 언론사의 사정상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특히 다소 자극적인 내용이 한 매체를 통해 가공될 경우 다른 매체에서 이를 놓치기는 쉽지 않다. 비슷한 뉴스가 사건의 저변에 깔리는 이유다.


그럼에도 제천 화재 참사 보도 형태는 아쉽다. 특정 매체를 집어 구체적인 잘잘못을 따져 들면 좋겠지만 언론계에서 일했던 경험을 떠나 일반 독자 입장에서 어떤 뉴스를 선택해 보는 것이 사안을 좀 더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지 구분이 어려웠다.


커뮤니티에서 이는 반응도 보도 양상과 비슷했다. 책임자 규명을 바라며 소방당국의 판단과 이로 인한 결과에 감정을 이입했다. 의견 충돌이 생기면 이내 갈등으로 이어졌다. 사실관계에 대한 파악보다 결과에 대한 윤리적 판단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주요 기제로 작용했다. 저널리즘을 배우며 들었던 내용 중 '여론은 미디어의 보도 범주 내에서 형성된다'는 말을 목격하는 듯했다.


지진이나 대형 사건사고가 벌어지면 보도는 대체로 비슷하게 흘러간다. 세월호 참사 때 대형 오보를 겪고 또 지진 등 자연재해 등을 마주하며 실수를 통해 보도지침이 생성된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따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런 면에서 언론계는 큰일이 벌어졌을 때마다 반성이나 발전하는 제스처를 취하는데 의의를 두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해볼 만하다. 아무런 강제성도 없는 지침은 누굴 위해 존재할까.


이미 벌어진 사고의 피해자를 언급하며 '가족'의 이름을 대입하는 건 누구를 위한 수사인가. 이제는 누군가의 어머니나 동생, 아내, 손녀 등으로 독자의 감정 몰이를 유도하는 건 자제해도 좋지 않을까. 이런 보도 뒤에 분노나 슬픔 외 무엇이 남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여론 환기? 경각심 계도? 언론사의 조회수는 확실히 남을지도. 이를 통해 독자의 뇌리에 각인되는 효과도 놓칠 수 없겠다만.


독자의 입장으로 돌아가 뉴스를 보면 볼수록 모르겠다. 이런 방법만이 방법인지, 이럴 수밖에 없는 것인지, 더 나은 보도는 불가능한 건지 고민하게 된다. 이런 고민도 현장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기에 비로소 가능할 수 있겠다 싶지만 여러모로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KakaoTalk_2017-12-27-14-06-56_Photo_85.jpeg 하다 못해 비닐봉지에라도 좀 모아놓지:(

10. 쓰레기 봉지를 내다 놓고 분리수거를 하는 사이 내가 버린 쓰레기 봉지 옆에 누군가 쓰레기를 고스란히 두(버리)고 갔다. 세상은 늘 상식선에서만 돌아가지 않는다는 방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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