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 줄 아는 사람

나를, 나로.

by OIM
나는 즐거워하는 법을 잊었던가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을 한다. 무엇을 봐도 시큰둥하고, 감정의 낙차가 크지 않다. 원인을 곰곰이 고민해봤다. 아마, 일변도로 살아온 삶이란 놈 탓이리라.


원체 무심하게 살아왔다. 어릴 땐 친구들이 말을 걸면 '뭐 그리 할 말이 많을까'라거나 '속으로 할 말을 소리 내서 하네'라고 생각했다. 딱히 나눌 말도, 전할 말도 많지 않다고 여겼다. 타인에 대한 관심도를 반영한 것일 게다.


팬덤 같은 것도 없었다. 남들 좋아하는 연예인에 한 번 취해본 적 없다. 취향을 탄다는 음악마저도 그저 좋은 신곡을 찾아 듣는 정도였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 대한 관심도 그 정도였나 싶다.


딱히 문제가 있는 삶은 아니었다. 말 잘 듣고 교우관계도 원만했다. 대충 성적도 반에서 손가락 안엔 들었고 싸움 같은 것도 안 했다. 한마디로 충실한 삶이었다.


그럼에도, 아니 그래서인지 나는 이쪽 바닥에 발을 들인 게 대수롭지 않았다. 언론계 말이다. 말보단 생각이 익숙했던 나는 책을 좋아했고, 책에서 익힌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봤다.


다소 비판적인 시선은 성장 과정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기자질에 거의 필수적인 덕목으로 꼽히는 자질이지만 사실 이게 실생활에 얼마나 득이 되는지 의문이다.


어쨌든 그렇게 자라온 나는 어떤 현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 납득 가능한 과정을 우선했다. 사회 보편적 윤리나 종교적 교리도 한 번은 꼬아보게 됐다. '왜'라는 건 늘 내게 유의미했다.


이 유의미한 질문 탓에 생활의 많은 것들이 빛을 잃었다. "그냥 즐기라"거나 "재밌잖아" 같은 말을 동반하는 단순한 여흥에 쉽게 동참하지 못했다. 나는 때로 가면을 쓰고 춤을 췄다.


일상이 늘 납득 가능한 일의 연장선이어야만 했던 건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부분에서 행위의 동기나 이유는 어렵지 않게 무시돼 왔다. 그것은 나에 해당하는 일이기도 했고, 또 다른 사람의 것이기도 했다.


공동체란 것이 으레 그렇다고 자조하면서도 기존 자세만큼은 견지했다. 그게 기자로 살거나 기사를 쓸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그런 면에서 기자는 어느 정도 회의적인 면이 필요하단 의견에 동의한다.


하지만 문제는 '기자'가 일상과 일의 구분이 뚜렷한 직업이 아니란 데 있다. 내 삶의 전반을 차지했던 사고 회로는 직업적 자질이 됐는데 정작 일상으로의 복귀를 어렵게 만드는 아이러니를 선사한다.


살면서 타인과의 갈등을 '거의' 겪어본 적 없는 나는 직업적 소명의식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일상생활의 범주까지 끌고 오길 원치 않았다. 애석하게도 언론인은 그게 잘 안 되는 직업군 중 하나다.


매일 같이 기사를 읽다 보면 사회 문제를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된다. 놀아도 시사 이야기를 하고, 어째서인지 정치나 경제, 사회 전반적인 이야기를 줄줄 읊게 된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매우 시사적인 인간이 돼 버린달까.


그런데 '시사'가 무엇이던가. 당대의 여러 사건을 말한다. 그게 곧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고로 생활 전반에 알게 모르게 비판적 시각을 유지하게 된다. 그런 면면이 삶을 지배한다.


가끔 이 사실이 싫다. 나는 좀 더 밝은 사람이었는데. 나는 아무런 이유 없이도 즐거워할 줄 아는 사람이었는데. 이따금씩 이런 느슨한 생각이 하루를 괴롭힌다. 찌들었다.


비단 이쪽 직업군에만 한정되는 부분은 아닐 테다. 삶에 여유가 없을수록 자신을 기쁘게 하는 일을 잊어가는 듯하다. 벌어들이는 돈으로 순간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일 정도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요즘은 '하자'보다 '쉬자'는 말이 익숙하다. 일을 시작한 뒤 줄곧 그래 왔다. 퇴근 후 또 다른 미래를 위해 '노력'을 계획하고 이마저 삶의 무게로 다가온다. 이게 정상인가.


미래를 위해 오늘을 소진하는 일을 이제는 멈추자. 노후를 위한 젊은 날을 산다든가, 웰다잉을 위한 노년을 보내는 식이라면 삶이 후회로 밭을 가는 소 같지 않은가. 나는 소띠지 소가 아니다.


놀자. 이 말에 하루를 좀 더 내어주련다. 기자라거나 대리 같은 직함으로 불리는 일보다 이름에 가치를 얹는 삶을 그리고 싶다. 빌어먹으면 어떤가, 나는 나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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