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 산다

전입신고와 생존신고

by OIM


1.

이사 왔다. 연희동이다. 서대문구 하고도 '연희동'을 주소에 적는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주민센터를 찾았다. 계약서를 가방에 갈무리하고 그 길로 전입신고했다. 스무 살 넘어 거주지를 몇 번 옮겼다. 습관적인 신고는 학습의 결과다. 보증금, 그러니까 집에서 빌려온 돈의 액수와 크기, 가치 등의 의미를 알게 됐다. 사회적 수단을 동원해 이를 보존하려는 행위는 '상실의 대비', 불안을 구속하는 임시방편이다.


2.

동네 마음에 들었다. 조용하다. 대로에서 떨어진 곳에 산다. 소음의 소음화는 위치에서 오는지도 모른다. 언덕을 조금 오르면 집이 보인다. 얼핏 보면 시골 같지만 근래 완공된 건물들이 도시성을 살린다. 우리 집은 대로변에서 5분 안팎에 있다. 덕분에 번화가로 접근하기 쉽다. 다만 무거운 짐을 들고 오르기엔 짧지 않은 거리다. 경사각도 마찬가지다. 가령 생수 한 묶음이라든가, 여름엔 한바탕 땀 흘릴 각오가 필요하다. ……. 이 정도면 선방했다.


3.

내가 사는 집은 연식이 좀 됐다. 2000년대 초반에 지었다. 외형이 제법 낡았다. 주변 건물과 다르게 민트색을 입고 있다. 눈에 띈다. 계단을 오르는 복도 벽에는 기능재인지 장식재인지 모를 패널을 덧대 세월을 벗겨냈다. 그 때문에 처음 건물을 방문했을 때 놀랐다. 방은 그동안 부동산을 따라다니며 보던 '골방'을 탈피한 형태다. 베란다도 있다. 정남향. '풀옵션'에 가깝고 소파가 있다. 이 정도면 뭐. 예상 가격대를 상회했지만 집에서 누리는 안정감과 동네가 주는 만족감에 가치를 더하기로.


4.

조금 무리해서라도 이 집을 선택한 건 이전에 살아온 환경과 연관 깊다.


서울에 와서 처음 택한 동네는 화곡동, 까치산역 인근이다. 빌라촌에다 인구 밀집지역으로 집 앞에 빌라 터 만한 작은 공원이 있었다. 이 공원엔 사람들이 앉아 쉴 수 있는 벤치 외에도 지붕이 달린 정자가 있었는데, 밤마다 중고등학생들이 모여 담배를 피거나 술을 마셨다. 날이 따뜻한 날은 한참 시끄러웠고 가끔 애들이 끄는 오토바이 소리가 집 앞을 놀라게 했다.


그 외에도 그 집은 90년대에 지은 오래된 건물에다 세면대가 달리지 않았고, 창문을 열면 앞 건물 옥상과 조우할 수 있었다. 그쪽 건물에선 불가능했겠지만 내 방에선 옥상으로 건너뛰어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다. 해가 좋은 날엔 앞 건물에 사는 아저씨가 팬티 같은 수영복만 입고 옥상으로 올라와 뜀박질을 한다든가 일광욕을 하면서 나와 눈을 마주치기도 했다. 그 집에 사는 3년 동안 나는 아저씨를 마주할 때마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그래서 창문을 닫는 일이 잦았다. 그런 날이면 특히나 바닥이 뜨거웠다. 오래된 가옥의 특성이었다. 열을 머금은 방이 한증막처럼 변하면 몇 번이나 화장실을 드나들었는지 모른다. '씻고 나오면 덥다' 이 말에 가감이 없었다.


집주인도 중요하다. 당시 집주인은 생활에 간섭이 없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도움도 기대할 수 없었다. 화장실 변기 아랫부분의 균열이나 베란다 방충망, 천장 누수 문제 등에 입을 닫았다. 계약 만료 시에도 보증금이 없다고 해서 1년 3개월을 더 살았다. 계약할 때 모든 걸 알 수는 없지만 조금만 신중하면 사는 동안의 불편부당을 다소 경감할 수 있다.


다만 이웃사촌은 어디까지나 운에 맡겨야 하는데, 윗집에 사는 남자가 꽤나 활동적이다.


5.

