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손이 그리운 당신에게

하얀 눈이 되어 내리는 날

by 림미

할머니의 사랑스러운 손녀 영서에게.


영서야. 이름만 불러도 보고 싶은 예쁜 내 강아지. 잘 지냈어? 영서가 잘 지낸다면 할머니도 잘 지낸단다. 겨울인데 바람이 많이 따뜻해졌지? 봄이 슬슬 오려나 봐. 가을이 깊어갈 때 할머니에게 편지를 썼더라. 시간이 흘러 겨울을 보내고 봄을 기다리며 답장을 쓰게 됐네. 할머니 편지 많이 기다렸을 텐데. 답장이 많이 늦어져서 미안해. 도착하지 않은 편지를 기다리며 하루에도 여러 번 우편함을 열어봤을 영서 모습이 그려지네. 어떤 얘기를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 보니 시간이 이렇게 가버린 줄 몰랐어.


할머니는 영서 편지를 받고 얼마나 기쁘던지 하루에도 몇 번씩 읽었단다. 연필로 꾹꾹 눌러쓴 편지를 보니 영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더라고. 영서 편지를 여기에 있는 할머니 친구들과 할아버지한테도 자랑했어. 다들 어쩜 이렇게 또박또박 글씨를 잘 쓰냐고, 그림도 정말 잘 그린다고 어찌나 칭찬들을 하던지 할머니 어깨가 으쓱했지. 지금 당장 영서하네 가서 통통통통 엉덩이 두드려주며 안아주고 싶었어.


우리 영서는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에게 웃음을 주는 아이였단다.

돌도 되지 않을 때 엉금엉금 기어 다니며 집안 이곳저곳을 다닐 때도 할머니가 영서네 집 현관에 들어서면 방긋방긋 웃으며 기어 왔단다. 기어 오는 속도가 어찌나 빠르던지 아지고 그 모습이 눈에 선하구나. 할머니 집에 놀다가 돌아갈 때 집에 가기 싫다고 엉엉 우는 소리도 얼마나 우렁차던지. 그때 모두들 달래느라 애썼지만 할머니는 그 울음소리마저도 사랑스러워 듣기 좋았어. 할머니가 해주는 음식을 정말 맛있게 먹던 모습, 종알종알 얘기하면서 걸을 때에도 할머니 손을 꼭 잡고 있던 작은 손이 기억나. 할머니는 영서를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져. 달달한 알사탕 입 안에 넣은 기분이란다. 영서야 넌 그런 아이야. 다른 사람 기억 속에서 웃음을 주는 아이.


할머니가 여기 와서 그림책 한 권 읽었어. 크리스티앙 볼츠 작가의 '나비엄마의 손길'이라는 그림책인데, 한국에도 있다고 하니 기회 되면 꼭 읽어봐. 이 책 속에서 아이와 아빠가 정원을 가꾸고 있어. 엄마 없이 둘만 하는 첫 정원일 같더라고. 땅을 파고 꽃씨를 심으면서 아이는 아빠에게 엄마는 어디로 간 거냐고 물어봐. 땅 속에 있는 건지, 하늘에 있는 건지 물어보지. 아빠는 아이에게 이렇게 얘기해 줘.


"엄마는 그렇게 먼 곳에 있지 않아!

엄마는 이 꽃 밭에 있을 거야."


영서야. 책 속 아빠가 말한 것처럼 할머니도 먼 곳에 있지 않아. 언제나처럼 곁에 있을 거야. 예전의 할머니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있을 뿐이야. 어떤 날은 옆을 날아가는 나비일 수도 있고, 또 어떤 날은 어깨로 떨어지는 낙엽일 수 있고, 가끔은 하얀 눈이 되어 내리기도 할 거야. 여러 모습으로 너의 옆에서 조금씩 자라는 모습을 지켜볼 거란다. 그 모습을 보며 할머니는 언제나처럼 흐뭇한 미소를 짓겠지.


영서야. 할머니를 기억하고 그리워해줘서 정말 고마워. 할머니와 나누던 얘기들, 함께 먹었던 음식들, 안았을 때 맡았던 냄새들을 기억해 줘. 할머니 생각이 날 때면 울어도 괜찮아. 다만 그 눈물 뒤에 다시 웃을 수 있는 아이라는 걸 할머니는 알고 있단다. 할머니를 위해서라도 예전처럼 밝게 웃어주렴.


학교에서 친구들이랑 재미있게 놀고 엄마랑 아빠랑 여행하면서 이곳저곳 구경 많이 하고 와. 신나는 이야깃거리 많이 만들어서 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오렴. 할머니는 여기서 응원할게. 언제나 어디서나 반짝반짝 빛나는 소중한 우리 영서. 너의 모든 날에 함께 하고 있음을 기억해 줘.


영서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있는 할머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