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설왕설래
- 친구가 학원을 차렸다. 졸업하자마자 지인 학원에서 부원장으로 일하다가 이번에 독립했다. 다른 도시에서 하다가 학원은 고향에 차렸길래 놀랐다. 고객층(?)이 상대적으로 풍부한 곳을 두고 왜. 네이버에서 검색해 검색에 잘 걸리게 해야 한다는데 이름이 어려워 ‘음..’ 했다. 상용구도 없고 영어로 돼 있었다. 하지만 입소문만 타면 이름은 문제가 되지 않을 터다. 내일부터 전단지를 돌린다며 쌓여있는 전단지도 보여줬다. 어느새 우리가 학원을 다니던 때를 벗어나 어릴 적 같이 바라보던 그 원장쌤의 위치에 있구나 싶어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모쪼록 잘 됐으면 좋겠는데 아직은 학생 수 1명이라고. 학교 앞에 있으니 곧 효과를 보겠다만 역시 이름은 어렵다. 몇 번 생각해도 어렵구나.
- 칼퇴를 밥 먹듯 하는 요즘도 집에 가면 거의 7시를 넘긴다. 동네 미용실이 문을 닫은 애매한 시간이라 손님이라도 있으면 머리 깎기가 어려워진다. 그런 사정으로 엊그제, 마침내 회사 근처에서 미용실을 찾았는데 무려 15,000원. 동네 미용실은 보통 10,000원으로 경쟁력을 유치하지 않던가. 물가 비싸기로 유명한 우리 동네도 만 원 해주는데 여긴 왜. 심지어 아파트 옆 동네 미용실이면서... 머리는 깔끔하게 해주셨지만 왠지 기대를 벗어난 가격대에 다시 갈 것 같지는 않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1인 사업장도 가격을 인상한 걸까.
- 며칠 전 내가 사는 빌라 문마다 강제개종으로 사람이 죽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내용의 전단지가 끼여있었다. 전단지가 어쩐지 쭈글해 집단이 아닌 개인 차원에서 너무나 억울해 발품을 판 건 줄 알고 회사에 챙겨 왔다. 기사 거리가 되나 했고 내용도 조금 궁금했다. 과거 종교 관련 취재를 하다 엎어진 적이 있어 더욱 관심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사수와 나는 전단지를 차례로 읽어보고 기사 깜이 되나 봤는데 알고 보니 ‘신천지’라는 종교단체에서 포교 등을 목적으로 길에서 나눠주는 전단이라고 한다. 한기총과 CBS를 배후로 지목해 이상하다 하면서도 ‘혹시’ 했다. 혹시는 무슨, 역시 이상했다. 그럼에도 개신교와 이렇게까지 각을 세울 수 있는 종교집단이 있단 점에 놀랐다. 각 세워 보는 득이 있는 건가. 종교적 신념 문제로 부딪히는 부분이 있는 걸까. 21세기 서울 한 복판에서 난 데 없는 종교전쟁이라니 원.
- 퇴근길 지하철 역 앞에서 전단을 나눠주는 아주머니가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라는데 사랑은 그렇다 쳐도 살아계시면 조금 곤란한 거 아닌가? 아닌가?
-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 사건 말이다. '배신'과 '혐오'로 얼룩지고 있는 그 사건. 나도 김보름과 박지우가 노선영을 일부러 따돌렸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에 연출된 장면은 그런 사정을 배경으로 한 피날레가 아닌가 싶었거든. 그래서 세금으로 훈련하는 국가 '대표'가 무슨 아마추어 같은 짓이냐며 혀를 찼다. 그런데 누가 그러더라. '만약 아니면?'
