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619 오늘의 일기

이직과 시계와 드라마와 계절 등

by OIM


동네 챠밍포인트.


집에 왔더니 고지서가 날아와 있었다. 우편함 바닥에 깔려있어 어제는 못 보고 지나쳤던 모양이다. 고지서는 자동차를 가진 자, 의무를 다 하라는 자동차세 납부 안내서였다. 세금을 낸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또 날아오니까 야속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나마 오래된 차라서 세금 감면폭이 큰 게 다행이라면 다행인데 여전히 아깜단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이번 여름 휴가지로 후쿠오카나 방콕 등을 물색하다 왔는데 이래서야 계획도 미처 짤 수 없게 된다. 세금으로 나가는 돈의 액수보다 계획에 없던 지출이 생기는 게 껄끄러운 포인트다. 어쨌든 나는 여행 후보지로 꼽아뒀던 그럴싸한 '료칸'들을 가슴 언저리에서 구석으로 밀어 넣고 세금 납부에 열과 성을 다했다. 내는 김에 공과금도 내자 싶어 가스비도 납부하니 순식간에 여윳돈이 통장에서 사라졌다. 한동안 씀씀이를 살피면서 '이런 추세라면 이번 달은 절약의 성과를 볼지도 모르겠다' 싶었는데, 어쩐지 이상하다 했다. 연초에 계산한 바, 매달 이벤트처럼 목돈이 나갈 일이 한두 건씩 있었다. 이번 달은 잠잠하다 했더니 자동차세를 까먹었나 보다. 차량 점검도 받을 때가 됐는데, 올여름은 차에서 에어컨이나 틀고 놀아야 할까 보다.




이직, 이직했더니 정말 이직 기회가 찾아왔다. 이직과 관련해 세웠던 계획과 무관하게 갑작스레 찾아온 기회라서 가능성은 가늠하기 어렵다. 단지 워라밸이 좋은 데다 안정적인 점이 장점인 곳이다. 이곳에서도 역시 글 쓰는 업무를 담당할 확률이 높은데, 언론계에 종사할 때 투자해야 했던 시간보다 많은 시간을 자신에게 할애할 수 있을 듯하다. 물론 아직은 김칫국.




시계 하나가 당분간 내 품을 떠나서 나머지 한 개를 수리점에 가져갔다. 몇 년간 쓰지 않고 있던 제품이지만 모처럼 생각나 약을 갈기로 했다. 시계가 있으면 시간을 확인하려 폰을 꺼내지 않아도 되고, 폰을 보지 않으면 책을 들고 다니며 이동시간에 책 보기가 용이하다. 출퇴근 시간의 경험으로 이런 사실을 깨달은 뒤 오늘 신촌역에 있다는 시계 수리점에 향했다. 무뚝뚝하다는 평을 봤는데 내 기준으론 친절한 분이었다. 아저씨는 몇 분 걸리지 않아 시계 약을 갈아주셨다. 요즘 시계를 수리하는 기술의 전승이 잘 안된다는 글을 어디서 본 듯해 물어볼까 하다가 그냥 말았다. 아저씨는 시계에 약이 3개나 들어간다며, 약 또한 비교적 비싼 약을 쓴다며 필요한 시계에만 넣으면 될 것 같다고 알려주셨다. 약은 개당 1개의 시계를 작동시키는 데 사용됐다. 나는 아저씨의 조언대로 2개만 넣은 뒤 연신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요즘 드물게 이런 깔끔한 서비스를 받아본 듯하다. 지나친 간섭도 없고 그렇다고 불친절하지도 않은 그런 사람과의 만남이 이렇게 유쾌할 줄이야. 시계를 고칠 일이 있는 사람은 신촌역 5번 출구 바로 앞에 있는 '백금당'에 가보는 걸 추천한다. 괜찮은 경험.




<나의 아저씨>를 다 봐간다. '끝을 아쉬워하며 보게 되는 드라마'라더니 진짜다. 전체적인 서사도 좋았지만 캐릭터의 감정선에 대한 연출과 캐릭터의 특징을 드러내는 작은 장치들이 무척이나 감동스러웠다. 가령 둘째 동훈(이선균 분)이 이 가족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드러내는 장면이 있다. 엄마(고두심 분)는 직접적으로 감정을 드러내 왔지만 기훈(송새벽 분)과 상훈(박호산 분)은 그 속내를 줄곧 감춰왔다. 그러다 동훈의 아내가 바람을 폈다는 사실을 이 둘이 알게 되며 동훈에 대한 감정을 삼키는/분출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하나의 사건을 통해 삼 형제의 관계와 이들이 서로에게 투영하는 감정이 자연스레 드러난다. 이런 연출을 피디는 드라마 내내 무심한 듯 던져대는데, 장치에 어색함이 없어 보는 맛이 깊다. 앞으로 4화 정도를 남겨둔 상황에 끝을 향한 기로가 이렇게 아쉽다니. 좀 더 다른 감상을 들려주고 싶었는데 정말이지 '아쉬운' 드라마다.




