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소회

아이고, 춥다

by OIM

출근 첫 주가 지났다. 어쩐지 길었다. 낯선 환경 탓이었을까. 새로운 환경은 언제나 낯설다. 익숙해지는 과정이라 치자. 장단이 뚜렷한 한 주였다. 그래서 기록한다. 일기.



KakaoTalk_20180121_155307987.jpg 퇴근길.

1. 기자로 취직했다. 신생이라 기자라고 할 것도 없다. 사실상 기사 베끼기 정도로 하루 업무를 대체하는 정도다. 차차 나아질 거란 희망으로 회사를 다닌다. 덕분에 일은 편하다. 의미 있는 글을 쓰지 못한다는 정도가 흠이라면 흠.


아무것도 없다. '언론'사가 갖춰야 할 인프라 말이다. 하다 못해 검색에도 안 걸리니 말 다 한 셈. 글 하나를 써도 블로그에 쓴 일기보다 조회수가 더 안 나온다. 독자가 없다는 건 기자에게 힘 빠지는 일. 지금은 긍정의 셈법을 통해 그마저 장점으로 받아들인다. 읽는 이 없으니 취재 없이 써도 덜 부끄러운 정도?


연봉은 무난하게 받는다. 내 서울생활의 마지노선. 노동 대가의 최소치에 발을 걸치는 수준. 퇴근도 칼퇴다. 어째서인지 대표는 6시가 되자마자 집으로 가라고 한다. 저녁 있는 삶을 살란다. 잠시 기사 올리는 게 늦어져 10분 정도 머물렀다가 '집에 가라'는 말을 4번 정도 들었다. 아직까지 회식도 없다. 이것도 장점 중 하나.


거쳤던 직장 중 가장 소규모다. 취재 파트에 한해서다. 이 인원으로 현장 취재는 꿈도 꿀 수 없을 것 같지만 차차 확장 중이라고. 어쨌든 두 명 남짓한 기자가 주로 베끼는 위주의 기사를 쓴다. 이번 주부턴 발제 기사도 써야 한다. 최소 인원으로 취재 기사를 쓰기 위한 나름의 타협점이다. 그래서인지 자율성/방임성은 최고 수준.


한 가지 문제점이 있다. 기사 쓰는 속도가 떨어진다. 내 얘기다. '우라까이'에 익숙하지 않다. 사실 처음이다. 통신사에서 일하다 보니 '우라까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지금 하는 일에 애를 먹고 있달까. 너무나 비슷한 기사는 피하려다 보니 오히려 시간을 더 잡아먹는 꼴. 현장 취재가 차라리 편하겠다만.



2. 유의미한 기사를 쓸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포럼이나 세미나 취재 여부를 물었다가 "어쩌다 한 번은"이라는 대답을 들은 탓이다. 적은 인력으로 기사를 생산하는 한계는 이해하지만 한 주간 기사량과 기사 작성 패턴을 고려할 때 현장에 나가도 무리 없어 보인다만 어째서인지 반응은 시큰둥하다.


그렇다면 답변을 바탕으로 무엇을 예측할 수 있을까. 첫째, 인력이 충원되기 전까지 취재가 자유롭지 못하다. 둘째, 언론사로서 최소한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인력 충원이 필요하다. 셋째, 언론사 포털 등록을 위해 최소 1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최단거리를 가정해보자. 일단, 인력이 충원될 때까지 우라까이를 반복한다.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인력이 충원되면 취재 기사를 쓴다. (포털 등록이 가능한 수준의 기사를 쓰게 될 때로부터 1년을 기다려 요건을 채운 뒤) 언론사 (포털) 등록을 한다. 최소 1년 + a는 내근 중심의 우라까이란 이야기다.


언제까지고 질 낮은 기사를 요구한다면 이처럼 편한 일이 있을까. 하지만 사람인 이상 기대치가 있을 테고 언젠가는 '환경에도 불구하고' 좀 더 나은 기사를 요구할 거다. 스스로도 우라까이로 1년 이상 마음 편히 버틸 수 있을까 하면 애매하거든. 생각보다 베껴 쓰는 게 불편해서 말이다. 그렇지만 마음 편히 취재 나가기도 힘드니 딜레마네 정말:(



3. 법조계 기사를 하나 쓰는데 시간을 꽤 잡아먹었다. 내용 파악도 그렇고 용어 정리와 맥락 조사하는데 애를 먹었다. 생각보다 더뎌진 기사 쓰기에 진땀 빼고 있는데 모 매체에서 마치 정리해놓았던 글처럼 십여 분 전에 기사를 송고한 게 아닌가. '역시 법조는 출입기자가 하는 게...' 정도로 합리화하고 있는데 바이라인에 'ㅇㅇㅇ(변호사) 기자'라고 쓰여있다. 어쩐지...


KakaoTalk_20180121_155306377.jpg 사립 유치원 옆 공립 어린이집.

4. 같이 일해보자던 작은 매체 대표가 고기를 사줬다. 무려 소고기다. 이야기만 들으러 간 자리에 소고기가 나오자 적잖이 부담스러웠다. 위 한 편에 살포시 쌓아두는 정도로 천천히 고기를 먹었다.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헤어졌다.


의도는 좋았다. 새롭게 해보려는 매체 방향이라든가 내가 맡아야 하는 업무 등 나름 특화된 분야를 발전시키려 했다. 문제는 자본이다. 새로운 시도는 자본을 필요로 하고, 이 분야 역시 공을 들이는 정도에 따라 막대한 자본이 투입된다. 그런데 투자는 인력에 하는 게 거의 전부인 모양이고 그마저 내가 투자 대상인 셈이다.


