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시스템이란
한 가수의 죽음에 대해 적었던 글이 뜻하지 않게 방문자들을 불러왔다. 방문자 수가 평소보다 대여섯 배 늘었다. 노리고 쓴 건 아니다. 브런치의 노출 알고리즘을 몰라서 벌어진 일이다. 적었던 글은 브런치 시사이슈 게시판으로 분류됐고 모바일로 접속 시 게시판 첫 글에 자리매김했다. 그저 담담하게 일상을 적는 곳으로 브런치를 선택한 이유에 위배됐다. 주목받으면 일기를 쓰기가 부담스럽다. 공개된 웹에서 일기를 적는 주제에 할 말인가 싶다. 어쩌겠나. 기분이 그런 걸.
1. 서두가 이러니 생각난 김에 글과 관련된 이야기로 시작한다. 기사를 쓰면 가끔 취재원에게 문자를 받았다. "고맙다"거나 "감사하다" 또는 "기사 잘 봤다"는 내용 등이다. 사회부 쪽을 주로 하다 보니 문자를 보내는 주체가 대체로 어려움에 처한 이들이다. 그러다 보니 문자를 받으면 가슴이 먹먹해졌다. 내가 쓴 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을까. 그런 생각으로 감정을 갈무리했던 것 같다.
드물긴 하지만 기업 홍보를 대행하는 업체 대표에게 문자를 받은 적도 있다. "균형 잡힌 기사 잘 봤다"는 내용의 감사 문자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때 나는 직감적으로 '기사 잘못 썼구나' 했다. 기업의 프랜차이즈 불공정 계약을 규탄하는 점주들의 상황을 기업 입장과 함께 담았던 현장 스트 기사였다. 집회 취재 후 한두 시간 안에 기사를 쓰다 보니 어긋난 사실관계를 모두 확인할 수 없었다. 그 결과 그 유명한 '기계적 중립'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문자가 씁쓸한 이유는 이런 데 있다.
기자를 그만두고는 이런저런 글을 썼다. 주로 내 마음대로 쓰는 서평이나 리뷰 등인데 네이버를 이용하다 보니 이곳과 마찬가지로 우수 영화평 등에 등록되기도 했다. 블로그가 지인들에게 노출되면서 문을 닫는 바람에 모든 글이 끊겼지만 그 글에 달린 댓글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었다. "왐마, 글쟁인갑네..." 이 칭찬 하나에 한동안 기분이 들떴다. 다시 리뷰를 써볼까 했지만 게으름이 의지를 덮었다.
직업 분류상 취재기자와 사진기자를 모두 겪었다. 드물게도 둘 모두로 밥벌이를 했었고 그 뒤 기자를 그만뒀다. 돌이켜보면 취재하며 받는 스트레스와 사진을 찍으며 받는 스트레스는 종류가 다른 것 같다. 정량적으로 어느 것이 크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보도 이후 벌어지는 양상을 보면 글을 통해 오는 만족감이 사진보다 컸다. 기사를 쓰면, 지명이 바뀌고 노동자들이 파업에서 복귀하며 독자들이 좋은 기사라고 말해줬다. 단순히 사진을 글보다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만족감에 차등을 느꼈고 기자로 지냈던 날들은 내 적성을 파악하는 생의 요긴한 순간이었다.
애석하게도 나는 지금 직장이 없지만 적성에 맞는 일을 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 중이다. 남들이 보기에 조금 궁해 보일지라도 그곳에 뜻을 두고 있다. 괜찮다, 괜찮다, 이런 글들도 현실을 마비시키는 주문 같지만 사실이다.
조금 급해졌다.
어떡함.
2. 생활비가 너무 든다. 경상도 중에서도 남쪽에서 올라온 나는 숨만 쉬어도 100만 원 가까이 소비되는 서울살이 생활비가 무시무시하다. 특히나 계획대로 일이 안 될 때 마음속 감정은 일상의 장르가 된다. 요즘은 마치 스릴러를 사는 듯하다.