기자를 관두기로 했다. 새 직장에 면접 보러 갔더니 면접관이 물었다. "미련 없으세요?" 즉답이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망설였다. 그 찰나가 계속되는 것만 같았다. 한 2~3초 텀이 있었을까. 고개를 갸웃하고 대답을 고민했던 거 같다. 그게 메시지에 관한 것이었는지 솔직함에 관한 것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이제 기자 안 하려고요" 그렇게 답했다. 그것밖에 할 말이 없었다.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더니 뭔가 아쉬움이 동반됐다. 이유는 역시 잘 모르겠다.


6.

기자 이후의 삶. 홍보나 광고 쪽으로 많이 옮긴다고들 하더라. 나도 마찬가지다. 몸 담은 업체의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부서 성격은 대동소이하다. 누구 말마따나 "글을 납품하는 것"인데, 이왕 할 거면 콘텐츠 품질을 높여보고 싶다. 취재기자를 하다가 사진기자가 됐을 때 냈던 욕심처럼 혼자서 만들 수 있는 콘텐츠의 완성도를 끌어올릴 계획이다. 기자를 꿈꿀 때 같이 열렬한 욕망으로 '기자니까'라는 말에 기본적인 욕구나 권리마저 묻어가며 일에 매몰될 생각은 없다. 일이든 인간관계든 '즐기기' 위한 여유가 필요하다. 30대가 되어서야, 기자가 되고서야 비로소 삶을 대하는 자세를 갖췄다. 기준이랄까. 나는 일상을 조금 더 소중히 할 필요가 있었다. 기자 생활과 내 생활을 분리해야 했음을 진작 알았더라면 조금 더 이른 결단을 내리거나 다른 양태의 삶을 살았을 텐데 말이다. 이직은 그 첫걸음인 셈일 게다.

아마도.


7.

아직도 취재원에게 취재요청이 온다. 보도자료를 보냈다거나 기자회견 일시를 알리는 문자다. 대 언론 전달용 자료를 배포하는 명단에 내 연락처가 끼어있어서 그럴 거다. 취재 기자와 사진 기자를 다 하고, 경찰서 수습기간을 거친 데다 전문지에도 있었고 대안방송에서도 일했더니 각종 노조부터 시민단체, 협회 등 사회, 경제, 문화 분야를 막론하고 발신처도 다양하다. 다행인 건 기자 생활의 대부분을 회사 메일함과 함께 한 덕분에 매일 같이 쏟아지는 보도자료를 솎아내지 않아도 된다는 정도. 이런 생활의 그림자를 이제는 지울 때가 됐다.


8.

"입장 변화가 있을 텐데 괜찮으세요?" 기자는 갑이다. 갑질을 해서 갑이 아니고 기본적으로 갑의 위치에 있다. 사회 저변에 깔린 일의 보도를 업으로 하다 보니 '알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니즈에 의해 갑으로 '모셔'진다. 속칭 대우받는 직업인데 이 직군에는 그런 게 없다는 설명이다. 바뀐 환경에 대한 우려, 적응 난이도를 얼핏 내비친다. 풍문으로 들은 바 있다. 마음이 편하지는 않을 게다. 보도를 '부탁받는' 입장에서 콘텐츠를 '판매하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급격한 변화는 작은 일에도 생채기를 만들지만 나는 이것을 '진보'로 받아들일 생각이다. 지위의 고하가 아니라 사회적 위치에 따른 정상적인 관계 회복. 기자'님'은 이제 안녕이다.


9.

<콩: 스컬 아일랜드>, 선택과 집중에 실패했다. 부실한 배경 설명은 전체 스토리를 헐렁하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몰입이 힘들다. '미지의 섬에 괴수가 산다. 고릴라를 죽이지 마' 정도로 설명된달까. 상영시간을 늘리더라도 섬에 대한 충분한 묘사가 필요하다. 괴수의 디테일도 떨어진다. 화기에 대한 상성이나 움직임 등 모태가 되는 생물을 표방하지 않고 단순히 크기만 키운 느낌이다. 인물도, 괴수도, 배경도 '싸다 만' 느낌.


<내 어깨 위 고양이, 밥>, 다큐처럼 받아들이기엔 극적 요소가 강했다. 극화로 보기엔 연출이 아쉽다. 주인공의 '나약함'만이 배우의 연기에 힘입어 한껏 부각됐다. 고양이 시선을 연출한 의도를 알 수 없다. 평소 약을 하던 동료의 죽음이나 밥이 사라졌을 때의 분위기, 배우의 감정선 등에 조금 더 신경 썼더라면 훨씬 세련된 영화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동물을 바라볼 때 생기는 엔도르핀이 있다고 가정하면, 그 엔도르핀과 함께 영화를 본 기분이다. 여운이 남지 않아 아쉬움이 남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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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희동 풍경. 독서실에서 변호사시험 합격자가 나왔나 보다. (아마도) 주인아저씨가 손수 플래카드를 걸고 있다. 자신의 독서실에서 공부한 이가 성취를 이룬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잠시 아저씨의 손놀림에 빠져봤다. 합격자에게도, 아저씨에게도 오늘은 기쁜 날일 터다. 저 시험의 이점이 선명히 발휘되는 1년 중 하루. 그걸 목격한 날.


