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이라는 이름의 허영을 걷어내다
캄보디아의 땅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땅속에는 수천수만의 뼛조각과 차마 잊히지 못한 통곡이 깊게 묻혀 있었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세월로도 지우지 못한 상흔이 흉터처럼 박혀 있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마을 어귀를 지날 때마다 나는 그 기억들이 살아 숨 쉬는 듯한 묵직한 무게를 느꼈다. 붉은 황톳길 위로 피어오르는 먼지조차 이 땅이 견뎌온 눈물처럼 느껴지곤 했다.
그러나 기억이 반드시 절망의 늪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만난 하나님은 그 아픈 기억조차 치유의 도구로 바꾸시는 분이셨다. 눈물로 남아있던 흔적들이 사랑 안에서 회복의 증거가 되어 갔다. 상처가 깊을수록 하나님의 치유와 사랑은 더욱 강렬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나는 믿었다. 씨엠립 강가 벤치에 앉아 천천히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다짐했다. 이 땅의 눈물을 기쁨으로 바꾸는 그 회복의 현장 속으로 직접 뛰어들어가 눈물과 땀을 흘리며 야생화를 꽃피우겠다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살아 움직이게 하는 통로가 되겠노라고 말이다. 그 뜨거운 설렘을 안고 찾아간 곳이 바로 '쓰롤란(사랑) 교회'였다.
지인의 소개로 목회자가 비어있는 한 가정교회를 맡게 되었다. 시내에서 20분 거리, 비록 평범한 가정집이었지만 40명 정도가 옹기종기 모여 예배드릴 수 있는 귀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암으로 먼저 천국에 간 한국 선교사의 눈물 어린 헌신이 구석구석 깃든 곳이었다. 나는 이곳을 우리 부부의 새로운 사역지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캄보디아어로 '사랑'을 뜻하는 그 이름처럼 온 정성을 쏟기 시작했다.
당시 우리 부부는 토요일마다 밤브 마사지사 자녀들을 돌보는 사역을 병행하고 있었다. 몸은 고됐지만 주일 오후 2시가 되면 설레는 마음으로 쓰롤란 교회로 향했다. 매주 30~40명의 아이가 맑은 눈망울로 우리를 반겼고, 마지막 주일에는 마을 어른들도 10여 분씩 참석하셨다. 우리는 정성껏 준비한 쌀을 나누고, 늘 배고파 보이는 아이들을 위해 따뜻한 밥과 국을 준비했다. 아이들이 맛있게 그릇을 비우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불렀다. 그렇게 4개월 동안 우리는 이 현장이 진정한 치유의 터전이 되길 꿈꾸며 매진했다. 하지만 그 평화로운 풍경 뒤에 감춰진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모두를 속이는 사역이었다.
어느 주일 예배가 끝난 뒤, 나는 문득 궁금했던 점을 사역자에게 물었다. "이 아이들은 다 어디서 오는 아이들인가요? 마을 입구에서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 꽤 많네요."
사역자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러나 내 기대를 완전히 저버리는 대답을 내놓았다. "사실 이 아이들은 보육원이나 다른 교회에 다니는 애들이에요. 아는 분들에게 부탁해서 봉고차로 직접 태우고 오는 겁니다."
순간 가슴 한구석이 덜컥 내려앉으며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미 오전에 자기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아이들을, 단지 우리 교회의 머릿수를 채우고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차로 실어 나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사역이 아니라 일종의 동원이었고, 복음이 아니라 수치에 불과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단호하게 조언했다.
"사역자님, 아이들이 많이 모이는 건 분명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결코 건강하지 않습니다. 이미 다른 교회에 속한 아이들을 데려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도, 그 아이들에게도 옳지 않습니다. 힘들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 동네, 이 마을의 아이들을 직접 찾아가 이름을 부르고 전도해야 합니다. 그게 우리가 이곳에 있는 진짜 이유 아닙니까?“
하지만 돌아온 사역자와 그 딸의 대답은 내 가슴을 더 깊게 찔렀다. "선교사님, 이 동네 아이들은 전도해도 잘 오지 않아요. 교회에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사역하는 맛도 안 나고 분위기가 살지 않기 때문에, 외부 아이들이라도 데려와야 하는 겁니다."
내 교회'를 채우려 했던 것이, 사실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의 '안심'과 '증명'으로 보여주기를 위한 것이었다면 예배를 더 이상 드릴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한국교회와 자신과 하나님을 속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텅 빈 예배당의 적막함이 두려워 '빌려온 아이들'로 자리를 채우는 가짜 예배. 보여주기식 숫자에 매몰된 현장에서 나는 말할 수 없는 공허함을 느꼈다. 내가 꿈꾼 치유와 회복은 이런 허수(虛數)가 아니었다. 겉으로는 북적거리고 은혜로워 보일지 몰라도, 그 안에는 정직한 영혼의 울림이 빠져 있었다. 이러한 사역은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은 좋을지 몰라도 하나님께는 기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나는 꽉 찬 예배당의 인위적인 활기보다, 비록 단 한 명일지라도 이 마을의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뙤약볕 아래를 걷는 정직한 수고를 원했다.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것은 예배당을 가득 채운 통계 수치가 아니라, 그곳에 담긴 진실한 마음과 한 영혼을 향한 정직한 눈물이기 때문이다. 그날, 화려한 숫자 뒤에 숨은 사역의 민낯을 보며 다시금 본질이 무엇인지 뼈아프게 되새겼다. 캄보디아의 첫 선교사역이 혼돈속으로 빠져들었지만 두렵지 않았다.