생각해 보니 집중포화를 붓기 전 몇 가지 입증돼야 할 사안들이 있는데 전혀 고려되지 않는 듯하다. 그래서 만에 하나라도 정말 오해에서 비롯된 사건이라면 이 해프닝의 피해는 누가 구제하나? '해프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단계인지에 대한 논의는 미뤄두더라도 굉장히 섣부른 대응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현재 특정 선수와 연맹에 대한 비판은 어떤 전제를 깔고 있다. 연고주의에 기반한 선수 기용으로 소위 '빽' 없는 선수가 부당하게 피해를 당했다는 '조건' 말이다. 여기서 득을 본 선수는 김보름이 될 것이고 피해자는 노선영이 될 거다. 체육계의 연고주의는 전례가 있어 추측이 어렵지 않지만 그것이 '사실'인지 확인돼야 하고, 그 사실이 이번 경기 결과와 인과가 있는지도 입증돼야 한다. 고로 '추측' 선에서 비판을 쏟고 있는 대중의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압도적인 폭력이 될 수 있다.
온라인엔 욕이 차고 넘쳤다. "그렇게 달리는 게 좋으면 휴전선까지 달리지 그랬냐"거나 "악어의 눈물", "즙 짠다" 등 책임 없는 폭력의 날은 쉽게 상대를 상처 입혔다. 주종목 경기를 앞두고 기자회견에 나와 눈물을 흘리는 김보름에게 이 말들이 어떤 당위성이라도 가지려면 김보름(과 박지우)이 노선영을 왕따 시켜 의도적으로 경기를 망쳤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무엇이 밝혀졌을까.
사람들이 추측하는 대로, 김보름이 일방적인 연고주의 등의 수혜를 받아온 포지션이라면 그에 대한 비판은 연고주의 방식으로 국대를 운영해온 연맹으로 가는 게 조금 더 적절하지 않나. 설령 경기 직후 보인 김보름 등의 인터뷰 내용(및 태도)이 오해를 살만하더라도 그것이 왕따를 가한 가해자의 '조롱'인지 사이가 좋지 않은 동료의 '무관심'인지에 따라 수용자가 가질 수 있는 감정은 크게 달라진다. 우리에겐 어떤 정보가 있나.
확인된 정보 없이 여기저기서 모인 말로 '연고주의 수혜를 받아온 왕따 가해자가 사연을 가지고 어렵게 경기에 출전한 피해자를 우스갯거리로 만들었다'는 식의 프레임은 불씨 단계의 분노를 '화마'로 키웠다. 상식에 어긋난 경기를 펼쳤다는 이유만으로 여론이 이 정도로 들끓는다면 그거야 말로 뉴스거리 아닌가. 그 과정에 있는 '스토리'에서 어떤 부당함을 발견하고 살을 날리는 게 아니라면 이런 분노는 꽤나 위험하다.
현장에 있는 기자에게서, 또 다른 선배에게서 이런저런 소식을 듣는다. 기껏해야 정황 정도지만 상황을 반전시킬 요소가 다분하다. 그 소식이 사실로 밝혀지면 60만에 육박한 청와대 국민 청원자들과 악플을 날렸던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어제 경기도 그렇다. 이미 김보름과 박지우를 악의 축으로 가정하고 온갖 추측을 쏟아낸다. 고의성과 악의를 덧씌워 사람을 마녀로 만든다. 던지는 '돌'에 믿음이 실린다. 믿음은 때로 맹목적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빙상연맹은 '악'이다. 김보름은 악의 하수인이다. 노선영은 피해자이자 우리가 지켜야 할 존재다. 상황에 의문을 제기하면 '기레기'가 된다. 주류를 벗어나면 가해자를 두둔하는 잠재적 가해자로 내몰린다. 말을 꺼내는 시점부터 이미 '마이너리티 리포트'다. 피해자에 동조하면 정의를 지향하는 명분을 얻는다. 폭력에 대한 당위는 의외로 쉽게 만들어진다. 불과 하루 이틀 만에 벌어진 일이다.
