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무 Mar 14. 2023

스물네 통의 편지

동료라는 든든한 일상적 관계

고등학교 졸업식 날 담임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남기셨다.


'친구와 동기는 차이가 있어. 앞으로 살다 보면 알게 될 거야. 고등학교만큼 진정한 친구를 사귀기 어렵다는 거. 이게 친구와 대학 동기의 차이야.'

나는 그 말을 철썩 같이 믿고 대학에 들어갔다. 하지만 대학에 가서도 동기, 선후배들과의 행복한 나날들은 계속 생겨났다. 대학 에서 만든 어떤 관계들은 고등학교 친구보다 더 깊었다. '친구'와 '동기'는 다른 용어일 뿐, 어떤 관계가 더 진실된 지, 더 행복한 지는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었다.


대학 동아리 활동을 한창 열심히 하던 시절, 사회인이 된 선배들은 대학 생활이 그리워 종종 우리를 찾아왔다. 그리고 그 선배들은 우리에게 항상 같은 말을 남겼다.


'지금을 즐겨. 나중에 사회 나가면 지금 같은 친구 못 사귀고 추억 쌓기 어려워. 지옥이라고. 대학 생활만큼 행복한 순간은 없어.'


밝은 앞날은 없고 지옥 같은 미래만 있다. 좋은 시절은 다 갔다. 이 시절이 끝나면 고된 일만 남았다. 다가올 앞날엔 결국 젊음과 청춘을 부여잡고 추억만 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 선배들은 사회는 짙은 회갈색이라고 했다. 오직 반짝이는 순간은 대학 시절까지라고.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고, 첫 번째 직장을 거쳐 두 번째 직장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2년을 보낸 후 얼마 전 퇴사를 했다. 나는 퇴사를 앞두고 헤어지는 동료 한 명 한 명에게 편지를 썼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편지를 스물네 통이나 쓰고 있었다. 스물네 통의 편지를 채우기 위해 그 동료와 했던 일, 서로 주고받았던 말, 같이 공유한 마이너 한 사상(?), 기억에 남는 따듯한 식사 자리와 그때의 분위기, 감정까지 모두 기억해 내고 되새겼다. 지난 2년 동안의 시트콤 같은 조직에서의 사건들을 되짚고 또 되짚었다. 끊임없는 되새김 속에서 스물네 통의 편지를 빼곡히 채워나갔고, 편지를 다 써나간 후 방안엔 적적함이 가득했다.


그 적적함의 출처를 따라갔다. 지난 2년 간 나에겐 동료라는 든든한 일상적 관계가 존재했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다고 느낀 존재들이라 그들을 과소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던 와중 종종 내 삶에 여러 변화들이 들이닥쳤다. 지난 한 해 누군가를 끊임없이 떠나보내며 마음이 조각나고 종종 무너졌다. 하지만 무너지지 않은 것이 있었다. 그 자리에 계속 앉아 있는 동료들과 그 풍경들이었다. 내가 잠시 빠지더라도 흐트럼 없이 계속해서 돌아가고 있는 곳, 아침 출근길마다 지겹도록 반복적이라 생각한 일상들이었다. 조직 밖에서의 내가 잠시 무너지더라도 나는 결국 돌아갈 자리가, 나를 맞아줄 사람들이 있었다.


주 40시간 근무를 하는 근로자에게 회사는 일상의 중심이다. 일터를 중심으로 내 일상을 재설계해나간다.

그리고 그 일상 속엔 매일 만나는 누군가가, 매일 나를 찾는 일들이, 그리고 매일 앉아있을 수 있는 내 자리가 있다. 어떤 동료들은 나의 시시콜콜 잡다한 얘기부터 말도 안 되는 삶의 고민과 철학까지 귀를 열어줬다. 하루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주는 그 존재들과 나는 고슴도치처럼 종종 서로를 찔렀다. 악의가 없었더라도 그들의 언행은 나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나도 종종 살쾡이가 되어 그들을 할퀴기도 했다. 편지를 쓰기 위해 지난 시절을 정리하다 보니 그 상처 속에서도 내 곁에 있었던 관계가 얼마나 단단했는지 깨닫는다. 업무를 위한 권태로운 일상이 밉기도 했지만, 그 권태로움 속에 안정적이고 든든한 사람들이 있었음을 다시금 되새긴다.


