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250봉지의 무게, 오천
지금도 내 가슴속에 잦아들지 않는 메아리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 저녁, 어머니께서 그토록 큰소리로 우시던 모습이 다시 떠 오른다. 내 인생의 기억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는 풍경 하나가 있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던 어느 무더운 여름날의 기억이다.
여름 방학을 맞아 어머니는 일찍부터 서두르셨다. 상계동 외가에 다녀오시겠다는 어머니는 대문을 나서며 신신당부하셨다. “엄마 외가 다녀올 테니, 동생들 잘 돌보고 있어라.” 졸지에 네 동생의 보호자가 된 나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금호동 시장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당시 상계동은 지금처럼 번화한 곳이 아니었다. 먼지 풀풀 날리는 시골길을 버스로 몇 번이나 갈아타고 가야 했던 먼 길이었다. 나는 동생들에게 점심을 챙겨 먹이고, 해가 뉘엿뉘엿 저물 무렵부터 금호동 시장 길목을 지키고 섰다. 우리 집은 시장에서 멀지 않은 옥수동이었다.
저녁 찬거리를 든 사람들이 하나둘 시장 골목을 빠져나올 때쯤이었다. 저 멀리서 웬 여자분의 통곡 소리가 들려왔다. 시장 사람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모두 쳐다볼 만큼 크고 서러운 울음이었다. 가까이 다가올수록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헝클어진 머리에 아이처럼 엉엉 울며 집으로 향하던 그분은 바로 우리 어머니였다.
“엄마,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놀란 마음에 달려가 물었지만, 어머니는 대답 대신 가슴을 쥐어뜯으며 더 크게 우셨다. 이웃집 아주머니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청이 엄마, 무슨 일이야? 말을 좀 해봐요!”
어머니는 겨우 울음을 삼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돈이... 돈이 없어졌어요. 분명 주머니에 잘 넣어뒀는데...” 어머니는 텅 빈 양쪽 주머니를 뒤집어 보이며 다시 오열하셨다.
오랜만에 만난 친정아버지, 나의 외할아버지가 딸의 형편이 안쓰러워 꼬깃꼬깃 쥐여주신 돈 5천 원. 그 귀한 돈을 품에 안고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오셨단다. 금호시장에 내려 저녁 찬거리라도 사려는데, 주머니가 그만 비어있었던 것이다. 버스 안의 누군가가 가난한 어머니의 전 재산을 '슬쩍' 해간 것이었다.
라면 250봉지, 오천 원
당시 연탄 한 장이 18원, 라면 한 봉지가 20원이었다. 5천 원이면 쌀 80kg 한 가마니를 사고도 남고, 삼양라면을 무려 250봉지나 살 수 있는 거금이었다. 그 시절 우리 가족에게 5천 원은 단순한 돈이 아니라 한 계절을 버틸 수 있는 생존의 무게였다.
서른 살이 훌쩍 넘은 젊은 어머니가 부끄러움도 잊은 채 시장통에서부터 동네 골목까지 통곡하며 걸어오던 그 뒷모습. 나는 그날 이후 어머니가 그렇게 서럽게 우시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가난이 도처에 널려있고 소매치기가 기승을 부리던 야속한 시절이었다.
그날 어머니가 잃어버린 것은 돈 5천 원이 아니라, 친정아버지의 사랑이었고 자식들에게 고기 한 점 먹이고 싶었던 간절한 희망이었을 것이다. 옥수동 언덕길에 뿌려진 어머니의 그 뜨거운 울음소리가 가끔 그곳을 지날때면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내 가슴속에 잦아들지 않는 애절한 메아리로 남아있다. 오늘 저녁, 라면를 먹는데 유난히 어머니가 보고 싶어진다.
PS: "어머니의 오천 원..."이 먹먹한 아픔이 여러분에게도 깊은 공감으로 닿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