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버려둬 주세요. 이것은 부탁입니다.'
어제는 한 잔 했어요.
퇴근 시간을 10분쯤 넘겼을까요.
잔업을 내일로 미룰까 고민하던 시간이었어요.
'오늘은 칼퇴'
같은 달콤함을 그렸던 것 같아요.
며칠간 그 맛을 잃었거든요.
'돌아가서 글 써야지.
최근 일기도 못 썼으니까'
신이 났죠.
조금 들떴던 것 같기도 해요.
그때 갑자기 상사가 사무실에서 나오며 이렇게 말했어요.
"밥 먹으러 가자.
어이, 너도 가지?"
퇴근시간이 20분도 지난 시점에 느닷없이 통보했어요.
상황과 기분을 파악한다고 잠시 버퍼링이 생겼죠.
상식에 어긋나는 상황과 '제' 기분이요.
표정이 구겨졌어요.
미간부터 시작해서 인중을 타고 입술 아래 주름까지 고이 접어 구겼어요.
왠지 저는 표정 관리가 잘 안됩니다만.
남을 속이려고 마음먹지 않는 이상은 보통 그런 거 아니겠어요.
각설하고,
그럼에도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답니다.
상대는 이 회사의 대표.
나가거나, 나가거나.
회사를 또는 회식에 말이죠.
모르겠어요.
어째서 이런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다른 사람의 일과 외 시간을 어떻게 가책 없이 빼앗을 수 있는 걸까요.
어쨌든 저는 퇴근시간을 30분도 넘긴 시간에 회사 사람들과 저녁을 먹으러 가야 했답니다.
원하지 않는 술을 마시고, 즐거운 척 웃음을 만들고, 없는 말수를 펼쳐 저를 알렸어요.
신입이 해야 하는 일에 충실해버렸죠.
돌아오는 길, 동행한 상사가 그러더군요.
어느새 회사의 고위직에 오른 그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열정도 부족한 거 같고..."
라며 운을 뗐어요.
젊은 사람들도 여러 가지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있겠지만 오래 일한 사람들이 보면 저렇게도 보인데요.
"자기 시간은 자기 시간이고, 일과 자기 생활을 분리해서 그렇게 하는 게..."
... 열정 부재를 설명하는 구문이 썩 이상하죠?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돈이 있어야 자기 삶도 있데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말이죠.
'적당히 벌어도 자기 시간이 소중한 사람들의 가치관은 다른 세대나 사람들과 다를 수 있는 거니까요'
라는 말에 수긍하기 어려워하더라고요.
그렇게 힘든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오랜 시간 한결같은 삶을 살아온 사람들은 자신의 궤도를 벗어나기 무척이나 두려워한다죠.
그렇게 저는 집에 가는 길에도 상사와 동행해야 했습니다.
소주 한 잔만 마셔도 몸이 붉어지는 제가 무려 30도도 넘는 술을 연거푸 네 잔 마시고 말이죠.
힘든 시간이었네요.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급여는 회사의 압박과 그에 따른 스트레스를 견디는 대가로 주는 보상이라고.
그러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얼마를 받아야 하는 걸까요.
200만 원에 시들어가는 청춘들은 그 값어치를 누군가에게 보상받고 있는 걸까요?
푸념이에요.
청춘에 대입해 너스레를 떨어봤어요.
출근을 앞두고 말이죠.
오늘도 살아야겠죠.
살아내는 게 여러모로 합리적인 방향이겠죠.
이 글을 쓰며 지브리 스튜디오의 음악을 듣고 있는데
어쩐지 어릴 적 그것들이 만들어준 꿈이 떠올라 울컥하네요.
그런 거겠죠.
매 순간들을 그렇게.
뭐, 오늘도 출근합니다.
좋은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