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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라 Jul 30. 2024

비스킷을 우유에 말아먹는 게 아니라

[시리얼을 넣은 스무디 한 잔] 

2018년도 여름. 

호주에 일주일 남짓 여행을 다녀왔다. 


8월 초라서 여기는 한 여름이었는데 거기는 겨울의 막바지였다. 그러나 그곳의 겨울은 내가 아는 겨울과 달랐다. 바람은 찼지만 햇볕은 뜨거운, 태어나 처음 겪어 본 계절이었다. 게다가 한낮의 기온은 20도 안팎으로, 사람들 다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제법 무장을 하고 온 나는 공항 밖으로 나가자마자 외투부터 벗어야 했다. 택시에 타 기사님께 숙소 주소를 일러주었다. 그는 의아해하며 여기가 맞느냐, 재차 물었다. 그럴만했다. 그곳은 관광지와는 거리가 좀 멀었으니까. 당시 우리는 서울 한복판에서 살았던 터라 여행만큼은 한적한 데서 보내고 싶었다. 구글 맵을 열고서 딱 세 가지만 고려해 숙소를 결정했다. 


1) 걸어서 갈 수 있을 정도로 바다가 가까울 것. (단 명소로 이름난 해변은 제외)

2) 어린이집, 초등학교 등 가까워 아이들 친화적인 동네일 것 (보통 이런 데가 공원 내 놀이터가 많고, 마트가 가까운 것은 물론, 아이들이랑 함께 갈만한 식당이 많다)

3)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편안한 식당이 서너 군데 정도는 있을 것.


시드니 어디나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으니 이 세 가지 정도만 충족된다면 일주일쯤이야 거뜬히 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결정한 숙소는 멀리 브론테 비치가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언덕 위 조용한 마을의 평범한 아파트였다. (에어비앤비로 예약했다)


아침에 일어나 카디건 하나 걸친 채 브런치 카페로 갔다. 커피와 계란이 들어간 음식 등으로 간단히 아침을 먹은 후 바다로. 바닷물은 제법 찼지만 해가 뜨거워, 차라리 한여름보다 더 오래 해변을 즐길 수 있었다. 점심도 근처 레스토랑에 가거가 모래사장 위에서 버거를 먹었다. 바람이 많이 불 때면 입 안에서 모래가 아작아작 씹히긴 했으나 그 마저도 즐겁기만 했다. 저녁은 근처의 소형 마트로 가 장을 봐왔다. 과일과 샐러드, 등의. 그런 식으로 이튿날 까지는 뭐, 좋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헛배가 부른 거처럼 속이 더부룩해 찌뿌둥한 기분이 지속되었다. 그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새하얀 쌀밥과 국 한 그릇의 식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만 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그러나 주변에 아시안 식당은 한 군데도 없었다. 그나마 가까운 데가 일식당이었는데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정도 걸렸다. 이제 막 돌 지난 아기랑 네 살 배기를 데리고 쌀밥을 먹으러 그 먼 길을 갔다 오는 게 생각만으로 벅차기도 했고, 나 또한 그 정도로 간절하지 않다고, 스스로 주문을 걸며 일단은 남은 여행을 즐기는데만 몰두하기로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식사가 점점 더 힘들어졌다. 반대로 남편은, 그 어느 때보다 장 건강이 좋아졌다며 신이 나 있었다. 남편은 맵고 짠 한식이 잘 맞고, 기름진 양식이 잘 맞는 체질이었다. 첫째도 음식이 입에 잘 맞는지 잘만 먹었다. (둘째는 시판 이유식을 먹었다) 아아, 식사가 힘든 사람은 오로지 나뿐인데, 번화가가 아닌, 지역민들이 사는 동네로 숙소를 잡은 것 또한 내가 한 결정인지라 불만을 토로하기도 뭐 했다. 적어도 음식의 선택권이 좀 넓었다면은 덜 했을 것이다. 아무튼 어디를 가나 기본이 빵과 고기, 날채소였고, 나는 지겨울 대로 지겨워졌다. 


5일째 되던 날. 남편이 (지긋지긋한) 샌드위치를 사 오겠다며 식당가로 내려간 사이, 나는 아이 둘 데리고 바닷가에 앉아 있었다. 한참 동안 해변을 달리던 두 여성이 벤치에 앉더니 무언가 싸갖고 온 음식을 꺼내는 게 보였다. 한 명은 컵 샐러드였고, 또 다른 사람은 반투명 플라스틱 텀블러 안, 비스킷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우유인지, 식물성유인지 아무튼 희멀건한 액체를 텀블러 안에다 가득 붓더니 비스킷을 으깨어 수저로 떠먹는 거였다. 와, 우유에다가 비스킷을 말아먹다니 특이한 취향,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가만 둘러보니 해변에 누워 일광욕하는 사람 가운데 그 비스킷 담은 텀블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도대체 저 비스킷, 정체는 무얼까? 



그날 오후. 우리는 어김없이 마트를 찾았고, 나는 그 비스킷의 정체를 아주 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 그 비스킷이 커다랗게 그려진 박스가 마트의 한가운데, 그것도 가장 큰 매대 위 척척 쌓여 있었으니까. 또한 그것은 비스킷이 아녔다. 비스킷 형태로 만들어진 시리얼이었다. 나는 그 맛이 궁금해 500g짜리 한 팩을 사 왔다. 그것은 보통 시리얼이랑 좀 달랐다. 우유와 만나면 눅눅해지는 게 아니라 죽처럼 부드러워져 편안하게 먹을 수 있었다. 거기다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요거트에 넣어 과일을 얹어 먹어도 맛있었다. 어쨌든 나는 그 시리얼 덕분에 빵과 고기, 날채소의 굴레에서 벗어나남은 일정 동안 속 편하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 마지막 날에는 오페라 하우스를 구경하러 갔다가 기어이 일식당으로 가 밥과 된장국을 영접했고, 거의 울뻔했다. 동시에 음식이라는 게, 아니 음식에 대한 몸의 기억이라는 게 무시무시한 거구나, 실감하기도 했다. 


그 해 여름, 내가 고른 호주 여행의 기념품은 호주 대표 통밀 시리얼(가장 큰 사이즈로 무려 세 박스나)이었다. 그로부터 몇 해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아직도 이 시리얼을 먹는다. 사이, 수입사도 생겨 직구를 하지 않아도 편하게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시리얼 먹을 때마다 호주 동부의 새파란 바다가 생각이 난다. 말 그대로 새파란. 또한, 거친 바람 때문에 해변에 앉아 뭐라도 먹으면 입 안에 서걱서걱 씹히던 모래의 은은한 짠맛도  떠오르는데, 그러고 보니 이 통밀 시리얼, 모래의 맛과 은근히 비슷한 거 같기도 하다. 



시리얼 스무디 간단 레시피

바나나 한 개, 블루베리 한 줌과 바나나 한 개, 통밀 시리얼 1조각(혹은 퀵오트 50g)을 우유나 식물성유(500ml)에 더 해 믹서기로 간다.
우유를 덜 넣고 각종 토핑을 얹어 스무디볼로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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