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못한 곳에서 '미투'가 터지며 이제 다 모르겠다:(
18년 3월 6일
오늘은 좀 슬프네. 여러 가지 일이 있었잖아. 안희정 건이 컸지. 이미지란 게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거든. '어떻게 네가 그래' 딱 그 감정이었나 봐. 피해자가 JTBC에 나온다고 해서 실시간으로 봤어. 입을 떼는 걸 힘겨워하더라. 8개월 간 4차례에 걸친 피해를 입었데. 처음엔 직업병인지 뭔지 의문부터 들었어. 정무비서라는 자리가 그걸 참아가면서 일할 가치가 있는 자린가. 함구하거나 묵인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성폭행을 당하면 바로 뛰쳐나오게 되는 것 아닐까. 이런 생각이었지. 이해해보려고 했는데 잘 안되더라고.
이해할 성질이 아니었어. 피해자가 말했듯 위계에 의한 폭력이란 건 칼로 재단한 듯 딱 떨어지지 않잖아. 성폭행에도 다양한 상황이 존재할 테고 가해자와의 관계도 고려 대상이겠지. 피해 즉시 헛구역질이 나올 상황도 있을 테고 '이게 뭐지?' 하고 의아한 상황도 있을 거야. 애초에 경험할 수 없는 것을 완전히 이해하려던 시도는 잘못된 거였어. 같은 지향점을 가진 무리에서 우두머리가 가진 권위는 구성원 개개인에게 달리 작용할 테니까. 애초에 그것을 '권위'라고 지칭해도 될까 싶네. 단지 도움을 요청한 피해자를 외면하지 않는 것이 제3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아.
안희정 지사는, 우선 배신감이지. 그래. 드라마 같은 데 나오잖아. 말 잘 듣는 첫째가 사회운동하다가 잡혀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은 어머니가 쓰러지시잖아. 그런 배경에선 '사회운동=빨갱이 운동'의 공식이 성립할 테니 청천벽력 같은 거지. 그런 감정을 어젯밤 느낀 거야.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그랬겠지. SNS를 봐도 한둘이 아니고 말이야. 근데 이건 안희정이라서 그런 것만은 아닌가 봐. 가해자로 지목된 몇몇 인물의 SNS를 들어갔을 때 지인들의 반응을 살펴봤거든. '이거 아니죠?'라거나 '사실이 아니길 바라요ㅠ' 같은 글을 봤어. 익숙한 인물에게서 오는, 그런 거지.
이쯤 되니 되게 허탈하네. 평소 우스갯소리처럼 들었던 '남자는 잠재적 범죄자'라는 소리를 흘려버릴 수가 없는 거야. 나는 그 말을 상황에 대한 심각함을 부각하는 수사 정도로 받아들였거든. 다소 불편함을 느끼기도 했고 말이야. 근데 이게 뭐야.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성추문이 불거지며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게 돼버렸어. 심지어 안희정과 정무비서 간 사이를 고려할 때, 둘 사이에 유지해야 할 관계를 두고 안 지사를 대할 때마다 피해자가 얼마나 끙끙 댔을지 생각하면 기가 막힌다. 그건 아래쪽에 선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압박감이지.
- 굳이 커피숍에 와서 일기 쓴다. 모처럼 정시 퇴근해서 시간이 많다. 심지어 내일은 민방위 훈련이라 쉰다. 엄밀히 말하면 오전 근무인데, 재택으로 하다가 민방위 훈련 가면 된다. 좋은 회사다. 그 덕분에 연휴 기분이 들어버렸다. 살짝 들떴달까. 집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굳이 스벅으로 돌린 이유다. 마음이 갈대 같은 날이라.
- 출퇴근 이슈. 어김없이 붐비는 지하철에선 상상 못 할 일이 벌어진다. 오늘도 마찬가지. 틈을 비집고 오는 사람 불편하지 말라고 몸을 틀어 공간을 줬더니 그 공간에 섰다. 자세를 바로 하면 내가 사람을 밀게 되는 형국. 두 역 정도 비틀고 섰다가 불편해서 몸을 세웠다. 옆에 있던 남자가 밀린다. 쳐다본다. 나도 쳐다본다. 뭔가 억울해 좀 더 쳐다본다. 남자가 자세를 바꿔 자리를 살짝 내어준다. 뭔가 미안하다. 이런 상황이 생길 때 티를 냈다가 상대가 바로 수긍하면 되려 미안해진다. 어째선지는 모르겠다.
