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鬼神)일까

사후 존재에 대한 재인식

by OIM

오래전 이야기다. 훈련병 때 일이니까 10년도 지났다. 예비역들이 가진 경험 중 왜 그런 이야기 하나쯤 있잖나. 훈련소 또는 초소에서 귀신을 봤다는 뭐 그런 거.


나도 비슷한 일화가 하나 있다. 처음이자 유일한 경험이다. 오컬트 쪽과 거리가 멀었던 내가 겪은 일은 두려움보다 의아함을 남겼다. 헛것을 봤나 싶었다.


때는 2005년 8월이다. 유달리 진한 햇볕이 무더운 여름을 만들어내던 당시 나는 충주 중앙경찰학교에 있었다. 논산훈련소에서 전경으로 차출당한 뒤 그곳에서 후반기 훈련을 받는 중이었다.


중앙경찰학교는 충주 수안보면에서도 산등성에 위치해 외부와 고립된 환경에서 훈련이 가능했는데, 밤이 되면 주변이 적막해졌다. 산짐승들의 소리 정도가 주변을 채우는 그런 곳.


당시 우리 기수가 묵던 생활관에는 묘한 소문이 돌았다. 야간에 불침번을 서던 훈련병 하나가 귀신을 보고 쓰러졌다는 내용이었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우스갯소리라고 생각했다.


아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단지 고단한 훈련생활에 가십으로 이따금 등장했는데, 이때 괴소문의 구체적인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소문은 이전부터 있어왔다고.


내용은 이렇다. 생활관 4층(3층인지 4층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에서 불침번을 서다 보면 가끔 귀신을 보는 훈련병이 발생한다. 이들의 목격담은 대체로 비슷하다. 귀신은 훈련병에게 지급되는 운동복을 입은 채 4층 복도를 뛰어다니는데, 누구도 얼굴을 본 사람은 없다는 결론.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하며 '4층 불침번 누구냐'거나 '얼굴을 못 본 게 아니고 머리가 없는 거'라는 등 농을 던졌다. 또 으레 그 나이 때 애들이 그렇듯 '운동복은 하복이냐 동복이냐' 따위로 장난을 치며 웃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이 일을 겪게 될 줄 전혀 몰랐다.


내게도 불침번이 돌아온 어느 고요한 밤이었다. 훈련병들은 운동장(공터) 집합이 끝난 뒤 생활관으로 돌아와 잘 준비를 마쳤다. 나는 생활관 2층 왼쪽 끝부터 중앙계단까지를 내 구역으로 배정받고 불침번을 서러 갔다.


그날 나는 자정이 가까워 올 때까지 약 한 시간 동안 복도를 천천히 오갔다. 세면실(2층 왼쪽 끝)부터 계단 앞까지 천천히 복도를 걸었다. 맞은편에는 나와 함께 불침번을 서는 훈련병이 마찬가지로 복도를 오갔다. 별 다를 것 없는 그런 밤이었다.


불 꺼진 생화관은 조용했다. 2층 복도엔 발걸음 소리가 작게나마 울려 퍼졌다. 이따금 세면실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걸음을 멈추면 그야말로 정적이었다.


너무 조용하면 작은 소리에도 집중하게 된다. 찌르르, 찌르르. 풀벌레 소리가 귓등을 때렸다. '한여름이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복도를 걸었다. 1 내무실, 2 내무실 등을 지나며 출입문을 통해 훈련병들의 잠자리를 살폈다.


모두가 곤히 잠든 밤, 나도 돌아가면 얼른 자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복도 중앙쯤 위치한 내무실에서 깨어있는 훈련병을 발견했다. 그는 창가 쪽 끝자리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었다. '어라?' 했던 게 그때쯤이다.


그는 허리 아래까지 모포를 덮고 있었다. 상체만 비스듬히 돌려 창밖을 보고 있었는데 묘하게 같은 자세를 오래도록 유지했다. 복도 끝에서 중앙까지, 내무실 4~5개를 천천히 서너 번 오갈 동안 그는 고개 한 번 돌리지 않았다.


처음엔 '왜 안 자지?' 정도에 그쳤다. 한 번, 두 번 그 앞을 지날 땐 그렇게 생각했다. '집 생각 나나?' 다시 세 번째로 해당 내무실 앞을 지나칠 때 살짝 위화감이 들었다. '다른 애들 다 자는데...'


