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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림 Jan 02. 2019

이천 십구년 새로운 시작

일상의 기록






어제 뜬 해 그리고 오늘 뜨는 해 다를 게 없는 아침 해인데, 2019 라는 숫자가 등장하는 것 만으로도 그날의 아침 해는 큰 의미를 갖는다.


오늘이 그랬다. 19년이란 숫자가 등장했고, 그 숫자가 등장하는 오늘 티비 속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해 돋이를 보러 모인 장면이 등장했다. 그리고 19년 앞에서 너도 나도 소원을 비는 사람들

'우리 아들 이번에 좋은 대학 꼭 갔으면 좋겠어요.'

'올해는 부모님이 건강하셨으면 좋겠어요.'



아침에 어머니는 일찍 부터 떡국을 끓이셨다. 오랜만에 가족들이 한 식탁에 모였다. 그곳에 앉은 난 이제서야 이렇게 큰 식탁이 필요한 이유를 알았다. 삼촌은 옆에서 '한 그릇만 먹어 두 그릇 먹으면 두 살먹는 거니까.' 라며 매 년하는 재미없는 농담을 했고, 난 그렇게 올해 첫 떡 국을 먹었다.


아침 밥을 먹고나자 어머니가 말했다. '자, 이제 새해 맞이 대청소를 해볼까?' 어머니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방 안에서 청소기를 가지고 나오셨고,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 어머니를 따라 청소를 시작했다. 평소에 전혀 청소를 도와주시지 않던 아버지도 새해맞이 대청소이기에 조금은 거들어 주셨다. 그 와중에 집 안엔 고소한 떡국향기가 맴돌았다.


'올해의 목표'

새로 산 다이어리 첫 장에 굵을 글씨로 올해목표를 적기 시작했다. 글을 적는 펜 끝엔 힘이 잔뜩 들어갔고, 꼭 이루고 말겠다는 생각으로 목표를 한 가지 씩 적기 시작했다. '포기했던 영어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돈을 많이 벌고, 여행 많이 다니기.' 목표를 적고 읽어보니 작년 목표와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생각에 하나를 더 추가했다. '다이어트 하기.'

'카톡!'

한참 목표를 적던 중 카톡알림이 울렸다. 알림을 확인 해보니, 그다지 친하지 않은 대학후배의 새해인사 톡이었다.

 '2019년에 좋은 일만 가득하고, 하는 일 잘 되길 바래여~ 새해 복 마니 받아요 선배!'

별로 친하지 않은 후배긴 하지만, 이렇게 새해인사를 받으니 반갑기도 하고, 왠지 고마운 마음에 '너도 하는 일 잘 되고 새해 복 많이 받아! (이모티콘) ' 라고 친한 척 답을 해 주었다. 그렇게 우린 2019년에 처음이자 마지막 톡을 주고 받았다.

그 전 대화내용 올려 보니 2018년 새해 인사 글이었다. 올해 다시 연락 할 일은 없을 것 같다. 대학후배의 톡을 받고 나자 그제서야 새해 인사를 돌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폰에 저장 된 연락처 목록을 쭉 훑기 시작했다.

'회사 사장님, 부장님, 대리님, 이 교수님, 거래처 사장님...' 그리고 네이버에서 검색한 적당한 새해인사 문구를 뽑아 복사 한 후 한 사람씩 톡을 보냈다. '이렇게 귀찮은 일을 매년 해야 한다니.' 속으로 불만이 가득 쌓여 궁시렁 거리며 복사 붙여넣기 신공을 시전했고 그렇게 친척들에게 까지 새해 톡을 보내자 드디어 끝이 났다. 들고 있던 폰을 침대 위로 던졌고, 침대 위에서는 한 참 동안 '카톡, 카톡, 카톡...' 이 울려 댔다.

어머니는 떡 국에 넣을 만두가 떨어졌다며 마트에 간다고 했다.


'아 맞다 오늘 마트 쉬는데!' 집을 나서려는 어머니에게 오늘 마트가 휴무인 게 생각이 나 다급하게 외쳤다. 그러자 어머니는 그럼 집에서 조금 떨어진 시장에 다녀 온다고 했다. 버스를 타기에는 가깝지만, 걸어 가기에는 먼 곳이었다.

'오늘 엄청 춥다는 데...' 결국, 걱정되는 마음에 난 어머니를 따라 장을 보러 나섰다. 오랜 만에 단 둘이 하는 외출이었다. 그래서 인지 어머니는 그동안 참아 두셨던 잔소리를 마음 껏 하셨다. 그 잔소리도 오늘은 왠지 반가운 느낌이었다. 아마 새해 처음 듣는 잔소리라서 그랬나 보다.

시장도 정말 오랜 만이었다. 시장 입구 부터 보이는 맛있는 음식들에 난 어린 애처럼 어머니를 졸랐다.

'이거 한번 먹어보자 엄마.'  기름에 노릇노릇 막 튀겨진 핫바 하나를 사서 입에 물고, 시장을 돌기 시작했다. 사기로 했던 만두는 마트보다 훨씬 싸게 샀고, 덤으로 찐빵까지 몇 개 얻기도 했다. 난 왜 그 동안 시장 한 번 와 보지 못 했을 까.' 내게 찐빵을 몇 개 쥐어 주시는 아주머니를 보며 조금은 죄송스러웠다.

시장 길에는 촌스럽지만 싸고, 실용성 좋은 옷들이 널부러져 있었고, 그 옷을 보니 그제서야 어머니의 오래 된 점퍼가 눈에 들어왔다.


 '엄마, 여기 가보자.'

사양하는 어머니와 함께 근처 산악용 아웃도어 매장을 들어갔다. 시장에서 보기 드문, 조금 비싼 가격의 고급점퍼들이 걸려 있었다.

가게 사장님은 이 옷, 저 옷을 가져와 어머니에게 입어보라 권했고, 곤란 한 표정의 어머니는 나를 쳐다 보며 이런 거 필요 없다는 말만 하셨다.

'엄마, 오늘은 새해니깐 하나 사자. 2019년 새해니깐!' 그런 내 말에 어머니는 그제서야 못 이기시는 척 점퍼를 집어 드셨고, 난 이때다 싶어 가게 사장님께 이걸로 계산해 달라고 부탁했다. 장을 보고 집에 돌아 갈 땐,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내 손에는 만두와 찐빵 그리고 어머니 손에는 커다란 쇼핑백이 들려있었다.

비록 그 시작은 만두였지만, 양 손 가득 점퍼를 들고 계신 어머니의 미소는 빛이 났다.

 오늘이 2019년 1월 1일이라 볼 수 있었던 어머니의 미소였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일상이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19라는 숫자가 없었으면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었다.


그렇게 나의 2019년이 시작됬다.
잘 부탁한다 십구년아.



by 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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