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연희 DT에 앉아
오늘 일기는
'정인'의 노래와 함께.
<장마> 듣는 중
1. 피곤하다. 운동을 다닌 탓이다. 이번 주는 꾸준히 갔다. '이 주의 목표' 따위를 블랙보드에 적어서 그렇다. 방 한 편에 우두커니 서 있는 블랙보드는 항상 가시권이다. 굳이 다이어리를 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계획이 머릿속에 떠다니는 것과 같다. 효과는 뛰어났다. 한 주에 절반 정도 가면 잘 가지 싶었는데 화수목금을 연이었다. '가슴-등-어깨-하체'로 구성된 운동 사이클을 소화해낸 셈이다. 온몸이 골고루 아프다. 근 회복을 돕는다는 마그네슘이나 아연 영양제를 먹고 있는데도 역부족이다. 딱히 비가 와서 그렇다거나 나이 핑계를 대고 싶진 않은데, 늘어진다.
2. 스타벅스에 나왔다. 항상 가는 연희 DT다. 집에서 가까워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이곳으로 온다. 오늘은 비가 와서 집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다 나왔다.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각 집 화장실 문짝을 수리한다고 빌라 주인아저씨가 오전부터 빌라를 휘젓고 다녔다. 3층인 우리 집은 후순위였다. 그러다 보니 2층부터 시작된 드릴음과 진동이 고막을 타고 뇌를 때렸다. 새벽 2시에 운동을 마치고 3시 반쯤 잠자리에 든 내게 4시간짜리 꿈은 달갑지 않았다. 오전 8시부터 선잠을 자다가 결국 씻고 나왔다. 의도치 않게 쫓겨난 기분이다.
3. 어젯밤부터 배고팠다. 허기가 돌아 애꿎은 정수기 물을 들이켰다. 저녁으로 닭가슴살 하나를 달랑 먹었더니 에너지를 공급하라고 위장이 난리를 피웠다. 하지만 지난 10일 운동하러 갔다가 78kg에 도달한 몸무게를 보고 살짝 놀란 탓에 단호히 몸이 요구를 거부했다. 내 뇌는 다른 장기보다 강하고, 뇌가 만든 의지는 위장 정도를 가뿐히 압도한다. 그런 이유로 허기진 상태를 유지했더니 '카페 끊기'를 이 달의 목표 1번으로 적어두고도 카페에 와서 샌드위치를 먹었다. 건.강.한. 샌드위치.
4. 사실 뭐, 샌드위치 정도는 괜찮지 않나 했다. 스타벅스 샌드위치는 양이 많지도 않은 데다 고기 종류보다 채소나 빵의 비율이 높다. 그래서 크랜베리 치킨치즈 샌드위치와 초콜릿바나나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샌드위치까진 괜찮았는데 초콜릿바나나까지 시켰더니 조금 과했나 싶다. 밥 대용이니 이 정도는 괜찮다고 반복적으로 되뇌는 중이지만 역시 과했나. 글 쓰는 도중에 자꾸만 마음이 바뀐다. 그래도 샌드위치와 함께 먹기에 아메리카노 같은 건 너무 쓰니까 괜찮은 걸로 하자.
5. 초콜릿 바나나 열량을 찾다가 인터넷에서 프레시안 기사를 찾았다. 2016년 1월에 이대희 기자가 쓴 서평이다. '커피, 초콜릿, 바나나에서 피냄새가 난다'는 제목의 기사다. 결론부터 말하면 꽤 기분 나쁜 타이틀이다. 우리가 즐겨 소비하는 상품의 생산 공정이 올바르지 않다는 걸 지적한 글이다. 그 과정에 노예제나 노예제에 가까운 처우를 받고 있는 희생이 수반된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글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다만 생산 과정에서 벌어지는 착취의 냄새를 소비자에게 맡아보란 식으로 들이미는 제목은 균형이 안 맞다. 특히나 소비자 입장에서 손해다. 소비에 윤리적 판단을 가미할 수 있는 정보를 얻는 대가로 (사실상) 소비하지 않을 수 없는 소비재를 대할 때마다 피 냄새를 상기하게 된 일 말이다.