- 바닐라크림 프라푸치노. 새하얀 음료다. 스타벅스에 아마 하얀 음료는 우유 외엔 이게 유일하다. 오늘도 모처럼 시켰다. 무료 쿠폰이 있어 벤티로 시켰다. 실패다. 적당히 밍밍한 바닐라 치노는 베이스가 달다. 벤티로 먹으니 계속 달다. 단 맛이 혀에 베여 공기처럼 스민다. 입천장만 빨아도 달다. 왠지 단 내마저 나는 듯하다. 집에 가면 곧바로 양치해야겠다.
- 퇴근길 신촌 펜피아에 들렀다. USB 랜선 젠더가 필요했다. 있을까 하였는 데 있었다. 종류는 둘. 하나는 '코시' 제품이고 하나는 '삼성' 거다. 삼성 것은 가격이 6만 원대라 제외했다. 코시 것도 2만 원이 넘었다. 폰으로 인터넷 구입가를 보니 8000원대다. 이 정도로 차이 나면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경제적 소비를 하자며 서대문 03 탑승. 자리도 여유로워 앉아간 건 개이득.
- 강아지를 너무도 키우고 싶어 엄마한테 전화했다. 선뜻 키우자니 이제껏 책임감을 이유로 망설였던 부분이 걸렸다. 스스로에게 확신이 없는 거겠지. 누군가의 동의가 필요했던 것 같다. 엄마는 단번에 "안돼"라고 말씀하셨다. 애를 혼자 두면 얼마나 외로워하는지 아냐며 키우면 안 된다고 하셨다. 책임 못 질 일은 하지 말라고. 안다. 알면서 혹시나 해서 전화했다. 당장 키우고 싶으면 분양받아도 상관없지만 그러기엔 개에 대한 애정이 크다.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을 때, 그때만 기다리고 있다.
- 개에 대해 적고 있는데 문득 내 몸상태가 떠올랐다. 돼지다. 예전에 비하면 설명할 수 없는 돼지고,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면 보통 체형이다. 그러나 운동을 쉰 지가 벌써 몇 개원인가. 배는 나오고 러브핸들이 '안녕' 인사를 한다. 불쾌하다. 심지어 옷들이 미스매칭이라며 사이즈를 책망할 땐 자괴감마저 든다. 몸 관리를 너무 안 했구나, 그런 생각. 제 한 몸 건사도 못 하면서 반려견이라니. 팔푼이다.
- 봄이 오면 연남동에 개 보러 가야겠다. 연트럴 파크는 누가 뭐래도 산책길로 으뜸이다. 인간보다 개에게 으뜸인 듯하다. 그 신나 하는 표정이란. 보고 있으면 내가 다 기분이 좋다. 조금만 따뜻해지면 다시 사람들이 몰려나올 테다. 개들도 함께 할 테다. 그 사이 나도 그곳에 앉아있으리라. 대리만족이라도 하러 가겠다.
- 스타벅스 직원이 이따금 청소하러 왔다 갔다 하는데 벤티 사이즈 커피에 스타벅스 다이어리를 테이블에 올려두니 어쩐지 되게, 뭐랄까. 좀 그래.
- 페이스북으로 BBC KOREA 팔로잉해두고 즐겨보는데 여기 참 잘한다. 국내 소식뿐 아니라 해외 소식을 전하면서 그렇게 딱딱하지도 않아. 이슈를 선정하면서도 풀어내는 방법을 알아. 가령 몇 시간 전에 "같은 고민-다른 시대를 산 여성들이 말하는 #MeToo 혁명"이라며 18~71세 여성들의 인터뷰를 실었어. 연령대별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건데, 특별한 포맷이나 구성 없이도 진지한 주제에 어렵지 않게 다가갔어. 이런 거. 쉬운데 쉽지 않은 거. 이런 걸 의외로 우리나라 언론은 잘 못 하거든. 이런 포맷에 익숙하지도 않고 말이야. 재밌어. 비비씨는 참 볼만한 듯해.