날이 많이 더워졌다. 미동에도 땀이 흐른다. 얼마 전부터 입게 된 정장 와이셔츠는 매일 같이 세탁을 요한다. 군데군데 젖은 셔츠를 대야에 담는다. 바디워시를 물과 함께 풀고 조물조물 셔츠를 주무른다. 이 작업은 은근히 섬세한 손짓을 필요로 하는 탓에 비교적 천천히 느리게 진행한다. 옷깃이나 카라에 묻은 때를 지우고, 바디워시의 향이 옷에 밸 때까지 충분히 기다린다. 그 후 옷을 짜서 베란다에 너는데 힘줘서 짜게 되면 구김이 간다. 옷 하나를 빠는 일도 이렇게 정성이 필요한데 나는 왜 자신을 그렇게 소홀히 해왔는지, 올해도 절반이 지난 시점에 생각해봤다.




최근 급격히 의욕이 떨어진 적이 한 번 있다. 이직과 관련해 공고와 다른 요구가 이어진 탓이다. 그 회사는 신입/경력직 공고에 '서류-면접-합격' 절차를 고지해놓고 면접 일정에 '시험'을 끼워 넣거나 면접 후 또 면접이 있다고 차후에 알려왔다. 심지어 갑자기 생긴 시험도 '상식'이라고 안내해놓고 현장에 도착하니 '논술'을 쓰라는 식이다. 2번에 걸친 면접도 그렇다. 미리 고지를 했으면 지원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의욕에 비례해 들일 노력이 수지가 안 맞다. 어딘가 '이렇게까진 하기 싫다'는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데, 면접을 보러 오라는 데 대고 "못 갑니다"라고 말할 용단은 또 없어 쭈굴쭈굴 오가고 있다.




엄마와 신촌 나뚜르. 에어컨, 추워 죽는 줄.


엄마가 서울에 올라오신 뒤 누나 집과 우리 집을 오간 적이 있다. 차로 1시간 20분을 이동해야 하는 거리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환승까지 해야 한다. 평생 울산에서 살아오다가 타지에 온 엄마는 복잡한 지하철 노선도와 많은 사람들에 사뭇 놀란 듯했고, 그 모습이 나는 못내 걱정스러웠다. 누나 집까지 태워드리겠다는 걸 한사코 거부한 엄마는 지하철로 따라가려는 나를 다시 한번 떨쳐냈다. 나는 "자꾸 이러면 부담스러워서 너희 집 못 온다"는 엄마의 말에 개찰구를 넘지 못했다. 엄밀히 보면 어렵지 않은 길을 엄마도 어련히 잘 찾아가시겠지 하면서도 마음 한 편에 걱정이 들어선 건 어쩔 수 없다. 엄마가 그 옛날 어린 나를 어딘가로 보낸 뒤 느꼈을 불안이 이런 것이었을까. 그날 나는 한동안 폰을 놓지 못했다. 아마 마음을 놓을 수 없었던 거겠지만.




동네 점박이 고양이 한 마리. 부쩍 멀어진 치즈 냥이와는 거의 이별을 고한 듯하고 요즘은 점박이가 주변을 기웃거린다. 몇 달 전 친근하게 다가와 머리를 부딪히다가 갑자기 내 손을 물어버린 뒤로 우리는 조금 서먹해졌는데, 한동안 내외가 없었던 이유도 거기 있는 듯하다. 최근 이 녀석이 다시 주변을 기웃기웃거린다. 특별히 다가오진 않는데 그렇다고 도망가지도 않는다. 대략 네다섯 걸음 거리를 두고 앉아 내가 보는 만큼 나를 쳐다본다. 그러다 내가 빌라로 들어오면, 빌라 유리문 밖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안쪽을 살피곤 한다. 자꾸만 차 보닛 위에 올라가서 노는 고양이도 이 녀석인 듯한데, 차량 주인이 나라는 걸 아는지 모르겠다. 어제도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을 2~3분 정도 갖다가 어색한 안녕 뒤로 헤어진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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