'멱살 캐리'라고 한다. 일을 수락할 경우 팀(매체) 자체를 짊어지고 가야 하는 모양새다. 데스크도, 같이 일할 사람도 이 분야는 모르는 '언론계' 사람이라고 한다. 사실상 장급 역할을 도맡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귀띔을 하는데 웃음이 나올 리 없다. 일복이 눈에 보일 정도다.


한참 고민했다. 덤터기 쓰는 건 아닐까. 잘못된 선택은 아닐까. 그러다 오늘 급여를 묻는 문자를 보냈다. 얼핏 전해 듣기론 내 기준을 밑돈다. 이 부분에서 타협이 안되면 가려고 해도 갈 수 없다. 그래서 일단 물었다. 답이 오든 안 오든 고민의 증거는 내보이는 게 예의. 내 손에 쥔 패는 저쪽에 던졌다.



5. 현송월이 꽤나 핫하다. 뉴스에서 쉴 새 없이 나오는 통에 마치 남북대화합의 장이라도 마련되는 분위기다. 조식으로 먹은 황태해장국을 꽤나 중요한 뉴스인 양 보도하는 YTN에 내가 다 멋쩍다. 전파권을 북한에 빼앗기면 이렇게 될까.


KakaoTalk_20180121_155308497.jpg 추워도 아이스크림.

6. 너무 춥다. 뺨이 따가울 정도다. 언덕 위에 자리한 우리집에서는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구불구불한 골목을 여럿 지나야 하는데 골목을 따라 숨을 쉬는 바람이 뺨을 후린다. 아침에 눈떴을 때 공기가 싸하더라니 한파는 한파인가 보다. 잔뜩 몸을 움츠리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오늘따라 딱 떨어지는 타이밍이란. 회사에 20분 일찍 도착하고 말았다. 연희동의 단점이라면 단점인 교통편이 이럴 땐 야속하다. 버스 타는 시간에 따라 같은 시간에 출발해도 20-30분 정도 차이가 난다. 이젠 익숙해졌지만.



7. 밥 먹으면 자꾸 잔다. 고리를 끊어야 할 텐데 타개책이 안 보인다. 먹고 일어서 있거나 아이스크림을 사러 나가기도 하고 걸어 다니기도 했는데 엉덩이가 바닥에 닿으면 졸음이 몰려온다. 오늘은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어볼 생각인데 카페인 효과가 충분히 나타날 수 있도록 텀을 둘 예정이다. 저녁 있는 삶을 원했지만 정작 밥 먹고 졸기 바쁘니 괜히 집 밖에 나가서 시간 보내는 방법을 염두하게 된다. 이러면 시간 내서 지출 늘리는 꼴이 되니 여간 곤란한 게 아니다. 퇴근 후 시간 보내기도 습관이라던데, 쉴 법하면 계속 쉰다. 이미 30년 넘게 깨닫지 않았던가.


KakaoTalk_20180121_155439377.jpg 마스크, 1회용.

8. 이직한 친구 이야기. 고소득에 기뻐하는 전자 전공한 친구, 그 이야기다. 첫 월급을 받았단다. 자기도 놀랐는지 통장에 찍힌 액수를 이야기해주는데 500만 원이 넘는단다. 세금을 떼고 그러니까 500만 원이다. 후. 좋겠다. 처음에는 이 정도 감정이었는데 생각할수록 뭔가 멜랑꼴리 하다. 이 기분이 뭐냐면, 질투나 시기 같은 게 아니고 이상해서 혼란스러운 거다. 자, 보자.


친구가 그랬다. "이번 달은 일도 별로 안 했는데..." 그런데 500만 원을 받았다는 말이다. 실수령액으로 500만 원이면 연봉으로 봤을 때 7,000만 원을 넘어간다. 아무리 반도체가 호황이라지만 임금격차가 너무 나지 않는가. 내가 수습 때만 해도 '개처럼' 일했다. 기자로 일할 때 줄곧 그랬지만 수습 때는 훨씬 더했다. 열심히 해서 다른 회사 선배들이 우리 회사에 귀띔을 해줄 정도로 열심히 했다. 그때 임금이 190 남짓이다.


노동의 가치란 걸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단순히 열심히 일한다거나 정량으로 따진 노동의 대가가 고스란히 비례해서 돌아오진 않는다. 분 단위로 열심히 뛰어도 일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면 그 결과 거머쥘 수 있는 돈은 매우 제한적이다. 비교군을 고부가가치 산업군에 둬서 단순 비교가 어려울지 모른다. 그럼에도 전공에 따라 이 정도로 수익 차가 생기면 허탈함이 들 법하다. 나는 조금 생각이 복잡한 것이지만.


"너도 공대 가지"라든가 "이과 갔어야지"라는 말도 틀리지 않다. 따지고 보면 선택에 따른 결과였고 선택에 강요는 없었다. 고로 인생 매 순간의 선택이 지금의 나를 만든 셈인데, 그럼에도 격차가 두 배 넘게 나는 건 심하잖아. 기사라든가 글이 갖는 가치가 생각보다 저평가되는 건지, 그 저평가 콘텐츠에 목매는 이들이 많아서 가격선이 떨어지는 건지 알 수 없다만 배부른 소리일까 적으면서도 알쏭달쏭 하네.



9. 일단 밥벌이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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