- 지난 2월 25일인가. 김어준이 미투 관련해 악용될 가능성을 언급했을 때 말이야. 아는 선배가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한 예방주사" 같다고 하더라고. 그 누군가는 곧 밝혀질 것 같다고 해서 사람들이 궁금해했지. 안희정이 나왔을 때 사람들이 다시 몰려가서 '안희정이었군요?'라고 했지만 선배는 아니라고 그랬어. 김어준이 안희정을 보호할 이유가 없다면서 말이야. 그러더니 며칠 전 정봉주가 터졌네? 선배도 아마 이 사람이 맞는 것 같다고 수긍했어. 글에는 연봉이나 주식 오르게 해달라는 사람들이 찾아와 댓글을 남겼어. 웃겼는데 한편으론 저런 촉을 어디서 가지게 됐을까 궁금했어. 어떻게 안 거지?
- 요즘 유례없이 '찌라시'가 많이 돈다. 미투 영향이겠지. 굵직한 사건사고도 많고 말이야. 처음엔 찌라시 보고 코웃음 쳤는데 하나둘씩 기사화되더라고. 최근에 미투로 거론된 사람들 중 몇은 기사가 나오기 전부터 소식이 돌았어. 연예계 소식은 또 어떻게 연이 닿아 물어볼 루트가 생겼고. 어쨌든 정보 '조각'들이 가십처럼 도니까 재밌긴 한데 사실 확인은 뚜렷이 안 되니까 새삼 '기사'라는 것의 편의성을 알겠더라. 누군가 정성을 들여 사실임을 확인해 주는 과정을 거치니까 숨 쉬듯 읽을 수 있는 거겠지. 너무 익숙해서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야.
- 카카오톡이나 카카오톡 채널로 들어오는 사람은 어떻게 들어오는 걸까. 카카오톡으로 내 글을 찾으려고 해도 안 나오던데 계정마다 뜨는 콘텐츠가 다른 걸까. 아마도 그런 알고리즘이겠지?
- 1년 간 사고 없이 차를 몰았더니 보험료가 30만 원 떨어졌다. 100만 원에 가깝던 금액이 60만 원대로 줄었다. 이런저런 옵션 등을 고려한 수치지만 선방했다. 갑자기 목돈이 나가게 돼 (조금) 걱정했는데 이 정도면 예상을 밑돈다. 심지어 할부도 된다는 설명을 들었다. 설명해주는 분은 또 왜 그렇게 친절한 건지. 앞으로 두 달 정도면 드디어 맥북 할부가 끝나게 되는데 다시 차량 보험이 시작될 듯하다. 이것이 바로 벌어서 땜질하는 젊은이의 삶일까.
- 거쳐온 회사 중에 노골적으로 남성을 선호하는 경향을 드러낸 곳이 있다. 대부분 수직적인 조직 구조에 상명하복의 특성을 드러냈다. 면접 때 "남자를 뽑으려고 했었어"라는 말을 듣기도 했고, "솔직히 남자가 편하잖아, 안 그래?"라는 말도 들었다. 자기 회사니까 누굴 뽑든 대표 마음이고, 누가 편하든 주관적인 감상이니 이 또한 잘못된 일이 아니다. 다만 '남자'라서 여자에게 시키지 않을 일을 당연한 듯 시키려는 자세는 꽤나 불편하다. 철저한 '예스맨'과 '술 문화'가 대표적이다.
