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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가희 Jul 13. 2022

결혼 하는 게 맞겠지?

서른이 되니 주변에서 하나둘 결혼을 한다. 하객으로 축하해주러 다니던 중 나의 결혼은 어떤 모습일지 진지하게 고민해봤다.

나와 애인은 중학교 3학년 때 만나 올해가 15년 차다. 서로 커 가는 모습을 보면서 여느 부부 못지않게 오래 만났다. 친구들은 언제 결혼할 거냐고 진작부터 물어봤는데 사실 우리 둘은 결혼에 대한 로망이 없었다. 분명 제도는 이해하지만, 문화는 싫은 것에 가까웠다.

같이 살 집을 먼저 구했다. 두 사람의 첫 집이고, 신혼집이다. 결혼이 먼 나라 일 같을 땐 신혼집은 방 3개, 해가 잘 들어 오는 통창 거실, 아파트려나 했는데 막상 코앞에 닥쳐보니 집값은 끝을 모르고 부풀더니 30대 직장인 둘만의 힘으론 살 수 없는 허황한 거였다.

사회초년생 때 가족이 함께 살 빌라 하나를 은행 도움을 받아 마련했다. 부동산 가치나 넉넉한 공간은 아니었지만, 온 가족이 편안하게 쉴 공간은 됐다. 그 당시엔 몰랐는데 1주택자가 되면서 신혼부부 청약 대상에서 벗어나게 됐다. 물론 빌라를 판다는 조건으로 대상자가 될 수 있지만, 가족의 보금자리였던 지라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부동산값이 치솟은 때에 청약마저 못 하게 되자 결혼은 할 수 있을지 덜컥 겁이 났다. 모아둔 돈이 없는 것도, 돈을 더 벌지 못하는 것도, 빚을 지게 된 것도 내 탓 같았다. 이번 생에 업보려니.​


'결혼 하는 게 맞겠지?'

누구라도 탓하고 싶었지만 당장 달라질 것 없는 현실에 원망할 대상을 잃었다. 나 때문에 어렵게 시작한다는 생각, 나에게 결혼이 사치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지배했다. 모든 게 나 때문인 거 같았다. 이마저도 감사해야 하는데 감정이 수없이 오락가락했다.

돌아보면 중학생 때부터 K장녀로 살길 선택했고, 그래야만 한다고 암묵적으로 합의해왔다. 우리 집 여자는 모두 피해자였다. 이혼했어도 상처와 제약은 남아 딸에게. 곧 나에게까지 왔다. 받아들일 준비를 할 테니 나로서 끝내고 싶었다. 약한 모습을 보일 때면 남자친구는 내 손을 잡고, 눈을 맞추고, 때론 안아 주며 말했다. 빚을 진다는 건 갚을 능력이 있다고 판단한 거니까 죄책감 갖지 말라는 얘기.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고. 더는 남은 가족끼리 상처 내지 말자는 말.

작은 언덕을 올라가다 보면 비탈길에 세워진 오래된 빌라 하나. 젊은이보다 어르신을 더 많이 만나는 이곳. 꿈꾸던 신혼의 모습이 아니더라도 좋았다. 갈색 푸들 몽실이까지 세 가족이 북적거리며 만들어 가는 순간이. 더는 욕심내지도, 비교하지도 않고 살아 보기로 했다.

'그래도 결혼 하는 게 맞지'

15년이 되는 해, 예비부부가 된 두 사람은 어린 날 모습을 기억하면서 여태 그래 왔듯이 꼭 같이 늙어 가자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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