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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투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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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림 Sep 03. 2021

[투병일기] 땅굴에서 살아남기




몇 초간 숨을 쉬지 않았다. 몸이 갑갑하고 답답하고 더 불안해진 이유가 숨을 제대로 쉬지 않았기 때문이란 것을 알았다. 불안한 생각에 잠기면 깊은 숨을 쉬지 못한다. 입으로 뱉는 얕은 숨만 몇 분간 이어질 뿐이다. 뒤 늦게 그 사실을 알고 나면 의식적으로 숨을 몰아 내쉰다. 배를 부풀리고 숨을 오랫동안 들이 마시고 크게 후 하고 내 뱉는다. 갑자기 큰 숨이 몸 속에 들어왔기 때문일까 그렇게 숨을 몰아 쉴 때면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그리고 머지않아 초조함에 휩싸인다. 


불안해지면 제대로 숨을 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조금 긴장이 될 때면 먼저 호흡을 가다듬고 큰 한숨을 내쉬려 노력한다. 심호흡은 불안과 긴장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해서 따라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별 소용이 없었다. 심호흡으로 긴장을 달래도 떨리는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호흡이 멈춘다. 숨이 가빠 온다. 목소리가 떨리고 그 소리는 곧 울먹거리는 듯한 같은 형태로 바뀐다. 팔다리의 떨림이 느껴지고 금세 땀 범벅이 된다. 불안 속에서 여전히 속수무책이다. 


불안이 나를 지배했던 기억은 트라우마로 남는다. 타인과 대화를 할 때, 발표에 나설 때,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내 이야기를 할 때, 주로 사회적 상황에서 큰 불안을 느끼는 나는 이런 상황을 직면할 때 마다 트라우마를 함께 얻는다. 잘 모르는 타인과 대화를 하다 숨쉬는 것을 까먹어 할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거나, 발표를 망치거나, 서툰 인간관계로 사회생활에 실패하거나. 하나하나의 트라우마가 남아 어김없이 같은 순간을 맞이할 때면 숨어버렸다.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어려워지고 사람들을 일부러 피하고, 대화하는 순간을 모면하는 내 모습을 보고 괜히 억울 해져 고치고자 마음먹은 적도 있었다. 그러면 좀 남들처럼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남들처럼 아무렇지 않아 보이고 싶어서. 그 남들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그저 따라하고 싶었다. 하지만 불안장애라는 병은 약을 써도 그리 쉽게 치료되지 않았다. 나는 불안하지 않다. 지금은 긴장되는 상황이 아니다 라고 생각을 바꾸려 노력도 했지만 약을 쓰는 것보다 더 효과가 없었다. 그래서 여전히 불안한 상황이 찾아올까 불안해하며 지내고 있고, 그런 상황에 마주할 것 같을 땐 도망치고 있다. 


대학원을 휴학한 것도 마찬가지다. 대학원 생활은 낯선 환경, 낯선 사람, 낯선 대화의 연속이다. 그 상황에서 살아 남기가 나로서는 죽을 만큼 힘들었다. 틈만 나면 과호흡이 오고, 수업이 끝나면 울고 또 울었다. 그저 불안하다는 이유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게 힘들다는 이유로 낯선 환경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 것을 알면서도 그 순간을 버티는 게 어찌나 괴로웠던지 결국 나는 1학기를 다니고 휴학을 했다. 그런데 그 휴학이라는 결정이 끝내 스스로 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실패한 낙오자가 된 것 같은 기분에 또 다시 불안해졌다. 내게 휴학은 쉼이 아니라 땅굴과 같은 것이었다. 땅굴로 숨어버리듯 그렇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도망쳐 숨어 버리는 행위와 같았다. 그래서 떳떳하게 생활할 수 없고 사회생활과 인간관계는 여전히 어렵다. 해결과 치료가 아니라 도망친 것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글을 쓰면서 또 하나 느낀다. 땅굴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땅굴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을 체득해 살기위해 병과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땅굴에 숨어 남들이 모르게 병과 싸우고 있다. 원하는 글을 쓰고 원하는 책을 읽고 불안한 상황을 피하면서 그렇게 남몰래 투병 중이다. 






불안장애와 만성 조울증을 갖고 투병하고 있습니다.

가끔의 감정과 치료과정을 적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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