10.

집에선 공부가 잘 안돼. 그런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딱히 동의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지만 쓸 데 없는 핑계라 생각했다. 카페에 나가는 걸 즐기지 않는 편이었고 장소 변화가 행위를 결정짓는 결정적 요인은 아닐 거라 여겼다. 허나 요즘은 내가 카페에 나온다. 그런 추세다. 집이 좋지만 좀처럼 집에선 글 쓰지 않는다. 티브이도 없고 딱히 할 일이 없지만 그냥 논다. 생각해보니 마땅한 이유가 없다. '그냥 그렇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놀고먹는 중이라 그런 걸까.


11.

백수 생활도 어느덧 한 달째다.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전력을 다해 놀기 시작하면 이 짓도 오래 할 일은 못 된다. 친구는 이것저것 하면서 1년 넘게 노는 중인데 "지겹지 않다"고 말한다. 노는 것도 방법과 방향성이 필요한 걸까. 취미의 다양화 혹은 선명화를 이뤄낸 뒤 활동반경의 선명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무슨 말인고 하니, 할 일을 늘리고 내가 할 일의 범주를 뚜렷이 해두겠다는 자기 다짐 같은 거. 괜히 적어본다.


12.

목 부러진 노트북의 수명이 다할까 봐 조마조마하다. 기자를 하면서부터 늘 노트북이 두 대였다. 그래서 개인용 노트북의 필요성에 의문을 품고 있었는데 이렇게 그만두니 또 아쉬움이 커진다. 무엇보다 개인 자료가 대부분 개인용에 들어있는지라, 수명이 다 할 때의 처리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이번에도 회사 노트북을 받게 되는데 매번 그러하듯 이번에도 기대 중이다. IT회사니까 조금은 좋은 장비를 주지 않을까. 김칫국은 알면서 늘 마시는 내 성격의 시그니쳐 메뉴 같다.


13.

동네에서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굳이 홍제천까지 나가지 않더라도 동네 골목골목에서 강아지들이 주인 손을 잡고 산책 중이다. 봄바람이 좋은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데 편한 옷차람의 주인과 차분한 개들이 무척이나 어울리는 그림 같다. 오늘 발견한 그림은 특히나 예뻤는데, 중형견과 시츄가 주인을 가운데 두고 양 갈래로 나뉘어 흥밋거리에 꼬리를 흔드는 중이었다. 어느 누구도 각자의 방향으로 힘을 쓰지 않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산책을 즐겼다. 주인의 보폭에 맞춰 느릿느릿 걷는 애들이 인상적이었다. 특별하지 않은 이 일상이 조금 좋아졌다. 이게 뭐라고 괜스레, 설레게.


14.

태어나서 처음으로 직급을 갖는다. '기자' 말고 '대리'다. 이 어색함을 조금 더 소중히 하자.


15.

'크리티사이저'에서 '크리에이터'로. 빅픽쳐의 첫 장을 그린다. 변화에 따른 욕심이 산더미 같다. 발전 동력으로 이용할 수 있을지 생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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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희동칼국수>, '보통' 사이즈, 8,000원. 사골국물 맛이 깔끔하고 밑반찬이 맛있다. 인기의 흔적인지 테이블마다 칼국수 놓는 자리가 닳아있다. 칼국수 치고 가격이 센 편다만 연희동에서 저렴한 집을 찾기는 쉽지 않다.


16.

연희동에 맛집이 많다. '맛집의 본산'이라고 불릴 만큼 가득하다. 인스타니 페북이니 '연희동'만 쳐도 먹는 사진이 풍성하게 등장한다. 아직도 가게가 생겨나는 중인데 없어지는 곳도 많다. 이 동네를 뜨기 전에 한 번쯤은 다양하게 다녀보고 싶지만 검증된 곳에 자꾸 가는 습성이 있는 내가 그게 될지 의문이다. 친구나 손님이 방문했을 때나 도전해볼까 싶다. 이참에 인스타를 다시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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