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왔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 푸른 나무와 알록달록한 꽃을 길에서 마음껏 볼 수 있고, 뜨겁기만 한 해가 길어져서 저녁 8시는 되어야 밤이 왔다는 걸 알게 된다. 그 무엇보다 곤충을. 벌레를 자주 만난다.
여섯 살까진 호기심 많은 여느 어린아이처럼 모든 게 신기하고 즐거웠던 거로 기억한다. 길바닥에서 줄 맞춰 가는 개미의 길을 바꿔보기도 하고, 놀이터에서 죽은 잠자리의 자리를 옮겨주기도 했다. 눈 보다 높은 곳을 날아다니는 희고, 노란 나비를 잡아 보고 싶었다. 살랑살랑 나는 게 그리 빠르지 않은 거 같은데 생각보다 손에 올려 보기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꽃 위에 앉은 노란 나비를 만났다. 살금살금 다가가 날개를 잡았고, 곧바로 엄마한테 달려가 자랑하려고 했었다. 그전에 그토록 손에 쥐기 어려웠던 나비를 자세히 보고 싶었다. 날개가 예쁜 만큼 눈마저 예쁠 거로 생각했을까. 동그랗고 작은 눈, 길고 가는 몸에 가득한 솜털, 이전까진 모르던 더듬이. 그렇게 나비의 얼굴을 보곤 얼음이 되어 날려 버렸다. 그날이 곤충을 곤충으로 보던 마지막이었다.
이후로 나에게 곤충은 무서움을 넘어서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유난히 눈이 좋아 형태나 움직임, 솜털, 광택까지 잘 보였다. 등교 전에 집에서 거미를 본 날은 자지러지게 울다가 제시간에 학교를 못 갔다. 친구가 집에 와서 거미를 치워주고 나서야 움직였다. 모기가 날아다니는 날에는 겨울 이불을 목 끝까지 덮어 못 들어오게 하고, 그런데도 모기가 팔에 붙으면 운명이려니 피를 내줬다. 곤충을 보면 자주 울었다. 차라리 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보는 순간 그 자리에서 멈춰서 울기만 했다. 울고 싶어서 우는 거랑 다르게 죽을 거 같아서 울부짖었다. 근육이 놀라면서 느껴지는 통증까지 있어서 괴로웠다. 그나마 사회에 나가 일하기 시작하면서 울음을 감추게 됐다. 특히 공원 안에 있던 직장에서 근무하면서 다양한 생물을 만나면서 단련이 됐다. 직장은 집이 아니라서 몸만 나오면 벗어날 수 있었으니까 용기를 냈다. 어쩌면 '퇴근'이 힘을 주는 요소였을지 모른다.
며칠 전에 오랜만에 바선생(본명 바퀴벌레)을 봤다. 강아지 잘 자리를 만들어 놓고, 뉴에이지 음악을 틀었다. 이불을 덮고, 마지막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그 순간 천장에서 검은 무언가가 보였고, 눈을 다시 감았다 떴더니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고민하다 자고 있던 배우자를 깨웠다.
"벌..벌레가 나왔어. 살려줘"
"어디에"
"천장에"
다른 방으로 대피해서 문으로 상황을 보고 받았다. 꽤 긴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도 들어 오지 않는 걸 보니 놓쳤구나 싶어 잠이 달아나는 기분을 느꼈다. 결국 바선생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두 사람과 한 마리 강아지만 남았다.
"미안해. 출근해야 하는데 새벽에 깨워서. 출근해야 하니까 정말 참아 보려고 했어. 그냥 눈을 감고, 못 본 척하려고 했는데 못 했어. 아직 멀었나 봐"
무서워하는 나를 위해 새벽을 내어준 배우자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억지로 참지 마. 아까 보니까 여태 보던 거보다 크던데, 어떻게 참으려고 했어. 괜찮으니까 깨워"라며 안심시켜줬다.
몇 시간 못 자고 맞은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던 배우자가 카카오톡 메시지를 남겨뒀다. 점심쯤 일어나서 보니 천장 여기저기를 동영상으로 찍어 보내 놨다.
"아침에 나가기 전에 살펴봤는데 보이지 않았어."
"고마워. 너밖에 없다."
"가끔 벌레가 나와줘야겠는데?" 하곤 웃는 모습을 보니 덩달아 웃음이 나왔다.
"그렇지만, 그건 싫어"
발가락보다 작은데 왜 이리 무서운 걸까. 덩치만 클 뿐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이 우습다. 20년이 걸려 울지 않게 됐으니 10년 뒤에 다른 변화가 있으려나.
바선생님, 언제 또 마주칠지 모르는 사이지만, 이사가 코앞이니까 참아볼게요. 아무쪼록 제가 혼자 집에 있는 동안엔 비추지 말아 주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