네 번째로 그 사람을 봤을 때 뭔가 이상했다. '너무 같은 자세로...' '창밖에 아무것도 없을 텐데?' 이윽고 세면실 쪽을 찍고, 다시 중앙계단 쪽을 향할 때 '얘를 안 재워도 되나?' 하는 불침번의 책임감이 발동했다.


이 때도 문제의 훈련병은 아무런 미동이 없었는데, 밤 11시가 넘어 장장 10분 동안 아무것도 없는 창밖을 바라보는 상대에게 약간의 이질감을 느낀 것 같다. 그 비현실성과 현실의 경계에서 누군가를 불러와야겠다는 생각을 비로소 하게 됐다.


나는 조심스레 맞은편 복도를 돌아다니고 있는 훈련병에게 가서 "안 자고 있는 애가 있는데 재워야 하는 거 아니냐"며 잠시만 와 보라고 했다. 나는 문제의 내무실로 가는 동안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한 명이 안 자고 있다. 계속 창밖만 보고 있다. 뭘 보는지 모르겠다"는 식의 이야기.


내무실 앞에 도착한 나는 "여기"라며 '쟤'라고 말하려고 손가락을 드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모두가 자고 있는 내무실을 볼 수 있었다. 창가 끝자리에 있는 훈련병도 곤히 잠들어있었다. 가뜩이나 짧은 머리털이 쭈뼛 섰다.


내무실을 잘못 찾았나 싶어 "잠시만"이라며 양 옆 내무실을 모두 확인했지만 앉아있는 훈련병은 어디에도 없었다. 내가 데리고 온 훈련병은 "누구 말하느냐"며 맞은편 복도로 돌아갔다. 불과 1분 사이에 공교롭게도 내가 본 훈련병이 사라졌다.


나는 이날 불침번이 끝날 때까지 해당 내무실을 곁눈질로 살폈다. 대놓고 쳐다보기엔 겪은 일이 부담스러웠다. 그렇다고 귀신으로 단정할 순 없는데 뭔가 이상했다. 설명할 순 없는데 이상한, 그런 느낌.


불침번이 끝날 때까지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심지어 뒤척이는 기척도 없이 훈련병들은 자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복도를 지나칠 때 다시 그 내무실을 살펴봤지만 헛것을 봤나 싶을 정도로 조용하기만 했다.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귀신을 봤다고 하기엔 너무나 별 탈 없이 지나갔다. 그럼에도 미묘한 우연과 설명할 수 없는 기괴함, 내가 알던 귀신에 대한 상식과의 괴리 등이 그날을 종종 떠올리게 한다.


누구에게 말하기 애매한 이 경험은 '귀신'이란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소위 말하는 귀신을 우리는 미디어가 만든 이미지로 소비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그렇게 볼 때 사람이 죽은 뒤 나타나는 이 존재가 과연 사람과 다른 이미지로 나타날까 고민해보게 됐고, 그렇지는 않을 거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다리가 없다'거나 '머리가 없다'는 설정 모두 어딘가 이유 없이 자극적이다. 애초에 이들이 사람을 놀라게 하려는 목적으로 사람 앞에 나타나는 게 아니라면 불필요한 모습 아닌가.


또 사람이었던 이들이 사람이 놀랄만한 방법으로 접근해온다는 설정부터가 상당한 악취미로 보인다. 죽으면서 이성이 휘발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왜?'라는 물음을 던졌을 때 수긍이 잘 안되기도 하고. 지금은 그저 과학적 이해가 어려운 존재를 설명하려다 보니 사후 문화에 대한 이해가 사회에 이런 식으로 뿌리내렸나 싶다.


그래서 유일한 경험과 귀신에 대한 생각을 종합해볼 때 귀신이란 것도 결국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구현된다는 설에 설득력을 더하게 됐는데, 이후 귀신을 본다고 해도 이를 식별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겼다. 그렇다면 귀신을 사람과 구별하는 게 또 어떤 의미인가 싶고...


어쨌든 살면서 귀신을 보는 사람이 그렇게 흔하지는 않다고 하니 이 또한 좋은 경험으로 받아들이는 중이다. 갑자기 생각나서 쓴 썰.


(여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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