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가장이 모든 것을 잃고 발견한 회복과 사랑의 로드맵
히스로 공항의 복잡함은 세계적이었다. 나는 탑승 절차를 밟는 내내 불안함과 체념 사이에서 흔들렸다. 대한항공 이코노미 좌석이 좁았지만, 그날따라 짓눌리듯이 더 좁게 느껴졌다. 다행히 창가 쪽에 앉아, 비가 촉촉이 내리는 드넓은 활주로를 희미하게 볼 수 있었다. 내 옆에는 젊은 영국인 여인이 앉아 있었다. 런던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는 곧 밤이 되었고, 기내의 어둠 속에서 나는 창가를 통해 비치는 초승달을 바라보았다. 초승달이 마치 나를 계속 지켜보는 것 같았고, 한국에 도착하여 바로 도망자가 되어야 한다는 현실이 가슴을 짓눌렀다.
나는 다음 주 일정을 머릿속에 돌리고 있었지만, 인간의 계획과 희망이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 그 대가를 치르는 시간이 고작 몇 시간 후에 시작되리라는 것을 몰랐다. 어음은 민사로 처리되고 사법 절차를 밟지만, 당좌수표는 형사 사건으로 분류되어 형사적 책임이 있다는 것이 가장 두려운 부분이었다. 법원에서 세 번의 출두 통지서를 받고 조사받으러 가지 않으면 기소중지가 내려진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시간과 싸움이 될 것이었다.
비행기가 히스로 공항을 이륙한 지 10시간 만에 인천 상공을 선회했다. 급강하하는 기내에는 긴장이 돌았다. 그때, 비행 내내 잠잠하던 휴대전화가 위성 통신이 잡히자마자 쉴 새 없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왜 이래? 한국에 무슨 일이 생겼나? 아냐, 그냥 스팸이겠지.' 자신을 스스로 위로했지만 불안했다. 첫 메시지를 확인하는 순간, 내 세상은 공중분해 되었다.
그 숫자가 기내의 윙윙거리는 엔진 소리보다 더 큰 굉음으로 내 귓속을 때렸다. 이코노미 클래스의 좁은 좌석이 갑자기 나를 가두는 감방처럼 느껴졌다. 손은 떨렸고, 입은 바싹 말랐다. 부도. 이제 못 갚으면 기소중지. 내 40대 삶의 모든 이정표가 한순간에 사라지고, 눈앞에는 까마득한 절벽만 남았다. 창밖은 먹구름이 짙게 깔렸었다.
문득 종교라기보다는 '절대적인 심판'에 대한 공포가 떠올랐다. 내 삶의 시간은 이미 멈췄거나, 완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오, 신이시여” 순간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온 한 마디는 구원을 바라는 기도라기보다는, 모든 것을 놓아버리는 절규에 가까웠다. 부도라는 현실적 지옥 앞에서, 비로소 나는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중요한 영혼의 평안을 잃어버렸음을 깨달았다.
비행기 안의 9천 5백만 원은 더 이상 금액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이름 석 자를 대신하는 낙인이었고, 내 가족의 미래를 송두리째 앗아간 사형 선고였다. 나는 기내 화장실로 숨어 들어가 차가운 거울 속 나를 응시했다. '도망자.' 그 두 글자가 마치 뜨거운 인두처럼 내 이마에 새겨지는 듯했다.
나는 이 소식을 가족에게 전하는 것이 부도보다 더 잔인한 폭력이 될 터라고 생각했다.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들에게 닥칠 고통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나는 이 짐을 혼자 지고 사라져야 한다고 결심했다.
휴대전화를 꺼버렸다. 단절. 그것은 세상과의 단절이 아니라, 내가 지키고 싶었던 가장 소중한 것들과의 단절이었다. 비행기가 착륙을 위해 고도를 낮추는 동안, 나는 이미 2년여의 도피 생활을 시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