3. 올여름, 그러니까 하반기부터 합격률이 급락했다. 구체적으로 한 11월 이후부터일까. 이전에는 이력서를 내기가 무섭게 면접 일정이 잡혀서 여러 곳을 넣었다가 먼저 붙는 곳 탓에 나머지를 포기하는 일이 속출했다. 공채 이후 구직 패턴이 그랬다. 그러다가 지금 살짝 쫄깃함을 맛보고 있다. 너무 일찍 합격해서 가려던 회사를 못 가는 경우가 생기던 전과 달리 '어라?' 싶은 일의 연속이다.
4. 웬만하면 강북, 그중에서도 종로나 서대문구, 마포를 벗어나지 않는 직장을 구한다. 최저임금 월 200을 넘는 데다 야근이 덜한 일. 그 정도 기준으로 자리를 찾는다만 어째서인지 강남에 일자리가 몰려있다. 오전 7시에 나가도 지각을 걱정하던 강남인데...
5. 다니던 헬스장에서 매번 마지막이라며 할인행사 문자를 보낸다. 올해만 네댓 번의 '마지막'을 경험한 것 같다. 집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이 헬스장은 내가 연희동에 와서 스타벅스와 함께 가장 많이 드나들었던 매장 중 하나인데 의외로 꾸준히 가지 못했다. 잊을만하면 도착하는 문자에 운동 욕구를 느끼지만 불어난 몸뚱이가 의지를 태운다. 지방을 태우거나 의지를 불태우면 좋으련만.
6. 고등학생 무렵부터 큰 옷을 입었다. 좋게 말하면 박시한 옷이다. 옷을 구입하는 주체가 엄마이다 보니 백화점에 가면 꼭 점원이 키를 물어봤다고 한다. "키가 180이면 100이나 105는 입어야 해요~" 이 말에 나는 늘 엄마가 사 온 옷을 교환하러 갈 것인지를 두고 엄마와 실랑이를 벌였다. 성인이 되어 권투 도장에 다닐 때는 아마추어 체급으로 페더급까지 떨어졌다. 그러니 95를 입어도 헐렁이던 몸이 이제야 점원의 상식선에 올랐다. 물렁살이 좀 늘어났지만.
7. 기자 이후의 삶을 고민해봤다. 글을 쓰거나 사진을 공부하고 이민이나 유학을 가는 등 갈래는 많았는데 이제야 일단락되는 듯하다. 해가 바뀌면 결과 또는 성과를 공개할 수도 있겠다. 부디 실패보다 성공을 먼저 맛보길.
8. 최근 이직에 성공해 연봉이 6,000~7,000만 원대로 오른 엔지니어 친구가 들떴다. 외국계 기업의 정수를 맛보는 듯하다. 송년회를 호텔에서 한다며 소식을 전했다. 송년회면서 술은 안 준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게다가 연말 한 주는 강제 휴가다. 친구는 이직 후 교육 기간이라 휴일을 즐긴 뒤 한동안 미국에서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이 기간에도 일정 급여를 받으면서 교육에 임하는데 하루 4~6시간 교육을 시간대를 선택해 받으면 나머지는 자유시간이라고. 이런 환경이 가능한 건 2조 원에 달하는 회사 매출보다 'having fun'이라는 회장의 회사 운영 방침 덕분인 듯하다. 우스갯소리로 "이과 최고"라는데 이 정도면 맞는 말 같다.
9. 주말에 결혼하는 형이 식순을 보내왔다. 사회는 내가 본다. 주례는 없고 성혼선언만 아버님이 하신다고. 내일은 머리를 다듬고 정장을 세탁소에 맡겨야 한다. 대본을 쓰고 퇴고도 마쳐야지. 내려가는 차편 예약도 필수다. 지난번 사회 보기로 한 친구 결혼식 차편을 놓쳐 당일 새벽에 출발한 적이 있다. 여러모로 이번에는 만반의 준비를.
