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 오픈 샌드위치와 병조림]
아니나 다를까, 올해 장마가 오기 전 산 연둣빛 복숭아는 생김처럼 풋내가 좀 강했고, 장마 막바지에 산 복숭아는 멍도 많은 데다가 좀 묽었다. 그나마 안전한 선택은 살짝 덜 익은 것을 사 와서 후숙 하는 거였다. 그러나 이 정도면 다 익었을 테지, 싶을 때는 늘 일렀고, 좀 더 두고 보고자 내버려 두면 또 어느 순간 물러 터져 먹을 시기를 놓치기 일쑤였다. 아무튼 복숭아 고르는 것도, 먹기 좋은 때를 알아차리는 것도 이래 저래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여름철, 그 어떤 과일보다도 복숭아를 유독 많이 사 먹게 된다. 어쩐지 오기를 부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늘 썩 마음에 들게끔 복숭아를 먹어보지 못 한 채 여름은 다 가버린다. 올여름도 마찬가지. 복숭아를 세 박스나 사다 먹고도 역시나 무언가 부족해 마트에서 또 두 박스 사 갖고 왔다. (인실직고하자면 1+1이었다) 집으로 오자마자 복숭아 하나를 씻어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런데 웬걸, 백도가 아무 맛이 없었다. 다음 박스는 황도였는데 이쪽은 너무 신 데다 씁쓸한 맛이 좀 났다. 어쩐지 너무 싸다 했어. 후회해도 늦었다. 아아, 처치 곤란한 복숭아가 무려 두 박스나 생긴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이 많은 복숭아들을 기사회생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가장 만만한 건 역시나 오픈샌드위치. 아무리 밋밋한 과일이라도 고소한 통밀빵과 짭쪼롬한 치즈 위에서라면 고유의 단맛을 발휘하는 법. 이렇게 먹으니 복숭아의 은은한 단맛이 느껴져 그것대로 또 좋았다. 그러나 오픈샌드위치도 하루 이틀. 남은 복숭아는 열 개가 넘었다.
그러다 생각해낸 게 복숭아 통조림. 아니, 병조림! 복숭아와 설탕을 넣은 후 물 붓고 조리기만 하면 되니까 간단. 병에다 넣고 남은 뜨거운 복숭아, 한 조각을 입에 넣어 보니 사르르 녹았다. 병조림해놓지 않았더라면, 맛없는 복숭아를 우적우적 먹으며 올여름, 복숭아에 대한 기억을 안 좋게 마무리 지을 뻔했다.
아직 미련이 남은 장마가 미적미적 비를 뿌리는 흐린 여름날, 요거트 안 퐁당 넣어 먹으니 눅눅한 마음에 쨍하게 볕 드는 거처럼 싱그러움이 번졌다. 뿐만 아니라 복숭아 향이 흠뻑 밴 조림물마저도 쓸모가 있었다. 탄산수에 넣으니 데미소다 복숭아 맛이 되었고, 진하게 내린 홍자와 섞으니 과연 립톤과 똑같은 맛. 얼려서 아이스크림으로 만들어 먹기도 했다. 그야말로 무궁무진해 즐겁게 즐겼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두 병을 해치우고 나니 어쩐지 헛헛한 느낌이 들었다. 복숭아 말고 복숭아 향만을 열심히 누린 거 같달까. 여름이 가기 전, 마지막으로 복숭아 한 상자 더 사볼까, 싶어 지는데 또 꽝이려나.
아무래도 가장 맛있는 복숭아는 역시 과수원지기의 몫일 거다. 뜨거운 볕과 긴 긴 장마를 악착 같이 버텨낸, 가지 끝, 몇 알 안 되는 그 귀한 복숭아 말이다. 똑, 따서 한 입 크게 베어 물어보고 싶다. 달다, 라는 단순한 표현으로는 무언가 한참 부족한, 어떤 농후한 맛이 날 것만 같은데. 사는 동안 맛볼 수나 있을까. 타오르는 볕과 열기, 천둥과 번개와 펑펑 우는 거 같은 장맛비, 차오른 습기와 끝 모르는 푸르름이 통째로 베어 그 여름의 황홀한 덩어리를.
복숭아 병조림
① 복숭아를 먹기 좋게 잘라 냄비에 넣는다.
② 복숭아가 잠길 듯 말 듯하게 물을 붓는다.
③ 설탕을 넣는다. (복숭아 1개당 1T)
④ 복숭아가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팔팔 끓인다.
⑤ 병에 담아 저장한다.
tip
❶ 계핏가루를 넣으면 더 향긋해진다.
❷ 딱딱한 복숭아가 아니거나 자두, 살구처럼 잘 무르는 과일일 경우 과일을 먼저 잘라 병에 넣은 후 설탕 끓인 물을 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