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트밀죽
우리 집에는 할머니 상이 있다.
왜 정 가운데 복자가 쓰여 있고, 형형색색의 모란이 그려진, 다리 접을 때 탕! 소리가 나는 그 알루미늄 상 말이다.
어릴 적 여름 방학 맞아 강원도 할머니 댁에 가면 툇마루 위 늘 이 상이 펼쳐져 있었다.
상 위로 끊임없이 먹을 게 올라왔다.
배춧잎 한 장 누워 있는 메밀전 (식은 게 더 맛났다)이나 삶은 감자와 옥수수, 올챙이국수 등.
할머니의 음식은 늘 소박했지만 상이 작아서였을까.
늘 모자람 없이 푸짐해 보였다.
그중 올챙이국수는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고, 또 그 미끄덩 거리는 식감이 재밌어 몇 그릇이나 받아먹고는 했다.
집 앞은 온통 옥수수 밭이었는데 줄기가 내 키보다 훨씬 높았다.
그러니 내게는 옥수수 밭이 아니라 옥수수 숲이나 다름없었다.
비좁은 길 따라 걸으면 족제비인지 두더지인지 정체 모를 생명체가 사사삭, 복숭아뼈를 스치기도 하고, 옥수수 잎사귀들이 살갗에 닿는 느낌도 껄끄러워서 나는 늘 서둘러 그 밭을 지나치고는 했다.
길 끝에는 커다란 무덤이 한 기 있었다.
동생과 나는 거기서 쉴 새 없이 메뚜기를 잡으며 놀았다.
메뚜기 녀석은 꼭 나를 놀리듯 무덤 위에서 폴짝거렸다.
할머니가 절대로 무덤에 올라가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기 때문에 무덤 위 메뚜기는 그저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기어이 못 참고 한 번씩 무덤 위로 기어 올라가 메뚜기를 잡고는 했다.
손을 오목하게 만들어 폴짝폴짝 뛰는 메뚜기를 턱, 잡았을 때의 짜릿함!
그러나 죽은 자의 뒤통수를 턱! 친 거 같은 기분에 사둘러 무덤에 내려오고도 찜찜함은 계속 되었다.
잡은 메뚜기를 과자 상자에 모아 집으로 가져가면 할머니는 그것을 마른 팬에다 소금 간 살짝 해 볶아서 또 그 은색 상 위에다 올려주었다.
징그럽다고 안 먹는 동생과 달리 나는 잘도 씹어 먹었다.
그게 의외로 참 맛이 있었다.
오후 네 시 즈음돼서 또 쌀쌀해지면 우리는 뒷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놓인 작은 아궁이 앞으로 가 놀았다.
언니인 내가 늘 불을 피웠고, 동생은 덜 여문 밤을 주워다 불 안에 던졌다.
나뭇가지나 잎사귀 등을 불쏘시개로 쓰는 거는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인 것인지 도통 불이 붙지 않았다.
뭐니 뭐니 해도 책이 잘 탔다.
출가한 삼촌 방으로 가 낡아 보이는 책 아무거나 꺼내와 한 장 한 장 찢어 넣으면 화르르, 불꽃이 시원하게 일었다.
많이도 태워먹은 거 같은데 기억나는 거는 헤르만 헤세의 시집뿐이다.
나는 그것을 북, 찢어 넣기 전 대강 훑어보았다.
그러면 죄책감이 덜했기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내가 책을 불에 넣어도 혼내지 않았다.
어차피 책들은 쓸모 없어진 지 오래되었으니까.
아궁이 안 불은 커지지도 작아지지도 않고서 은은하게 주변을 밝혔다.
다만, 밤은 수시로 살피지 않으면 금세 까맣게 타버려 도무지 먹을 게 못 되었다.
우리는 불장난이 지겨워질 때면 한가해보이는 어른을 불러 불을 껐다.
그런 후 남은 생밤을 몽땅 할머니에게 가지고 갔다.
그러면 할머니는 먹을만한 것만을 골라내 작은 냄비에 삶았다.
뜨끈하게 익은 밤이 또 그 상 위에 올랐다.
아직 맛이 덜 든 밤이라 단맛이 없었다.
그러나 불장난을 하면 그렇게 허기가 졌고, 우리는 계속 밤을 앙, 깨물어 반으로 쪼개 먹었다.
밤은 그렇게 먹어야 맛이 있는데 할머니는 옆에 앉아 계속 칼로 껍질을 벗겨내 통밤을 건네 주었다.
고작 1년에 두 어번 정도 만나는 할머니였지만, 할머니 하면 단박에 어떤 냄새가 떠오르는데 사실 도시에서 살 적에는 잘 몰랐다.
그 냄새가 말린 콩이나 잡곡, 지푸라기 등에서 나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을.
먹은 것들의 냄새가 몸 밖으로 흘러나올 정도로 늙은 이의 몸은 점점 투명해지는 걸까.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 같은 것일지.
그렇게 생각하자니 어딘가 섬뜩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할머니의 체취라는 건 참 묘하게 좋은 것이었다.
할머니 냄새가 나는 이불 같은 게 있다면 사고 싶을 정도로.
돌돌 말아 그 안에 있으면 영원한 우주에 와락, 안겨 있는 기분이 들 것만 같다.
그렇게 그 작은 상과 할머니, 그리고 그녀의 음식에 대한 기억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강원도의 흰 빛과 깨끗한 공기, 신선한 바람과 함께 어우러져서 마음 속 깊이 선하게 남아 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마땅히 쓸데도 없는데 재래시장 구경 갔다가 그 상을 발견하고는 반가웅 마음에 덜컥, 사버린 이유가.
몇 년째 그 상은 창고 안 신세를 면하지 못하다 최근 들어 쓸모를 발견하게 되었다.
캠핑장에 가지고 가니 그렇게 요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버너를 척 올리기 좋고, 땅이 젖어 있을 때 짐 올려두기도 좋았다.
무엇보다도 아침에, 간밤에 설거지한 그릇이 잔뜩 쌓여 있은 테이블, 한쪽에 밀어두고서 이 상에다 아침 식사를 차리니 편했다.
오트밀에다 뜨거운 물 부어 만든 죽과 바나나, 그리고 커피.
이토록 소박한 음식인데도 역시, 할머니 상 위 놓여 있으니 하나도 초라해 보이지 않았다.
이걸로 충분하다는 느낌.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져 식사를 차려 놓은 상을 들어 올려 텐트 안으로 옮기려는데 사람의 한 끼 식사라는 게 이렇게 제 손으로 가벼이 들 수 있는 정도의 무게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무게가 곧 내 몸이 감당해야 할 음식물의 무게와 다를 바 없으니.
할머니는 별 다른 병 없이 건강하게 살다가 몇 해 년 전에 돌아가셨다.
일평생 가까운 먹거리로 단순히 조리해 적게 먹던 습관 때문일 것.
할머니처럼 바르게 먹으며 살아가야지.
알미늄 상을 쓰고 난 후 반질반질하게 닦아놓을 때마다 그런 다짐을 히게 된다.
● 오트밀포리지 간단 레시피
그릇에 오트밀과 소금 한 꼬집 넣고 뜨거운 물을 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