10. 원래 결혼식에 가기 전 직장을 확정 지으려 했는데 계획이 틀어졌다. 그래서 심사가 조금 뒤틀린 상태. 이럴 때 꼭 기회비용이 아쉬운 법이다. 급여가 밀리는 전 직장 탓에 가지 못했던 다른 직장 면접이 떠올랐다. ㅂㄷㅂㄷ...
11. 언시 준비할 때는 뉴스를 보거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등 노는 것처럼 보여도 나름 공채에 도움이 되는 일들을 했었다. 일 안 할 때 말이다. 근데 기자를 하고 나자 지향점이 사라져서인지 시간을 그만큼 촘촘하게 활용하지 않는다. 노를 잃은 사공처럼 손으로 물질을 해봤자 허무에 가깝다는 느낌뿐이라서일까.
12. 이래서 계획이 중요하다.
13. 이 와중에 스타벅스 프리퀀시는 한두 장 남아서 다이어리를 욕심내고 있다. 폰이나 랩탑에 즉흥적으로 메모하기도 하는데 역시 펜으로 종이에 눌러쓰는 게 조금 더 기분 좋다. 뭔가를 능동적으로 하고 있다는 느낌도 주는 데다 글자가 잘 적히는 날엔 괜스레 컨디션이 좋아지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속지 구성이 괜찮았으면 좋겠다.
14. 이 계절에 코타츠는 지극히 유용하나 또한 해롭다. 코타츠를 켜면 자꾸 드러눕는다. 엉덩이의 중량이 늘어난 탓일까. 공기가 차서 코타츠에 발을 넣으면 이윽고 자세가 무너진다. 늘 책을 옆에 두지만 펴지 않고 베게 된다. 귤이 있다면 이로운 쪽으로 조금 더 무게추가 기울 듯.
15. 종현의 죽음과 관련해 대만에서 포토그래퍼로 일하는 대만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다. 적잖이 놀란 그는 한국에서 1년 이상 거주한 경험이 있다. 대화는 영어로 했으며 내용은 이렇다.
- 도움을 주기 힘들었던 건 죽음을 선택하기까지 주변에서 그가 고통받는 것을 알아채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 아시아권에서는 울음을 쉽게 용인하지 않고 굳건해야 한다는 남자에 대한 관념이 있는 데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시장)에서 이는 더욱 심각한 문제처럼 보인다. *'이'는 감정을 감추고 보여주는 삶을 사는 것을 뜻하는 듯하다.
- 수많은 성형외과를 한국에서 봤다. 연예인에 대한 열망이나 미에 대한 추구가 강해 보였다. 이런 시선은 인기나 수입과 연관되기도 한다. 이로 인해 남의 기호나 반응을 의식해야 한다면 삶은 행복할 수 있을까. *이 구문은 의역이다.
이밖에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왠지 모르게 감성적으로 변했다. 유튜브에서 '한숨'을 들은 뒤 연관해서 뜨는 이동진의 푸른밤 오프닝 멘트를 들었더니 차분하다 못해 감정의 외벽에 기분이 눌어붙었다. 죽음이 이토록 직관적인 시대는 아니었을 텐데.
16. 네이버에서 인물을 검색하면 사망한 사람의 정보란에는 출생일 옆에 일자가 하나 더 붙는다. 그것을 볼 때 비로소 그 사람의 생애 주기가 닫힌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처럼 슬픔은 별 거 아닌 데서 불쑥 등장하곤 하는데 그것을 막을 길이 없어 우리는 상처를 트라우마라고 부르나 보다.
17. 영화 <신과 함께>를 보기 두렵다. 네이버에서 훈장 달아준 영화 리뷰도 극장에서 영화 보고 너무 화가 나서 '왜 이렇게 재미가 없나'를 체계적으로 풀어쓴 글이었는데...
18. 웃을 일 많은 연말이 되길. 웃을 수 있는 새해가 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