빙상계 부패/개인 간 관계/선수 실력/개별 인과/현장 변수 등 복잡다단한 사실이 우리를 기다린다. 질타를 며칠 미룬다고 해서 비판할 사실이 없어지는 게 아니다. 올림픽 무대에서 프로답지 못한 장면을 연출한 것과 빙상계에 이빨을 드러낸 개인에 대한 조직의 집단 린치 여부 사이에는 풀어야 할 매듭이 있다. 이 모든 것에 대한 원망을 특정인에게 '지금' 담아내는 것이 과연 옳은가. 우리는 '보이는' 이미지 그대로 누군가를 평가하고 있는 건 아닐까.
*NEPA는 득이냐, 실이냐.
- 취재하면서 감정적으로 너무나 힘들었던 적이 몇 번 있다. 첫 번째가 부당해고 복직을 요구하며 거리농성하던 OO노조 아저씨들 때다. 100일 넘게 거리에서 먹고 자던 아저씨는 가족들과의 관계를 묻자 갑자기 고개를 젖히더니 급기야 얼굴을 돌려 흐느끼기 시작했다. 울음을 참아가며 이야기를 하려는 아저씨의 눈과 코는 이미 빨갛게 돼서 슬픔이 번지듯 내게도 옮아 오는데 눈물 참는다고 무슨 말을 들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났다.
의사에게 지속적으로 성추행을 당했던 여중생 이야기를 들을 때도 그랬다. 떨면서 말을 꺼내다가 관련 이야기를 할 때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울다가 말하다가 울다가 말하기를 반복하는데 눈을 못 쳐다보겠더라. 나이나 상황에 관계없이 감정이 전이되는 걸 알았더라면 좀 더 마음의 채비를 단단히 했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애먼 허공이나 여중생의 목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세월호 유가족이나 생존자를 마주할 때는 죄송해서 말을 못 걸겠더라. 누군가는 자식을 잃고 누군가는 죽어가던 현장에서 돌아왔는데 기자라는 이유로 자꾸만 과거를 들추는 게 옳은 일인지 판단이 안 서서 망설이게 됐다. 무슨 대단한 정보를 알린다고 내가 무슨 권리로 그 사람들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건지. 참사 이후 한참 시간이 지났지만 어머님들은 이야기를 하다가도 우셨다. '눈물을 흘렸다'가 아니라 우셨다. 너무 슬프더라.
취재하던 내가 이런데 피해 당사자들은 오죽할까. 권력이나 힘으로 찍어 눌러 갑질 하고 성폭력 휘두른 사람들 이야기가 최근 자고 일어나면 업데이트되면서 피해자들의 심정을 헤아려보려니 옛날 생각이 났다.
내가 지켜본 바 가해자는 몇 가지 특징을 보이는데, 가해 행위에 죄의식이 별로 없다. 사이코패스라 그런 게 아니라 행위의 시비를 잘 못 따진다. 가치가 주관적이다 보니 생기는 문제다. 힘이나 권력을 가질수록 자기 주관이 뚜렷해지다 보니 자신의 가치관이 사회 '일반'에 통용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자기 말에 대한 반박을 못 견뎌하는 것은 자신이 쌓아온 지위나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고 받아들여서 그런 걸까 싶다. 행위와 자신을 동일시 해 귄위를 세우려 한다. 그래서 그들은 어떤 행위를 하든 별로 부끄러움이 없다.
브레이크가 없다. 누군가 지적해 행위를 저지하거나 법적 제재를 받지 않는 이상 행위는 계속된다. 흐릿한 죄의식의 연장선상이다. 이 같은 특징 탓에 행위는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처럼 끊임없이 반복된다. 저지른 사람이 계속해서 저지르는 이유도 여기 있다고 본다. 타인에게 입 맞추고 무례한 스킨십을 이어가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반성한다며 사과하러 다니지 않는다. 대체로 정도는 심해지는 듯하다.
