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의 거리, 예절의 속도

간신히 부모님을 뵙고서

by OIM

고향에 다녀왔다. 어버이날을 앞두고 시간을 냈다. 돈도 준비했다. 선물을 찾다가 마땅한 것을 마련하지 못한 까닭이다. 좌훈기나 족욕기를 생각했지만 활용도나 운반의 용이성 면에서 적합하지 않았다. 그저 몸뚱이 하나를 덜렁 버스에 싣고 울산으로 향했다.


7시간 30분 걸렸다. 강남 고터에서 탄 버스가 구미 근처에 도달하는데 5시간가량 소요됐다. 돈 좀 아껴보겠다고 일반 버스를 탄 걸 첫 번째 휴게소쯤에서 후회했다. 좌석 옆은 통유리, 커튼은 앞뒤 좌석에 하나씩 달린 탓에 햇볕에 노출된 채 서너 시간을 버텨왔다. 바짝 말린 오징어처럼 자리에 눌어붙었다.


9시간을 넘겼다. 연희동에서 나와 울산 집에 도착할 때까지 걸린 시간이다. 저릿한 엉덩이에 피를 돌리며 집으로 향했다. 기저귀 찬 것처럼 걸음걸이가 희한했다. 다만 몇 달만에 고향에 도착했단 사실이 마음을 놓게 했다. 언제 와도 익숙한 거리를 걸어 아파트 단지에 도착했다. 아, 집인가 싶었다.


엄마는 아들이 온다고 고기를 준비하셨다. 소고기와 돼지고기다. "무엇을 먹고 싶냐"는 물음에 "집밥, 순두부찌개 같은?"이라고 답했던 걸 기억하셨나 보다. 내일은 순두부찌개를 먹으러 가자며 고기를 구우셨다. 아빠는 좀 더 좋은 부위를 사는 게 나았다고 투덜거리셨다. 엄마는 "고기가 질긴가…."라고 나지막이 읊조리셨다.


모처럼 내려온 자식에 대한 애정을 부모는 자신들만의 온도로 내비쳤다. 미처 몰랐던 외마디마저도 내리사랑의 또 다른 형태인 것을 이제는 알 수 있다. 사랑의 박자를 어릴 적엔 맞출 수 없었기에 한 땐 부모의 그것을 '강요'라고 느꼈다. '나는 a를 원하는데, 왜 b를 주면서 사랑이라 할까' 내 게으른 애정의 불신을 그들은 보듬고 있었다.


용돈 30만 원을 쥐어드렸다. 봉투도 없이 엄마에게 건넸다. 받기만 하던 자식이 무언가를 드리는 건 언제나 멋쩍다. 행위에 드는 감정적 품을 최소화하기 위해 돈을 드리고 곧바로 돌아섰다. 엄마는 "고맙다"며 "잘 쓸게" 말씀하셨다. 어색한 대면을 기피한 나는 괜스레 가슴이 울렁이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이따금 느끼는 감정의 발로는 부모가 쏟아냈던 아가페의 반작용이라고 이제야 느낀다. 주는 것에 대한 의미를 뒤늦게 알아버린 자식은 지갑에 욱여넣은 30만 원으로 '효'라는 걸 생색낸다. 어쩌면 어버이날은 '애(愛)'를 드러내기 힘든 자식을 위해 '예(禮)'를 드러낼 기회를 마련한 날일지도 모른다 여기며, 길러준 부채감에 생채기를 내본다.


따지고 보면 그렇다. 고속도로를 타고 반나절을 달린 나도 그 작은 감사를 표하기 위해 오롯이 집을 찾은 것만은 아닐 테다. 30년 넘게 부모가 베풀어온 애정의 본질이 단순히 심리적 기제나 인간 본성 정도로 정리되지 않는 그 무엇임에 눈떠 버린 탓이다. 인간은 이 느린 배움의 속도를 통해 부모란 객관보다 주관의 영역에 있음을 비로소 알게 된다.


고향을 떠나본 사람은 안다. 일터가 있는 도시로 돌아갈 때 또는 군부대로 복귀할 때 집 떠나는 자식을 따라 나온 부모의 눈 속에서 알 수 없는 슬픔을 느낀다. 일평생을 사랑으로 태우고도 남은 감정의 공백을 걱정이나 그리움 따위로 자식에게 띄운다. 마르지 않는 이 샘물은 구명조끼를 허락지 않아 그저 빠지는 것 말곤 답도 없다 하더라.


나는 이번 귀향길에 한사코 부모의 도움을 고사했다. 옷을 사주신다는 행차도, KTX 표를 끊어주신다는 제의도, 식사비를 내려는 손길 등도 굳이 마다했다. 자식을 곁에 두고 아무 부담 없이 지내도 된다는 말씀을 한 번쯤 전해드리고 싶었다. 그저 돌봐야 하던 당신의 자식이 이만큼 자라, 밥벌이를 하고 있단 사실을 굳이 말로 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엄마아빠는 서운하셨는지도 모른다. 당신들이 베풀 수 있는 것들이 시간이 갈수록 줄어간다는 점을 당신의 자식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고, 그 사실을 이번에 확인하셨을 게다. 나는, 부모가 그랬듯 자신이 가꾼 사랑의 형태를 부모에게 내밀었다. 그게 자신의 부채감을 덜기 위해서였다 하더라도 나름의 노력이자 애정이었다.


내가 서른 하고도 네 해를 더 산 2018년 어버이날은 내게 일종의 해프닝으로 기억될 거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에 비로소 의미를 되새기게 한 내 지난 날들. 꿈 좇아 부모 속 태우던 벌거숭이의 시간. 이 기억들이 언젠간 부모를 그리는 향수가 될 것을 생각하니 어쩐지 이번 귀향길은 나를 위해서였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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