- 나는 사실 '미투'란 거, 그게 지금 드러난 몇몇 인물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내가 목격하거나 느낀 불편함만 해도 상당하니까 여자들이 느끼는 일상의 그것은 상상을 웃돌겠지. 성 문제란 거, 그러니까 기본적으론 타인이 불편해하는 행위를 하는 그게, 단편적으로 '친구를 때리면 나빠'라거나 '그러니까 남에게 주먹을 휘두르면 안 돼' 따위의 문제가 아니라 관행처럼 생활에 녹아있는 것 같아. 우리나라는 특히나 유교문화의 영향인지 어째선지 공과 사 구분이 흐릿하잖아? '이 정도는 괜찮잖아' 같이 가해자가 오히려 피해자를 이상하게 만들어버리는 프레임을 짜버리기도 한다고. 그리고 목소리 큰 놈이 이기거나 직급 높은 사람이 이기지. 굉장히 괴상한 구조거든. 이런 관행을 고칠 시스템을 마련하지 않으면 우리 자식 세대까지 같은 문제로 고민하게 될 거야. 국회는 뭐하는 거지?라는 빈정거림은 이런 데서 나와. 하지 말라는 짓은 하지 마! 이런 규칙과 법규가 곧게 서면 하지 말라는 짓을 했을 때 받는 페널티를 수긍하기 쉬워진다고. 근데 지금 우리나라의 모습은 뉴스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어. 얼마 전 JTBC 뉴스룸에서 지적한 문젠데, 흔들 다리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자꾸 새치기를 하는 거야. 관리 요원이 새치기하지 말라고 했더니 '줄을 더 만들어 두든가'라며 애먼 소리를 하더라고. 되려 화도 내더라. 이런 게 묵인되는 사회니까 이 모양까지 온 거야. 우리는 법과 도덕에 너무 무뎌져 있어. 기준이란 걸 쉽게 보는 거지. 이 사회는 재사회화가 필요해. 그렇다고 '위수령' 따위를 이용하잔 정신 나간 생각은 아니고.
- 아~무 생각도 없었는데 갑자기 이스터 섬에 도착했다는 어느 환경학자의 포스팅을 보고 거대한 모아이 석상에 반해버렸다. 해를 등진 그 모습이 명암을 만드는데 푸른 하늘과 대비되면서 더욱 신비롭게 보이는 거라. 아, 저곳에 닿았으면 좋겠다. 그런 부러움이 생겨버렸지. 그런데 포스팅한 선생님이 그러더라고. 인천공항에서 60시간 걸려 도착했다고. 아..... 60시간은 조금....
- 프레시안에서 단독으로 낸 정봉주 성추행 폭로 기사는 피해자가 기사를 쓴 당사자인지 아닌지를 두고 말이 많았다. 기자들 사이에서 기사가 너무 디테일했다는 지적이 있었거든. 이후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정봉주가 가해자란 사실이 중요한 거'라는 메시지가 돌았어. 정봉주가 가해자라면 그 사실은 당연히 중요하지. 근데 기자와 피해자가 동일 인물인지 여부도 '매우' 중요해. 이를 간과한 채 '그건 중요하지 않아'라고 외친다면, 그 중요성을 독자에게 간과시키려는 시도이거나 '객관성'이란 걸 모르는 사람이란 거겠지. 기사란 게 원래 기자의 주관을 반영한 정보이긴 하지만 최대한 객관성을 담보하려는 노력을 들인 거라고. 그래서 할 수 있는 한 선입관이나 편견을 들일 요소를 배제하는 일을 하지. 기자가 자기 일을 기사로 쓸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이겠어. 르포는 수기 개념이니 예외에 속하지만 말이야.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기사로 쓰는 일은 누가 봐도 객관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잖아. 검사가 자신이 사기당한 일을 직접 기소하고 구형까지 해봐. 또는 판사가 가해자에게 선고를 내려봐. 의심 사기 딱 좋다고. 그런 의미에서 기사는 기자의 진정성이나 기사의 신뢰도에 의혹이 생기기 시작하면 그 이상 치명적인 일이 없잖아? 그런 거지.
- 아, 맞다. 차량 점검도 받으러 가야 한다. 1년 동안 한 번도 안 갔더니 수리할 곳이 무더기로 나올까 봐 겁나서 못 가겠다. "수리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안 할 수는 또 없잖나.
- 대북 특별사절단 성과에 놀랐다. 솔직히 이 정도까지 해올 줄은 몰랐다. 귀국하면 성과 발표 듣고 기사 쓰려고 17시 30분부터 기다렸는데 브리핑 시간은 8시로 예정됐다. 뜻하지 않은 잔업이라며 투덜거리다가 정의용 수석 이야길 듣고 딸꾹질 할 뻔했다. 이 시점에서 해올 수 있는 일을 거의 다 해온 셈. 트럼프와의 협상에 성과를 낸다면 남북 간의 크렉을 보수할 수 있을 듯. 심지어 한미 연합훈련이 큰 변수가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더니 이마저 이해한다는 입장을 받아왔다고. 실무진의 능력이 좋은 건지 협상 조건으로 엄청난 걸 제시한 건지 알 수가 없네.
- 집에 갈 시간.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