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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승 Apr 01. 2024

계란 세 알 둘이서 나눠 먹는 아침

찜질방 표 계란, 집에서 만들기

고등학생 때 가장 친한 친구와 종종 사우나에 갔다. 


주말 아침, 다소 이른 시간 때.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에 가보면 부지런하던 친구는 늘 먼저 와 있었다. 우리가 다니던 찜질방은 옆 동네 재래시장 건너편, 거대한 상가 건물 2층에 있었다. 걸어서 이십 분 정도로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수다 떨면서 걸으면 금방이었다. 


가장 모퉁이 사물함 앞에서 자리로 가 주섬주섬 옷부터 벗는다. (이때 서로의 몸을 보지 않기로 암묵적 합의가 되어 있다) 사물함 열쇠를 발목에 끼운 후 매표소에서 받은 수건으로 몸의 앞판만 가린 채 탕으로 입장. 


이번에도 가장 구석진 자리고 가 자리를 잡는다. 집에서 마음 편하게 목욕하는 게 어떠니, 라고 말해주고 싶을 정도로 구석만 찾아다니는 두 여고생. 가볍게 초벌 목욕을 한 후 온탕에 들어간다. 버티는 시간과 밀려 나오는 때의 양이 비례할 거라 확신하면서 온몸이 벌게지도록 앉아 있는다. 


40도가 육박하는 뜨거운 탕 안에서 목만 내놓고 수다 삼매경에 빠진 아주머니들, 온몸에 소금을 바른 채 쪽잠을 할머니, 냉탕 안 참치 한 마리 나타난 거처럼 거칠게 수영하는 여자 등. 자기 나름의 방식 대로 목욕탕을 즐기는 이들과 달리 우리는 좀처럼 여유를 부리지 못하고 곧바로 때밀기 착수다. 팔부터 시작해 다리, 배 순으로. 최후는 당연히 서로의 등 밀어주기. 몸을 보이는 것은 창피해하면서 국수가락처럼 밀려 나오는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인지 우리는 기다렸다는 듯 서로에게 널따란 등을 내맡기고는 했다.  네가 키가 큰 이유는 등이 길어서라는 둥, 어깨가 처졌다는 둥, 어색한 순간을 무마할 농담을 끝도 없이 늘어놓으며 하하, 호호. 


그것도 노동이라도 때를 다 밀고 난 후에는 진이 다 빠져서 뭐라도 먹지 않으면 걸어서 집까지 갈 수조차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선택지는 많지 않다. 계란과 몇 가지 음료뿐. 바구니 한가득 담긴 맥반석 계란은 세 알에 2천 원이었다. 우리는 각자 고른 음료와 쟁반에 계란 세 알과 소금을 받아와 평상 위 앉는다. 드라이기 소음 때문에 거의 들리지 않는 티브이에 무심하게 시선을 고정한 채 야금야금, 계란을 먹는다. 각자 한 알씩 먹고 난 후 마지막 남은 한 알까지 야무지게 나누어 먹던 나와 내 친구. 


우리의 주말은 그렇게 목욕재계 후 단출한 조식과 함께 시작되고는 했다. 


그때 맛있게 먹던 그 구운 계란, 요즘은 집에서 만들어 먹는다. 참나무 훈제가 아니어도, 맥반석 없이도, 압력밥솥만으로 사우나 표 계란을 흉내 낼 수 있는 방법을 용케도 알아냈기 때문. 


먼저 냉장해 둔 계란을 실온에 둔다. 압력밥솥 안 찜기를 넣은 후 계란을 올린다. 추가 울리면 불을 약하게 줄인 후 한 시간 이상 쪄내면 완성! 


테이블 위 올려두면 허기질 때나 야식 당길 때, 아침 식사 준비가 여의치 않을 때 그렇게 요긴하지 않을 수 없다. 


친구와 사우나 안 간 지 어언 이십여 년이나 흘렀지만 나는 여전히 계란의 껍질을 깔 때마다 그때 생각이 나 혼자서 배시시 웃는다. 정서적으로 가족보다도 더 가까운 친구와 홀딱 벗고서 서로의 때를 벗겨 주면서 희희낙락하던 오전 나절의 안온함. 그것은 우리의 허기를 달래주었던 모난데 없이 말갛고 부들부들한 계란 한 알과 같이 참 정직하고도 순수한 위로였다.  


구운란 만들기

1) 실온에 둔 계란을 압력밥솥 찜기에 넣는다. (전기밥솥도 가능)
2) 1시간 이상 저온에 쩌낸다. 

*삶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계란 색이 짙어진다
*전기밥솥에 찔 때도 찜기를 이용해야 한다. 계란에 물이 닿지 않는 게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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