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좀 춥네
- 지난주 금요일 신촌 알라딘에 들렀다. 오랜만에 책 좀 볼까 했다. <자기 앞의 생>과 <1밀리미터의 희망이라도>를 산지 3주 만이다. 홍익문고에 갔다간 지출이 커질 것 같아 알라딘에 갔다. 실수였다. 한 시간 정도 내부를 돌았다.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을 때처럼 눈도 돌았다. 정신 차렸더니 계산대 앞이었다. 뭘 그리 골랐는지 손에 들린 책이 무려 7권이다. 갖다놓긴 멋쩍어서 계산을 하는데 45000원 정도 나왔다. 원래 계획보단 많은 금액이다. 근데 또 7권치곤 금액이 적다. 그런 애매한 판단으로 알라딘을 나서는데 기분이 좋아졌다. 금요일과 다독을 기대하는 감정의 콜라보가 정신에 책 뽕을 주입했다. 이게 내 사치구나 싶었다.
- 구입목록은 다음과 같다.
<숨결이 바람 될 때>, 폴 칼리니티 : 폐암 4기 판정받은 30대 의사가 죽기 전 2년을 기록한 책이다.
<바다의 뚜껑>, 요시모토 바나나 : 일본 예술가 하라 마스미의 노래 가사를 작가가 소설화한 것. 제목이 귀여워 샀다.
<매일이, 여행>, 요시모토 바나나 : 일상 여행 에세이라는데, '소설가의 에세이라...'라는 심정으로 선택했다.
*그러고 보니 요시모토 바나나 책은 거의 김난주(번역가) 씨가 맡는 것 같다.
<당신의 신>, 김숨 : 예전 독서모임 할 때 알게 된 작가. 서점에서 만난 게 반가워 골랐다.
<대체 뭐하자는 인간이지 싶었다>, 이랑 : 서점에 올 때마다 보고 지나쳤다가 또 눈에 들어와 결국 샀다.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 정신분석학적으로 사랑의 본질을 분석한 책이라길래 흥미가 돋았다.
<작업실>, 이상현‧이안나 : 예술가들 작업실을 소개한 책. 예술가의 삶을 동경하는 내게 좋은 소재 같았다.
*책 표지 뒤 두 번째 장에 저자의 짧은 메시지가 적혀있었다. 지인에게 선물한 책이었다. 어쩐지 씁쓸.
그러고 보니 이번 목록은 지식이나 정보보다 순전히 내 취향에 중점을 두고 구성한 듯하다.
- 신촌역 맥도널드가 사라졌다. 매일 같이 지나칠 땐 몰랐는데 문득 공백이 눈에 찼다. 통유리 안쪽으로 사람들이 둘러앉아 햄버거를 먹는 모습이 어느샌가 풍경처럼 그곳을 지켰는데 어쩐지 쓸쓸한 허전함이 가슴 한쪽에 박혔다. 맥도널드가 물러난 이유는 높은 임대료 탓이라고 하니 저 공간은 곧이어 무엇인가로 들어찰 터. 여느 화장품 매장처럼 호객 행위를 한다든가 시끌벅적한 가게가 문을 열고 장사하는 그런 공간은 아니었음 한다. 하지만 기껏해야 하루 몇 분, 발걸음을 흘리는 내 바람은 별 의미가 없다. 새로 생기는 그것이 무엇이든 나는 또 익숙해질 거고 그저 지나치는 공간으로써 장소를 소비해 나갈 게다. 맥도널드는 내게 의미 있는 장소가 아니었지만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한 번쯤 적어두고 싶었다.
- 비가 와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야밤에 의욕이 돋아 계획했던 것을 해치웠다. 딱히 별도의 노력을 요하는 일은 아니었다. 기껏해야 살까 말까 고민하던 물품들을 깡그리 주문한 정도의 일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이 일을 기록하는 것은 내게는 매우 드문 일인 탓이다. 남들보다 추진력이 떨어지는 나는 어떤 일을 실행할 때까지 비교적 긴 시간을 요한다. 그래서 한 번 결심했을 때 관련 일들을 해치우는 일이 종종 있다. 어제는 영양제가 주제였다. 멀티비타민을 비롯해 블랙보드와 이젤 등을 구입했다. 블랙보드 역시 자신과의 약속을 이따금 잊는 내게 늘 계획을 상기하게 하는 매게로 사용하기 위해 주문했다. 크게 비싸지 않았고 이 정도에 의지를 다질 수 있다면 밑지는 일은 아니라고 봤다. 그런 이유로 어젯밤 빠져나간 금액은 거의 10만 원. '돈 쓰는 방법도 가지가지'라고 아침에 일어나 생각했지만 크게 괘념치 않는다고 스스로 최면 중이다.