다 쓴 편지를 정리하며 권태로움과 안정감 속의 헛헛함이 떠올랐다. 6년 전 여름, 4년을 다닌 대학을 졸업했다. 학교는 나에게 애증 그 자체였다. 좋아서 갔지만 다니면서 밉고 짜증 나는 학업의 연속이었다.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과 웃고 울었던 찡한 휴먼드라마도 많았지만, 난 더 이상 학교에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른 이곳을 벗어나서 삶의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 마지막 학기를 다니며 기말고사를 준비하고 중앙도서관에서 걸어 나오던 와중 낯선 감정이 나를 찾아왔다.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던지면 앞으로도 계속 반짝이는 휴먼드라마를 찍을 수 있을까? 선배들이 학교 밖은 회색이랬는데. 참나. 학교가 그렇게 싫다면서 되게 아쉽고 헛헛한가 보네?'


그렇게 헛헛함을 품고 학교와 이별했다. 헛헛함을 음미하기도 잠시 나는 바로 중국으로 떠났다.

유학을 갔던 쑤저우에 짐을 풀자마자 저 멀리 러시아 근처에 위치한 하얼빈으로 혼자 여행을 갔다. 밤늦게 도착한 하얼빈은 잿빛이었다. 동북지방이지만 얼화가 북경처럼 심했고, 예약한 게스트하우스의 삐그덕거리는 엘리베이터는 언제든 추락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아, 역시 울타리 밖은 위험해. 선배들이 말한 색깔이 맞아.

그렇게 하얼빈에서의 첫날밤엔 벌벌 떨며 잠에 들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나는 이 도시의 새로운 면모를 다시 발견했다.


'어젯밤 싸늘하고 칙칙하다 생각했던 이 도시가 사실 이렇게 푸른빛이었다고? 온통 초록이잖아!'

분명 전날 밤에 도착한 이 도시는 뿌연 회색빛깔이었는데, 사실 푸른 녹음이 도드라진 곳이었다. 얼음축제로 유명했기에 차가운 이미지만 생각했던 하얼빈은 그 어느 도시보다도 눈부신 햇살이 푸른 잎들을 통해 도시 곳곳을 녹색 조명으로 비추고 있었다.


나에게 조직생활은 잘 알지 못 했던 도시 하얼빈 같다. 조직 생활을 하기 전 나에겐 사회생활이란 두려움 그 자체, 색채가 없는 곳이었다.

선배들이 그랬고 인터넷에서도 사회생활이 가혹하다는 글이 매번 올라오며, 조직을 욕하는 글은 항상 베스트 순위에 올라와있다. 그리고 나에게도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조직생활 중 어떤 경험, 어떤 시절은 반짝거리는 초록빛이기도 했다. 특히 동료라는 관계는 나에게 있어서 일상 속 그늘을 비춰주는 녹색 조명이었다.


과거의 나를 만난다면, 아직 사회생활을 앞둔 후배들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고등학교 시절, 대학시절. 모두 좋은 시절 맞지. 최선을 다해 즐겨.

하지만 그 시절이 끝나도 아쉬워하지 마. 사회생활 하면서도 좋은 시절 만들 수 있어.

네가 앞으로 만날 학교 밖 세상이 두려움이 아니라 기대로, 다양한 색깔로 가득 차 있으면 좋겠다.'

동료들과 만든 단단하고 끈끈한 관계가 나에게 남기고 건 '인연에 대한 기대'다.

손바닥만 한 편지지 안에 인연에 대한 기대가 가득 담겼바라고, 그들에게도 나와 함께한 시절이 진한 초록빛으로 남았으면 한다.(23.03.14.)

매거진의 이전글 울타리 밖 사랑 - 프롤로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