기자는 착취의 고리를 반복 생산하는 소비에 앞서 그 배경을 한 번쯤 생각해보란 의미일 테다. 그럼에도 바나나를, 초콜릿을, 커피를, 이 같은 일상 식품을 사 먹으며 피 냄새를 떠올리게 하는 메시지는 적절하지 않다. 보편적 범주의 소비자들은 착취의 고리를 유지하는데 일조하려고 이들을 소비하지 않는다. 고로 이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사용한 표현으론 그들이 얻는 불쾌함에 비해 과하다는 판단이다. 그런 의도로 글을 쓴 기자만이 이익이라면 이익일까. 이쪽 바닥에선 종종 이렇게 사안의 심각성을 드러내기 위해 자극적인 표현을 쓰는데 고쳐야 할 관행 중 하나다.
이 바닥에 들어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이런 문제를 내부에서 겪은 적이 있다. 데스크, 그러니까 당시 우리 부서 팀장이 내 기사를 SNS에 올리며 제목을 희한하게 바꿨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이었다. 내 기사는 제목을 바꾸는 일만으로 낚시성 기사의 경계에 섰다. 당시 "이렇게 바꿔도 틀린 것 없지?" 라며 팀장은 물었다. 너무 자극적이라고 했더니 "틀린 말은 아니잖아. 안 그래?"라는 답이 돌아왔다. 나는 끝까지 반대했지만 자극적인 제목을 단 채 SNS에 공개됐다. 불쾌했다. 기자는 모두가 이해하는 글보다 한 사람이라도 오해가 없는 글을 써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에 동의한다. 기술(記述)의 범위에서 펜촉이 향해야 할 지점은 틀리지 않는 사실이 아니라 보다 적확한 사실에 있다.
6. '초콜릿 바나나' 먹다가 뜨끔해서 쓴 글이 아니다.
7. 이런 글보다 당장 내 서평이 급하다. 이번 주에 책을 두 권 읽었다. 한국일보 박선영 기자의 <1밀리미터의 희망이라도>와 예술가 이랑의 <대체 뭐하자는 인간이지 싶었다> 두 권이다. 아마 주말에 한 권 더 읽어 세 권이 될 예정이지만 어쨌든 읽은 책은 이제 서평을 남기기로 했다. 기억의 복기를 위해 읽은 지 일주일 내에 쓰기로도 했다. 방금 다이어리에 적으며 만든 원칙이지만 그러기로 했다. 다음 주 중 서평 세 편 정도가 나올 예정이다. 꾸준히 책을 읽고, 꾸준히 영화를 보며, 가능하면 공연도 즐기는 등 문화생활을 누리기로 했다. 그 내용을 1인 미디어처럼 기록할 계획이다. 그래서 만든 게 <모두의 문화>라는 매거진이다. 이것도 방금.
8. <모두의 문화>가 잘 되면 여러 가지 사진도 찍어 올릴 생각을 하고 있다. 큰 쓰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근 엄청난 욕망으로 결제창을 괴롭히는 카메라 뽐뿌도 이런 계획에 바탕을 두고 있다. 스냅사진의 명기라는 '리코 GR'. 최고의 휴대성을 보장하며 결과물 또한 적당한 선에서 뽑아준다는 카메라다. 지금은 단종됐는데 그래서 더욱 갖고 싶다. 이미지 센서 크기가 DSLR 중급기와 같다고 하니 다방면으로 따져볼 때 나쁜 선택이 아니다. 솔직히 사진기자로 일할 때처럼 플래그십 카메라에 렌즈를 주렁주렁 달고 다니며 기록할 의욕은 없다. 취미는 노동이 아니기에 어디까지나 즐거운 선을 넘지 않을 필요가 있다. GR이 딱 그 선에 있다.
