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려나
휘갈기는 일기. 생각나는 잡설 몇 개 휘리릭 쓰고 간다.
- 카카오톡을 사실상 모바일을 기반으로 한 국민 플랫폼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뉴스든, 만화든, 게임이든 모든 분야에 연결 가능하다. 그런 카톡의 채널을 보면 뉴스와 경계가 모호한 콘텐츠들이 노출된다. 장르를 따지자면 연예뉴스에 가깝고, 글의 성격을 따지자면 연성 뉴스에 가깝다. 그러나 거기서 다루는 정보들이 뉴스 가치가 있는 것인지, 또 신뢰성을 담보하는지 등은 논외로 한다. 어쨌든 방금 콘텐츠 하나를 보고 왔는데 제목이 이거다.
"부동산 사기로 전재산 날린 이태원 재벌"
이태원 재벌 하면 누구겠나. 이상한 표정을 하고 있는 사진 속 인물을 보니 홍석천이다. 홍석천이 사기를 당했나 보다 하고 콘텐츠를 눌렀더니 "전재산 날린"이 아니고 "전재산 날렸던"으로 제목이 바뀐다. 낚시다. 이런 경험담이야 새로울 것도 없다. 후배에게 무시당했다거나 연예인들에게 대시를 받았다는 등의 일화는 연예계에 흔하다. 내 작은 수고를 들인 일보다 이런 식의 관행이 새로운 플랫폼에도 통용된다는 게 애석하다. 과거 내가 알던 뉴스 소비 패턴은 PC를 이용한 NAVER가 대부분이었다. 그게 이쪽으로 옮겨오면서도 기술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전혀 보완되지 않은 거다.
앞서 밝힌 대로 이런 콘텐츠가 '뉴스'가 아니라고 한다면 책임도 없다. 낚시를 하든 말든 상관할 일도 아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숱한 글은 대체로 책임을 요구받지 않는다. 그럼에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당했네' 하고 웃어 넘기기엔 최근 글 쓰는 일의 의미를 되새기는 나로선 탐탁잖다. 점점 정보와 뉴스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자연스러운 현상일까. 책임이나 신빙성의 문제도 그 경계를 따라 자연히 흐려지는 걸까 싶다.
- 외제차를 뽑은 친구가 뺑소니를 당했다. 인명사고는 아니고 누가 주차해놓은 차를 긁고 튀었다. 살짝 긁힌 티가 난다. 친구는 당연히 분개했다. 뽑은 지 한 달이 안 된 따끈한 신차다. 부재중 전화를 후에 발견하긴 했지만 문자나 메시지 등 아무것도 남은 게 없었다. 그 결과 범인을 잡고야 말겠다며 폐쇄회로를 돌렸다.
한참 뒤 뺑소니 차주와 연락이 닿았다. 부재중 전화를 남겼던 사람이 맞았다. 초장부터 죄송하다고 숙이고 들어온다. 친구는 마음이 약해졌다고. 하지만 공사의 구분은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서비스센터에 견적을 내러 갔더니 렌트 비용까지 260만 원이 나왔다. 자기가 생각해도 비싸다며 친구도 놀랐다.
낡은 차를 간간이 끌고 나가는 나로서도 외제차는 부담스럽다. 아직 사고 난 적은 없지만 긁힌 자국에 저 정도 비용을 감당하려면 미안한 한편 억울한 마음도 들 것 같다. 남의 재물을 파손했으면 배상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지만 길거리에 억대에 준하는 재산을 끌고 다니면 어쩐지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내 일이 아니니 관망하는 수준이지만 어쩐지 긁은 차주도 어지간히 마음고생하겠다 싶다. 저런 일이 벌어진다면 주저앉아 울기라도 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문득 "외제차와 부딪힐 것 같으면 핸들을 돌려 벽을 박으라"는 우스갯소리가 떠오른다. 생돈이 공기 중에 산화되는 경험은 금액에 무관하게 속이 쓰리다. 어쩔.
- 내일 면접이 잡혔다. 경력기자 면접이다. 합격한다면 아마도 사회부로 들어갈 듯하다. 오랜만에 언론사 기자직군 면접을 본다. 어색하다.
펜 기자는 실로 오랜만이다. 사회부는 더더욱 오랜만이다. 줄곧 취재해오던 분야임에도 다시 돌아가려니 낯선 게 사실이다. 불합격은 곧 일상으로 복귀를 뜻하는데도 어쩐지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주변에선 묻는다. 다시 기자를 할 거냐고 한다. 언론계로 돌아오냐고도 그런다. 솔직히 모르겠다. 이 선택이 올바른 것인지, 다시 기웃거릴 힘이 남았는지, '최선'이라는 생각으로 뛰어드는 것인지 아직도 의문이다.
많은 갈등이 있었다. 탈언론계 의지나 취재기자와 사진기자 사이의 고민, 워라밸과 직업적 열의 사이에서의 혼란 등이다. 한참을 끌고 온 질문이지만 답은 '이것'이라고 정의할 수 없다.
가면 잘 할 거다. 해오던 일이다. 사회부는 내가 가장 익숙한 분야이기도 하다. 늘 고민하고 늘 힘겨워하겠지만 그게 기자로서의 자질을 한층 끌어올려 줄 거다. 아마 그럴 거다.
그것과는 별개로 합격에 대한 확신은 없다. 여태 면접 합격률은 상당히 높은 편이지만 딱 한 번, 아예 내 이력에 부정적인 부분만을 노린 면접이 있었다. 그때 불합격을 예감했고, 실제로 떨어졌다.
하지만 탈락을 우려하기보다 도전에 대한 확신을 찾아야 한다. 현실에 대한 불만족이나 면피성으로 어떤 일을 행하면 결과는 대체로 좋지 않다. 내일까지 '기자'가 되려 했던 내 어린 시절의 동기를 다시금 떠올려야 한다.
합불은 이르면 이번 주, 늦으면 다음 주쯤 알 수 있을 테다. 돌아가든 머무르든 심정적 변화는 크지 않을 거다. 다만 내 선택에 따른 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라본다.
나는 기자로 살기를 바라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