- 헬스를 시작했다. 사실 한지 좀 됐다. 식이요법도 병행하기로 마음먹었지만 늘 잘 안된다. 의지박약이나 허기 등 몇 가지 원인을 꼽을 수 있겠으나 무엇보다 집에 소진하지 못한 먹거리가 많다. 왜인지 마트에 들릴 때마다 자제하지 못하고 할인 용품을 사 오는 탓일까. 유통기한 연장을 위해 대부분 냉동실에 넣어뒀는데, 덕분에 냉동실에 여유 공간이 하나도 없다. 그곳엔 대략 볶음밥이 2~3종, 치킨텐더 한 봉, 양념 소고기 2~3봉, 만두 소량, 한스 바커 치킨 닭가슴살 한 봉, 베이글 2묶음, 돈가스 한 덩이, 비엔나소시지 2봉, 어묵 소량 등이 들었다. 그야말로 눌러 담았다. 이뿐이랴. 찬장엔 불닭볶음면 4개, 사천짜장 3개, 진라면 4개가 있고, 스팸 두 개, 카레 하나가 있다. 대부분 운동에 하등 도움이 안 되는 것들이 유통기한을 하루씩 앞당기며 '먹으라'고 아우성인 가운데 운동하면서 먹으려고 샀던 보충제와 황금고구마도 신발장 위에서 노닌다. 상황이 이런데도 집 밖이 연희동이라 맛집을 끊는 일도 쉽지 않다. 수도승의 자세라도 필요한 걸까.
- 김경란 아나운서가 이혼했다. 남편과 정다운 모습으로 결혼 소식을 알린 게 엊그제 같은데 이혼 기사가 떴다. 기사에 나온 소속사 관계자에 따르면 '성격 차'가 원인이라고. 그러고 보면 수많은 커플이 성격 차로 이혼한다. 연예인이나 정치인의 이혼 기사를 접할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이유가 그것이고, 어쩌면 그것보다 적합한 대외적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 탓인지도 모른다. 경제난이라든가 불화, 갈등 따위보다 적어도 어감은 훨씬 좋지 않나. 어쨌든 사회 유명 인사들이 만나서 결혼이란 계약 관계를 맺고 또 헤어지는 것을 보며 상대와의 관계 유지는 결혼을 대할 때의 자세보다 훨씬 진중한 노력을 요하겠구나 싶다. 속된 말로 결혼이 어려운 게 아니라 결혼해서 사는 게 어려운 것이라는 말은 결혼 적령기에 있는 내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결혼하면 정으로 산다"는 말을 부정하고 싶은 나로서는 연인과의 관계가 늘 연구대상이다. 약간의 긴장감과 친구 이상의 관계, 남 같은 가족, 그 속에 존중 뭐 그런 희망 섞인 상상의 부부 사이랄까. 하지만 헤어지는 모든 연인들도 이런 기대를 거쳐갔겠지, 생각하면 어딘지 슬픔이 차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 티조 수습기자가 '드루킹' 관련 느릅나무 출판사에서 태블릿 PC와 휴대폰, USB 각 1개씩을 가져갔다가 경찰 조사를 받게 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애초에 '모 언론사' 기자라는 소식이 돌았을 때 우스갯소리로 "조선 계열일 걸?"이라고 얘기했던 게 맞아떨어졌다. 행위의 시비를 떠나 취재 과정이 과열되면 발생할 수도 있는 일이라 생각했고 비슷한 케이스를 알고 있어 짐작했던 게 '역시나'가 됐다. 그러나 이번 일은 취재 경쟁으로 볼 수 없을뿐더러 티조의 사과문도 이상해(=의심스러워) 살짝 풀어본다.
티조 사과문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티조 수습기자가 지난 18일 새벽 파주의 출판사로 이동해 취재하는 과정에 현장에서 물품을 마음대로 가져와 벌어진 일이다. 그날 오전 뒤늦게 상황을 알게 된 사 측은 물품을 현장으로 돌려놓으라고 지시했고, 이런 일련의 사태에 대해 사과를 한다는 내용이다. 한 마디로 수습기자의 취재 미숙이 불러온 해프닝이라는 식이다.