뻔뻔하다. 추행할 때 자신을 일상 속 자신과 동일 시 하지 않는다.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나 성폭행을 한 사람이 범행을 들키기 전까지 일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이러한 분리 현상 탓이 아닐까 한다. 사람이란 건 참 다면적이라 앞에서 성희롱하고 갑질 할지라도 돌아서면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 나쁜 놈은 시종일관 나쁜 놈이 아니라서, 그래서 혐의가 입증됐을 때 충격을 받는 사람이 생긴다. 왜 그런 거 있잖나. 회사에 넉살 좋은 과장이나 부장 등이 아슬아슬하게 선을 타는 성적 농담을 던지는 거. 이런 애매함도 포함된다.
술. 술. 몇 번을 써도 모자라지 않다. 술은 문제다. 술을 먹으면 자제력이 흐트러진다. 판단도 둔해진다. 경찰서에 접수되는 사건사고에 상당수는 술이 관여돼 있다. 성추행이라고 안 그럴 것 같나. 최근 보도를 살펴봐도 술 먹고 이상한 행동들을 저지르는 걸 볼 수 있다. 맨 정신에 하면 '뭐야, 왜 저래' 할지라도 술 먹고 그랬다면 자의든 타의든 관행처럼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성인 대다수가 술을 접해 본 이 나라의 기묘한 공감대다. '취했잖아'라거나 '술자리에서 벌어진' 같은 말은 범죄를 상쇄하는 마법의 주문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남에게 술을 권하는 사람을 이해하기 힘들다. '먹어봐. 이거 맛있다고'라며 권하기엔 술의 속성을 너무 잘 아는 나이들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남에게 술을 권할 마땅한 이유가 없거든. 콜라나 물을 술처럼 같이 마셔주길 바라는 사람은 없는 것만 봐도 말이다.
- 능력이나 성취와 그 사람의 인간성은 비례하지 않는 것 같다. 스테레오 타입을 만들기 참 좋은 게 직업 같은 배경인데, 훌륭한(유명한) 기자가 인성도 훌륭할 것이라는 오해(?)가 대표적이다. 작가도 그렇다. 좋은 작품으로 유명세를 떨친 작가가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일 거라는 편견. 의사나 소방관 같은 직업군에도 해당된다. 바라는 인간상을 '아이돌'에 투영한다. 성취와 인격은 별개. 요즘 드러나는 스캔들을 보고 있자면 오히려 반비례 경향을 살펴보는 게 연관성을 찾기 쉬울지도.
- 다음 주는 3.1절, 그다음 주는 예비군이 있다. 하루나 반나절 쉬는 날이 생긴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기념일을 휴일로 소화할 수 있는 건 직장인의 고유 스킬 같은 것.
- <신과 함께> 영화 봤다. 아.............................................................. 나 이 만화 정말 좋아한다고. 아.................... 이거 완전 다른 영화잖아. '호민이형 살려줘' 라고 말하고 싶었다. 과거 운영하던 블로그에 웹툰 이야기 적었다가 주호민 작가가 들린 적이 있어 후기를 적어볼까 했지만 그럴 의욕도 안 난다. 마지막 쿠키영상이 제일 재밌었다. 하지만 아마 쿠키영상이라 재밌는 거겠지. 속편도 나온다는데, 어... 음...... 안돼.................ㅠ
- 있잖아. 요즘 매체가 너무나 많다. 얼마나 많냐면, 네이버에서 특정 단어로 기사를 검색했을 때 아는 매체가 검색 1면에 얼마 안 나올 정도로 많다. 보통 영세 매체나 군소매체에선 검색어 위주의 기사를 쓰거나 검색에 잘 걸리게 제목, 태그 등을 단단 말이지. 노출수가 광고 단가랑 연결되니 생존을 위한 수단인 셈이야. 근데 워낙 많은 매체가 이런 식으로 기사를 쏟아내니 현안을 찾아보려 해도 양질의 기사를 좀 더 수고롭게 찾는 부작용이 생긴단 말이야. 독자 입장에서 뉴스 같은 비교적 엄선된 정보를 찾기가 어려워지면 결국 그건 사회의 손해로 이어지거든. 모든 매체에 균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건 좋지만 검색 알고리즘을 이용한 뉴스 영업은 포털에서 손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