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동만두
최초로 냉동만두를 먹어 본 때를 기억한다.
열두 살 즈음의 어느 새벽.
엄마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눈을 떠보니 엄마가 사늘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 곁으로 커다란 가방이 보였다.
나는 잠이 덜 깬 상태였지만 올 것이 왔구나, 하고 알아차릴 수 있었다.
동생은 벌써 일어나 외투를 입은 채였다.
우리는 집 밖으로 나갔다.
아빠가 며칠 째 집에 오지 않았던 어느 겨울날이었다.
도착한 곳은 서울역.
아직 구 서울역사에 기차가 다니던 때였다.
엄마는 기차표를 산 후 우리의 끼니를 때우려 역 앞 어느 가게로 들어갔다.
지금으로 치자면 편의점 비슷한 곳이었는데 상품이 많지는 않았고 요깃거리 몇 가지 파는 게 다였다.
내부는 어둡고 비좁은데다 앉을만한 의자 하나 없었다.
그나마 창가 쪽, 바 형태의 테이블이 있기는 있었다.
동생과 나는 거기에 등을 기댄 채 엄마가 음식을 가져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는 전자레인지에다 무언가 넣어 데운 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였다.
당시 나는 가장 친한 애 부모가 학교 앞에서 만두 가게를 운영했기 때문에 만두를 빚는 과정을 얼추 알고 있었다.
그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걔네 엄마는 늘 만두소를 버무리고 있었고 아빠는 반죽을 치대거나 커다란 찜통의 뚜껑을 수시로 열었다 닫았다, 반복하고 있었으니까.
그분들은 인사를 하면 받아 줄 틈도 없이 바빴다.
그런데 이렇게 손쉽게 만두를 얻을 수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먹음직스러운 만두 한 알을 집어 입 안에 넣었다.
사실 생김새도 친구네 만두와 별 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맛도 비슷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왁 뱉고 싶을 정도로 맛 없었다.
만두소가 아무런 향 없이 짜기만 했고, 덜 녹아 딱딱한 부분이 아삭아삭 씹히기까지 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 맛없는 만두, 그래도 다 먹었던 거 같다.
배가 고프기도 했지만 기차 시간이 올 때까지 그 안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으니.
창 밖은 언제까지고 낮이 오지 않을 거처럼 푸르스름했다.
또한 광장 안 노숙인의 꿈틀거림과 그 사이를 바삐 오가는 사람들, 목줄을 하지 않은 비쩍 마른 개들이 어기적 어기적 배회하는 모습을 무심히 바라보던 게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생각이 난다.
그런데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엄마는 하염없이 말이 없었다.
기차를 탄 후에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몇 시간 후 우리는 낯익은 역에 도착해 있었다.
아빠의 형제들이 사는 울산역이었다.
그리고 역사 안에는 둘째 삼촌이 활짝 웃으며 서 있었다.
나는 잠시 어리둥절했다가 엄마와 삼촌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는 어느 정도 상황 파악이 되었다.
엄마는 답답한 심정을 하소연할 사람으로 자신을 다독여 돌려 세워줄, 끝끝내 아빠 편일 수 밖에 없는 삼촌을 택한 거였다.
나는 우리가 아주 먼데로 도망이라도 가는 줄 알았다.
적어도 며칠, 아니 단 하룻밤만이라도 엄마가 아빠를 기다리지 않는 밤을 보내보기를, 그리고 아빠도 이 같은 상황에 이르게 된 것에 대해서 곰곰해지기를 바랐다.
그런데 겨우 한 번만 더 형을 좀 이해해 달라는 삼촌의 설득을 듣고자 이른 새벽부터 이 먼데까지 찾아왔다니, 허무해졌다.
삼촌은 엄마를 위로해 준 후 떠났다.
엄마는 역 밖으로 나가보지도 않은 채 바로 서울행 기차표를 끊었다.
나는 엄마가 끙끙 대며 들고 온, 욱여넣은 옷가지 때문에 금방이라도 터질 거 같은 그 커다란 가방을 발로 뻥, 차버리고 싶었다.
돌아오는 기차 안, 속이 매스꺼웠다.
아무래도 덜 익은 만두를 먹고 체한 것 같았다.
나는 와르르, 토했다.
냉동만두에 대한 기억 때문인 것인지 나는 여전히 냉동만두라는 음식에 정이 안 간다.
내 손으로 사다 놓는 경우가 전무하다시피 할 정도로.
그러나 가족 중 누군가 사다 놓으면 한 번씩 먹기도 한다.
솔직히 말하면 먹고 싶어서 먹는 게 아니다.
냉동실에 세월아 네월아 보관되어 있는 꼴이 보기가 싫어 해치워버리는 것일 뿐.
그런데 이 냉동만두, 생각보다 알맞게 찌는 게 쉽지만 않다.
너무 익히면 그릇으로 옮길 때 꼭 찢어지고, 좀 모자란 듯 불에서 내리면 덜 익는 경우가 왕왕 있다.
내 경우 다시 만두를 찜기에 넣는 게 번거로워 차라리 푹 익히는 쪽을 택하는 편이다.
모처럼 만두를 쪘다.
역시나 오버쿡.
만두가 찢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그릇에 옮겨 담는데 불현듯 쪼개기 전에는 그 속이 어떤지 알 수 없는, 이 뽀얗고 새하얀 만두야말로 참 가족이라는 것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커다란 만두를 한 입에 쏙 넣어 오물오물 먹었다.
● 냉동만두 맛있게 먹는 법
라조장 1T, 식초 1T, 간장 2T을 왕창 뿌려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