9. 아, 맞다. 이번 주 내내 했던 생각이 있다. 흥미로운 책을 여럿 알게 돼서 뽐뿌가 오는 바람에 하게 된 생각이다. 도서정가제가 없어질 기미가 안 보이니 보완책으로 나왔으면 하는 정책 따윈데 어디까지나 공상에 가깝다. 그럼에도 이런 제도가 나온다면 나 같은 책 중독자(독서 중독자가 아니다)들은 좋아서 춤을 출지도 모른다. 이를 테면 구입 권 수에 따라 할인율을 높여주는 거다. 아니면 그런 재량을 개별 서점에 부여해 도서정가제로 인한 제재를 완화하는 거지. 또는 도서 바우처 같은 국가지원제도를 신설하는 방안도 있다. 독서 장려책의 일환으로 매달 일정 금액을 세금으로 내면 금액에 관계없이 혹은 일정 금액 안에서 정해진 수만큼 책을 살 수 있는 코드를 부여하는 거다. 예산 확보가 일이겠지만 독서 장려정책 좀 적극 펼쳤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합리화는 아닌데 따지고 보면 독서 장려정책 입안을 위한 동기도 충분하다. 문체부가 지난 2월 발표한 '2017 국민 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성인 중 1년에 책을 한 권도 안 읽는 사람이 10명 중 4명이나 된다. 지난 1994년, 그러니까 조사 데이터가 쌓인 이후 최저치라고 하니 필요성을 고려해볼 만한 때 아닌가. '책의 해' 선포도 좋고 관련 행사도 좋은데 책을 구입할 수 있는 환경에 좀 더 치중해줬으면 좋겠다. 책 두 권만 사도 3만 원이다. 3만 원이면 일주일치 반찬을 만든다. 월급으로 매달 마음과 뱃속의 허기를 저울질해야 하는 현대 사회가 나 같은 수집증 환자에겐 얼마나 고민스러운지 교문위 의원들은 알랑가 모르겠다.
10. 위에 언급한 이유, 그러니까 이번 달에 책을 너무 많이 지른 탓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와 강창래 작가의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는 못 샀다. 전자는 전쟁의 참상을 여성들의 눈으로 조명한 내용을, 후자는 암 선고를 받은 아내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저자가 아내에게 해줬던 요리를 매개로 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이 책들마저 사면 이번 달 책값으로만 10만 원이 넘는다. 예산 초과다. 몇 번 충동이 와서 손을 덜덜 떨며 결제창을 열었지만 막아냈다. 책은 대체로 옳다는 명제를 어딘가로 치워버리지 않으면 밥 한 숟갈 먹고 반찬 대신 활자 핥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11. 이건 내 하루에 관한 이야기. 요즘 늦은 시간에 운동을 다녀오다 보면 집으로 오르는 길 입구쯤에서 종종 할머니 한 분을 본다. 할머니는 대체로 낮은 돌담 같은 곳에 앉아 몸을 쉬이고 계시는데, 그 옆엔 레트리버 한 마리가 늘 함께 있다. 할머니의 허리춤까지 닿는 큰 레트리버는 날씬한 몸매에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할머니 주위를 맴돈다. 너무도 느긋하게, 그렇다고 할머니를 두고 먼 걸음 옮기지도 않으면서 오직 그 옆에서 밤바람을 맞는다. 빌라가 많은 이 동네에 모두가 잠들 시간쯤이 되면 차마저 통행이 뜸해지고 할머니와 레트리버만 길 한 편에 덩그러니 남는데, 알싸한 밤기운과 이들의 고요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달빛에 스친다. 그게 너무 좋아서, 그 모습이 너무 좋아서 나는 가끔 할머니를 마주치길 집을 나서면서부터 기원하게 되는데 그런 날은 좀처럼 이들을 만날 수 없다. 언젠가 할머니와 레트리버는 자취를 감추겠지만, 의도치 않은 이 둘의 작은 위안이 요즘은 참 고맙기만 하다.
12. 지금 시각 오후 3시 45분. 문짝 교체는 끝났을까. 돌아가도 되는 걸까. 허기진 배를 안고 일어서야겠다. 주말은 짧다. 토요일은 더 짧다. 귓가엔 정인의 <오르막길>이 흐르고, 창밖엔 봄비가 가로수를 적신다. 활동의 범주가 줄어든 건 아쉽지만 온전히 토요일을 느낄 수 있어 오늘은 충분히 좋은 날이다. 좀 더 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