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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가희 May 23. 2022

동구안 이바구길

국내여행 에세이 - 부산편

유난히 낯선 사람과 대화에 익숙해진 이유가 뭘까. 우선 나이를 먹고 있고, 여행을 다니면서 낯선 사람에게 도움받은 일이 누적된 것도 있다.  

유명한 관광지를 찾아 다니는 거보다 지역 주민이 사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장소를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살고 계신 분들과 대화할 시간이 때때로 만들어진다.




부산역 맞은편 초량동에 왔다. 초량동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하니까 밀면으로 배를 채웠다. 입이 방정이지. 일행에게 168계단의 존재만 설명했다가 오르는 걸 주저하는 모습을 보곤 모노레일이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이리저리 골목과 작은 언덕을 오가다가 첫 번째 계단을 마주했다. 사실 168계단 말고 그 전에 계단이 있단 사실을 깜빡했다.


"혹시 이 계단이야?" 일행이 물었다.

"168계단은 모노레일이 있어. 이 계단은 어쩔 수 없이 걸어 올라가야 해" 답하곤 계단에서 내려다보는 모습도 예쁘니까 쉬어가며 천천히 올라가자고 .


배도 부르고, 오르기 힘든 계단을 올라야 하는 우리는 가위, 바위, 보 놀이를 하면서 한 계단씩 밟았다.

제일 먼저 계단 위에 올라서서 카메라를 켰다. 준비물 하나 필요 없는 놀이에 즐거워하는 웃음소리, 다른 속도로 올라오는 친구들을 보면서 절로 웃음이 나왔다. 친구끼리도 연인 못지않은 모습이 연출된다니. 여느 때보다 계단이 짧게 느껴졌다.


지나온 계단은 아무것도 아니란 듯이 좁고 가파른 168계단이 눈앞에 있다. 계단을 배경 삼아 사진 찍는 사람 사이에서 숙연해진다. 양동이를 지고 올랐을 옛사람들의 삶을 상상해보고, 지금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어떨지 가늠이 안 돼서.

놀러 온 입장에서 모노레일은 한 번쯤 타 볼 재미를 주고, 부산 시내를 내려다보는 전망 좋은 곳이다. 일상을 보내는 주민에게 초량동 이바구길은 어떤 곳일까? 전망대에 올라 내 모습을 그려봤다. 정신없는 출근길에 모노레일 안에서 발을 동동거리는 장면부터 모노레일을 제쳐두고 계단을 뛰어가듯 내려가는 장면까지.


모노레일 운행을 도와주시는 할아버님과 우리는 짧은 대화를 나눴다.

"초량동엔 주로 어르신이 살고 계시는가요?" 물었고,

"맞아요. 계속 살던 분들이 어르신이에요." 들었다.

29살에 온몸이 아파 병원을 들락날락했던 경험이 퍼뜩 떠오르면서 초량동 어르신의 관절이 걱정됐다.

아, 주민들에게 모노레일은 기다리던 선물 같은 존재일 테고, 중요한 이동 수단이구나.


저녁 7시 30분에 전망대에 올랐다. 부산 시내와 부산항이 보인다. 이전에 부산항에 다녀온 적이 있어서 한눈에 알아봤다. 저녁 8시가 되면 부산항대교에 불이 들어온다. 그리고, 모노레일은 일과를 멈춘다. 여태껏 초량동에서 야경을 본 적 없기에 일행에게 모노레일 없이 계단을 내려가는 게 괜찮을지 조심스레 물었다.

"오르는 게 힘들지 내려가는 건 괜찮아. 야경 보고 가면 되지 뭐 어때!"  

내려가는 게 괜찮은 걸 보니 우린 아직 젊은이였구나. 다행이다.


저녁 8시가 되기 5분 전부터 전망대에 딱 붙어 팔을 걸치고 전방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부산항대교 불 켜진 거 맞나?"  

6월 낮이라 그런지 불 들어오는 게 잘 안 보여서 긴가민가했다. 카메라를 어둡게 설정하고 화면 너머로 보니 불이 들어와 있다. 눈엔 잘 안 보였지만, 부산항에 불이 켜진 걸 안 우리는 즐거워했다. 기대에 못 미쳤다지만 같이 있는 데 이런들 어떠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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