이상하다. 상황도 이상하고 티조의 사과도 이상하다. '수습기자' 경험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의아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세세한 동선이나 전후 상황까지 티조가 해명할 이유는 없을지 모르지만 단순 사과문으로는 의혹만 남긴다. 통상적인 수습기자 생활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같은 의문을 가질 수 있을 테다.
언론계와 무관한 사람들도 아는, 유명 매체 수습기자들은 대부분 '경찰서 수습기자'라는 것을 거친다. 방송에도 몇 번 소개된 이 생활은 경찰서 기자실에서 쪽잠을 자며 하루 종일 취재하는 그 생활을 말한다. 사회부 사건기자에 해당하는 이 기간에 수습기자들은 일거수일투족을 선배/데스크에게 보고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 혜화경찰서에서 취재를 하다가 그곳을 벗어나려면 자신의 보고를 받기로 돼 있는 선배에게 카톡이나 전화로 보고한다. 또는 물어본다. 현장 집회 등을 취재하다가 장소를 옮기거나 특이한 일이 생기면 다시 보고하는 식이다. 분초를 다투는 일이 아닌 이상 대부분 선 보고가 원칙이다. 돌발적인 사건사고에 신속하게 움직여야 하는 언론사 특성상 가용 인원의 소재와 상황 등을 파악하려는 시스템이다. 이런 시스템은 수습 기간에 특히나 강하게 작용한다.
언론사마다 보고 주기가 다르고, 선배마다 보고 방식이나 보고 요건 등이 다를 수 있다. 쥐재 현장 보고나 주요 사안에 대한 보고는 실시간으로 주고받는다. 정규 보고 주기는 30분인 곳이 있는 반면 3시간인 곳도 있다. 취재 자율성 면에서 수습기자는 다소 제한적인 규제를 안고 있고 그만큼 집중적인 회사의 관리/교육을 받는다. '지시-취재-지시-취재'의 기본적인 고리는 부서에 구애받지 않는 수습기자들이 가진 일종의 공통분모다.
그런 면에서 자사 수습기자가 관할 지역을 벗어나 파주까지 이동한 사실을 사 측이 몰랐는지 의문이다. 일반적으로 수습기자 관할 지역은 서울에 한한다. 또 '드루킹' 같은 핵심 현안의 취재를 수습기자에게 자율적으로 맡겼는지 여부도 의문이다. 이 모든 과정이 만에 하나 수습기자의 우발적인 욕심에서 비롯됐다 하더라도 현장에 있던 타블릿 등을 무단으로 취한 사실을 수습기자가 뒤늦게 보고했다는 사실은 이해하기 어렵다. 사안의 경중과 수습기자의 포지션을 고려할 때 티조가 뒤늦게 알게 됐다는 사과문에 쉽게 수긍하기 힘들다.
내부 사정이야 캐묻고 캐묻다 보면 결국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듣는다고 해서 공개된 정보도 아닌 것을 블로그에 쓸 수 있을 리 없다. 고로 개인적으로는 수습기자의 과욕이 부른 실수라는 티조의 사과문을 믿기 힘들며, 이번 사태를 이런 식으로 정리하는 사 측이 '언론사'라는 가정 아래 조금 실망스럽다.
다음은 TV조선 사과문 전문.
경기도 파주 경찰서가 드루킹이 운영하던 ‘ 느릅나무 출판사’에 지난 21일 무단으로 들어가 물건을 훔쳐 나온 A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앞서 A씨는 이번 사건의 취재경쟁이 치열하게 진행되던 상황에서 지난 18일 새벽 본사 수습 기자에게 자신이 이 건물 3층에서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하고 있으며 경공모 회원이라고 소개했다고 합니다.
A씨는 이어 자신이 건물주로부터 관리권한을 위임받았으니 사무실에 같이 들어가자고 제안했다고 합니다. A씨와 함께 출판사 내부에 들어간 수습 기자가 압수수색 이후 현장에 남아있던 태블릿PC와 휴대폰, USB 각 1개씩을 갖고 나왔습니다.
본사는 18일 아침 이 사실을 보고받고 수습기자에게 즉각 원래 자리로 가져다 놓으라고 지시했으며 반환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보도에는 전혀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현재 경찰조사가 진행 중에 있으며 충실히 협조할 것입니다.
저희는 드루킹 사건이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이슈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보도 초기부터 신중에 신중을 기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발생한 데 대해 시청자 여러분께 매우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시청자 여러분께 고개 숙여 사과 드립니다.
아울러 드루킹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취재에 더욱 매진하겠다는 약속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